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기뻐하라, 은혜를 입은 자여 (누가복음 1:26~38)

새벽지기1 2020. 6. 24. 07:12

“마리아와 같이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간다면
“기뻐하라 은혜 입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는
인사를 성령으로부터, 천사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오랫동안 준비하셨습니다. 많은 예언들을 주셨고, 많은 사람들에게 약속을 주셔서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심으로 예수님이 오실 때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언제 어디로 누구를 통해서 보내실 지를 준비하셨습니다. 택함을 받은 여인은 마리아입니다. 나사렛에 있는 가난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소외된 한 여인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소녀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은 소녀 마리아를 주목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열린 마음이 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 믿음을 소중하게 보십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믿음의 소녀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자녀를 잉태하고 낳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은 남자와 상관없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성과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신비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마리아는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정혼은
결혼과 약혼의 중간상태입니다. 결혼과 같이법적인 상태를 보증 받는 관계였지만, 약혼처럼 함께 살지는 않는 관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혼문화가 있는 유대 민족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관계였다면 동정녀 의 탄생이 어려워지고, 약혼관계였다면 예수님은 사생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으로 법적보호를 받고, 약혼처럼 아무 관계없
는 때에 태어나야 동정녀의 탄생이요, 아버지가 분명히 있는 사생아가 되지 않는 자녀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가 막힌 정혼문화를 하나님께서 이용하셔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문제는 요셉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입니다. 요셉의 고민이 마태복음에 나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기에 아버지인 요셉을 중심으로 기록했고, 누가복음은 마리아를 중심으로 기록했습니다. 요셉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일정 기간 마리아와 단절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그에게 임하여 요셉이 마리아를 받아들입니다. 마리아 입장에서 보면 자기 책임이 아닌데 정혼한 남편 요셉이 자신을 의심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요셉이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정혼한 상태에서는 함께 살지 않기 때문에 자녀가 태어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 간음한 것 같은 동일한 법적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한 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감당할 믿음의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 일에 마리아가 믿음으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예수님의 탄생에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고 둘째, 처녀가 아이를 낳은 것이고 셋째, 마리아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가톨릭처럼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거나 숭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마리아도 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믿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본받고 높이 평가하는 일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믿음과 반응을 통해서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출생은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둘 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나이 들어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상태에서 세례 요한이 태어났습니다. 예수님도 동정녀의 탄생입니다.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출생부터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가랴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마리아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받아들이지 못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하나님을 가르치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던 제사장 사가랴는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징계를 받았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인생의 경험과 직책이 믿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임재 발견하며 놀라는‘믿음’ “천사가 마리아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28절). ‘ 기쁨’ 이라는 단어와 ‘ 은혜’ 라는 단어는 기원이 같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또 기쁨은 은혜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은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요,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 은혜를 입었다’ 는 것은 쉽고 편안한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리아에게는 엄청난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고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사명이 나에게 주어진다 할지라도 주께서 함께 하시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 은혜를 입은 자’ 입니다. 그래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인사를 받았을 때 당황해서 깜짝 놀랍니다. 이 당황과 놀라움은 불신앙의 사람이 하는 반응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이, 늘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사인, 계시, 말씀, 임재가 주어졌을 때 그 영혼이 깨어 놀라는 것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러한 인사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마리아도 회당에서 늘 배우던 율법의 내용을 통해 이 인사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기드온
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사사로 사용하실 때 “큰 용사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고 인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여기서 발견하는 첫 번째 중요한 믿음의 원리가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발견하며 놀라워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고백을 적용하면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 이게 어떤 말씀인가’ 라고 놀라며 우리 영혼의 깨어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 경험이요, 지식이요, 내가 그 말씀을 이미 안다고 하는 교만입니다. 말씀에 대한 놀람이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늘 깨어 있는 영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일상에서 늘 하나님의 임재에 깨어 놀랍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놀라지 않는 사람들은 재난이 와도 놀라지 않고, 종말이 와도 놀라지 않습니다. 종말이 와도 놀라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도 놀라지 않습니다. 인간의 완악한 마음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멸망의 한복판에서도 아침마다 새롭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놀랐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습
니다. 그 한복판에서 예레미야가 소망의 노래를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도시가 재건되고 있어서 새롭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둘러보면 모든 것이 절망입니다. 그런데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예레미야의 영혼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미래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역사를 새롭게 하실 하나님의 임재를 미리 내다보면서 아침마다 새로움을 경험했습니다. 놀라운 섭리에 정직하게 질문하는‘믿음’“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보아라. 네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는 위대한 이가 될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다. 그는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는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30~33절). 역사 속에서 하신 모든 예언이 그 한 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이 예수님 한 분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
니다. 이 말씀을 통해 모든 예언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강대국들이 세상을 계속 정복하고 있는 바로 그때 그 모든 나라들이 순차적으로 멸망할 것이며, 이제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 처녀인 제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34절). 이것은 불신앙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라 믿음의 질문입니다. 믿음의 중요한 두 번째 원리를 설명해 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대하여 정직하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섭리의 도구가 될 때 정직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섭리의 통로가 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질문합니다. 순종의질문, 더 이해하려는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안셀름이라는 신학자는 “믿음은 이해를 추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이해를 추구하는 질문입니다. 사가랴는 마리아와 비슷한 처지였지만 정반대로 “ 저는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의 ‘ 어떻게’ 는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한 것입니다. 똑같은 단어 같지만 전혀 다른 문맥입니다. 마리아의 질문은 수용적입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 성령께서 네게 임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거룩한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35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일어납니다. 나만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계시로 보여주실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에게는 동정녀의 몸에서 아이가 잉태되는 것, 성령이 임하시면 지극히 높으신 능력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말뿐 아니라 실례를 들어줍니다. “보아라. 네 친척 엘리사벳도 그렇게 많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라 불렸는데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째가 됐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다”(36~37절). 성경에 보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여인들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또 엘가나와 한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입니다. 그들이 왜 아이를 낳게 되었을까요? 장차 오실 메시아 곧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동정녀의 탄생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믿음을 북돋워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엘리사벳에게 마리아가 찾아갑니다.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6개월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에 감동하여 마리아를 축복하고 “너는 여인 중에 복된 여인이다. 그리고 네 몸에 있는 아이도 복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 이뤄지는 통로로 자신을 드리는‘믿음’


“그러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 보십시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에게서 떠나갔습니다”(38절). 세 번째 중요한 믿음의 원리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통로로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대답이 얼마나 담대하고 용감한 믿음의 태도입니까. 이 대답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아멘”입니다. ‘ 아멘’ 이란 ‘ 진실로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 아멘’을 여러 번 사용하셨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라고 하실 때 그 ‘ 진실로’ 가 ‘ 아멘’ 입니다. 이것을 반복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아멘은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을 주신 것이고, 우리의 아멘은 “그 말씀이 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습니다. 특별히 내게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아멘은 위대한 하나님 역사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 아멘’ 할 때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이 내게 임하는 통로가 됩니다.


마리아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믿음을 보인 것이 아닙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믿음의 순종 훈련을 했을 것입
니다. 이후 마리아의 모습을 봐도 말씀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9절
을 보면 마리아가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12살 때 성전에 올라가
서 동행한 줄 알고 오다가 다시 가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 알지 못했습니까?”라고
한 말을 마리아는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도 믿음으
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이 얼마나 끔찍했습니까. 예수님 당신보다 고통스러운 사람이 마
리아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마리아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러
나 마리아는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여러 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한
다는 것을 마음에 늘 새겼기 때문에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도망갔습니다. 말씀
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혼란스럽고 당황하고 무서웠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마지막 예수님의 말씀까지도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다 모여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곳에 모인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행 1:14). 마리아가 성령이 강림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는 것은 동정녀 탄생 때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후에도 말씀 앞에 늘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에 마리아는 사도행전에 성령 받은 제자로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주목할 것이 없는, 하나님께서 중요한 사명을 맡기지 않을 것 같은 나사렛의 가난
하고 소외된 한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는 그 순수하고 담대한 용기 있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기뻐하라 은혜를 입은 자여”라는 인사를 받기에 합당한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해하기 힘든 상황, 또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들이 앞으로 계속 펼쳐질지 모릅니다. 그러
나 우리가 마리아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간다면 이 어려운 시기에도 “기뻐하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
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는 인사를 성령으로부터, 천사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