좋은 말씀/-묵상

하나님의 일하심과 인간의 어리석음[창16:1-16]

새벽지기1 2021. 8. 14. 07:18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13]"

 

오늘 본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개척하여 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나눌수 있습니다.

 

1-3 : 여종 하갈 동침하기를 요청하는 사래와 이를 허락한  아브람

4-6 : 하갈의 오만함과 사래의 학대

7-14 : 하갈을 감찰하시고 돌아갈 것과 자손의 번창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15-16 : 이스마엘의 출생

 

본문의 흐름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일하실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사래는 자신의 아이 없음을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래는 편법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여종 하갈을 통해서 후손을 이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물론 사래는 언약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래의 말을 따르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 없는 인간의 뜻을 이루려는 불쌍한 모습을 봅니다. 이미 앞서서 반복적으로 자손이 번창 할 것임을 약속하였음에 불구하고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음으로 편법을 쓰는 모습을 봅니다.

 

이 모습은 우리들에게 종종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열매가 당장 나타나지 않음으로 편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때를 앞당기려는 어리석음입니다. 개척교회의 현실이 그러합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성과를 갖고자 하는 것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이상한 방법을 동원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일하심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결코 조급해 하지 말고 사람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밥법이 아니면 화평이 사라집니다.

 

사래가 하갈을 아브람의 첩으로 허락 할 정도라면 둘의 관계가 참으로 가까운 관계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갈이 잉태하자 서로의 관계는 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첫째는 하갈의 오만함이 나은 분열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추악한 욕망으로 화평을  깬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습니다. 조금 잘 나가면 오만하고 추악해 집니다. 조금 똑똑하면 자만하고 교만합니다. 조금 권력이 생기면 흉악한 이리가 됩니다. 하갈의 모습입니다.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남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사래의 폭력입니다. 사랑하였던 여종으로 인하여 사래는 폭군이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뿌린 씨앗으로 인한 결과인 것입니다. 남편을 움직여서 임신한 여인을 학대한 사래는 참으로 추악한 독재자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이 한 아이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아주 못된 부패한 인간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래의 모습 역시 우리에게도 잘 나타납니다. 순간의 쾌락으로 인하여 얻은 자식을 쉽게 낙태하는 무리들, 또한 나은 아이를 자기 살기도 힘들다고 버리는 부모들, 자신의 인생의 즐거움을 인하여 쉽게 이혼하고 아이를 버리는 자들 . 이모두가 사래의 모습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아닌 방법으로 무엇인가 얻고자 했던 인간들에게 나타난 불행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반드시 화평을 이룰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도 더디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야 합니다. 정말 어렵고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갈때 하나님이 주시는 화평을 이룰 수 있고 교회가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시한번 저에게 깨어나게 했습니다.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봅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언제나 하나님이 옳았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학대에 도망간 하갈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 있던 그에게 나타나시고 돌아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학대의 장소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갈을 돌아가야 합니다. 임신한 몸으로 광야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와 조금함으로 인한 아이의 잉태였지만 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문제가 바로 아이에게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갈에게 아이의 자손이 번창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약속은 그대로 이어지고 계속되는 역사 가운데 아픈 상태로 남게 됩니다. 하갈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찬양합니다. 미천한 계집종을 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도 관심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더구나 주인에게 학대받아 쫓겨낫는데 누가 관심을 갖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여인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기회를 주십니다. 하갈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시 돌아가고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살아갈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갈을 보시는 하나님은 바로 나를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서울을 떠나 한번도 와보지도 않았던 지역, 누구하나 연줄이 있지도 않은 지역 그리고 교회의 지나온 상황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개척을 하였습니다. 40년동안 서울에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년동안 청년 사역을 주로 하였는데 전혀 생소하고 사람도 없는 지역으로 보냄 받았을때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변방에 있지만 하나님은 이 곳에도 늘 계셨습니다. 하챦은 계집종을 바라보셨던 하나님은 별볼일 없는 자를 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능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학벌도 없고, 무엇하나 변변하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히고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늘 보고 계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외롭지 않은 것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감찰하심에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조급하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화평을 이루는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