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족보에 드러난 약속 (마태복음 1:1~17)

새벽지기1 2020. 6. 17. 06:51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왕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족보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 기둥이 되는 말씀이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매우 소중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행적을 알려주는 복음서는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입니다. 이 사복음서는 중복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서로 비슷한 내용을 다루지만 각기 독특한 시각으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
개합니다. 어느 한 방향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치우친 견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통해서 전 방향 시각에서 예수님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진리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각 복음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1장 혹은 2장이 전체 말씀을 요약하는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조상에 대한 족보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조상의 족보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는 사람은 두 가지 목적을 가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조상을 통해 자신을 자랑하려는 목적입니다. 자신을 나타내고, 자랑하려는 목적을 가질 때는 자랑스럽지 못한 조상이 나타난 족보라면 덮어버릴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조상이 나타난 족보는 보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을 것입니다. 둘째, 조상의 족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고 하는 목적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려고 할 때는 자랑스러운 조상들만이 아니라 자랑스럽지 못한 조상일지라도 모든 진실을 알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고 합니다. 입양된 자녀들은 살아가면서 대부분 친부모를 찾는다고 합니다. 자신을 돌보지 못한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그리움을 뛰어넘어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서입니다. 자랑스러운
부모든 자랑스럽지 못한 부모든 상관없습니다. 따라서 한 가문의 족보를 살핀다는 것은 나를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아픔도 알아야 하고, 영광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다루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가장 먼저 등장시키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족보를 통해 예수님을 아는 것은 복음을 깨닫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변화, 새 시대 알리는‘족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다윗의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1절). 한글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고 시작하지만 헬라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고 시작하고, 다윗이 먼저 등장합니다. 여기서 족보라고 번
역한 단어는 ‘ 게네세오스’ 인데 원형은 ‘ 게네시스’ 입니다. 이 단어에서 창세기라고 부르는 ‘ 제네시스’ 가 나옵니다. ‘ 시작’ 이라는 뜻입니다. 또 ‘ 기원’ , ‘ 원래의 기록들’ 이라는 측면에서 ‘ 지니올로지’ , ‘ 족보’ , ‘ 계보’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작 또는 기원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족보는 마태복음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에서 역사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족보를 사용했습니다. 족보는 긴 역사를 사람을 중심으로 압축하는 것입니다. 족보가 등장하는 것은 새로운 역사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족보가 나오는 곳이 창세기나 역대기 같은 곳입니다. 창세기는 족보를 중심으로 문단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구나.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으로 족보를 대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족보는 역사적 정당성을 평가할 때 기준이 됩니다. 구약 이후 유대인들은 역사적 정당성을 족보를 통해 평가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자신이 알고자 하면 조상이 누구인지, 어떤 혈통을 통해, 어떤 조상을 통해 세상에 왔는지 그 뿌리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기록부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족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어떤 조상을 통해서 세상에 왔는지, 역사적인 정당성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에 기초한 예수님의 오심을 증거할 수 있는 자료가 주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그 후손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 주도로 이루어진 역사라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이 족보를 읽었을 때 어떤 사람은 매우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매우 불쾌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습관에 맞지 않고, 법칙에 맞지 않는 일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족보를 통해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이시며, 그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복과 그 나라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핵심은 ‘아들’ 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분명 자손을 주신다고 약속하셔서 25년 후에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이루는 통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12장 1~3절에서 나오는 약속의 핵심은 땅의 모든 족속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하셨는데, 이삭의 삶을 보면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이 되기는커녕 자기 자신을 가누기도 힘들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 약속을 보면 그 아들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케 하신다고 했는데 솔로몬 왕국은 멸망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이루는 분은 이삭과 솔로몬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우리말이나 영어에서는 아들을 ‘아들’ 이라고 하고, 아들의 아들은 ‘ 손자’ 라고 하는데 히브리어는 온통 ‘ 벤’ 입니다. 그래
서 족보를 읽으면서 ‘ 벤’ 이라고 되어 있으면 아들인지 손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했을 때 그 직계 아들이라고 생각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그 누군가, 또 다윗의 후손 중에 누군가가 약속을 이루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째, 아브라함부터 다윗의 출생까지의 족보입니다. 둘째,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시대까지 다윗 왕가의 족보입니다. 셋째, 바벨론 포로시대부터 예수님에게서 완성되는 족보입니다. 이 세 부분이 각기 14대로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4대를 3개 합하면 42대로 구성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14대가 아닙니다. 이 기간에 속한 부분을 구약에서 찾아보면 몇 사람이 더 있습니다. 그래도 이 말씀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 벤’ 이라는 단어가 유연하기 때문입니다. 1대 아들일 수도 있고, 2대 아들일 수도 있고, 몇 사람을 생략할 수도 있습니다. 목적에 따라 10대를 생략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14대냐는 것입니다. ‘ 14’ 라는 숫자를 알파벳으로 변환시키면 ‘ 다윗’ 이 됩니다. 히브리인들은 알파벳을 숫자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 게마트리아 용법’ 이라고 합니다. 알파벳 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1이 되고, 그 다음은 2가 되는 식입니다. 역사를 세 단락으로 구분하는 것이 ‘ 14대’ 라는 것은 역사의 중심에 다윗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장 1절 헬라어 원문은 다윗이 먼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시작이었지만, 핵심예언의 내용은 ‘ 다윗의 아들로 오신다’ 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메시아 예언의 집중적인 표현도 ‘다윗의 후손’ 이 훨씬 많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윗의 아들이요, 다윗에게 주신 모든 예언의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은 충격적인 메시지가 됩니다.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시대가 끝나고, 다윗의 시대가 끝나고, 바벨론 포로시대가 끝났지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복음서가 쓰여진 시대에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주권을 잃어버리고 로마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바벨론 포로시대인 것입니다. 바벨론 때는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망했지만, 지금은 로마의 정책에 의해 살던 집에 살고는 있지만 또 다른 바벨론의 포로가 된 생활입니다.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 아브라함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족보를 기록함으로…


마태복음 1장의 족보와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는 죽음으로 끝나는 족보인데, 마태복음 1장에는 죽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어도 사는 부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
입니다. 이 족보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장차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수많은 약속을 주신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예언의 핵심적인 내용 첫 번째는 아브라함의 아들로 오셔서 복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왕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곧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 12:1~3). 핵심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과 그 가문이 아니라 ‘ 땅의 모든 족속’ 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약속이 주어진 때는 예수님이 오시기 2천 년 전입니다. 2천 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셨고, 2천 년 후에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 약속의 초점은 2천 년 후에 오실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증거를 이 족보에 담아 두었습니다. 이 족보에는 여인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족보에는 여인들의 이름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시대에 여인들의 이름이 족보에 나옵니다. 구약의 족보에는 여인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매우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불편한 것은 이방여인들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름들은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난 기구한 운명이거나 그들의 삶이 후손들에게는 매우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입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여인의 이름은 다말입니다. 유다가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습니다. 다말은 남편이 죽었을 때 고엘법에 의해 형제가 삶을 책임지도록 되어 있는데 가정이 허락하지
않고 버리니까 창녀로 둔갑해서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조상입니다. 라합은 여리
고의 기생이었습니다. 살몬이라는 사람이 라합과 만나 낳은 자녀가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해서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의 후손이 이새고, 이새의 후손이다윗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가문의 물줄기에서 다말, 라합,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가 나옵니다.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요, 헷사람이었습니다. 그녀 또한 이방여인이었습니다. 이
네 명의 여인들의 등장은 유대 민족에게 있어서 수치스러운 기록일 수 있습니다. 이방 민족일 뿐만 아니라 부정한 과거
허물이 있는 조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족보에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정체성
을 설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조상의 족보가 전혀 흠이
없고, 명망이 있는 가문의 족보였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혈
통을 통해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 태어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영원한 나라의 왕으로


모든 예언의 두 번째 핵심 내용은 다윗의 자손이 영원한 나라의 왕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사들을 세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던 때와는 같지 않게 할 것이다. 내가 또 너를 네 모든 원수들로부터 구해 내어 평안하게 할 것이다. 나 여호와가 직접 너를 위해 왕조를 세울 것을 선포한다. 네 날들이 끝나고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잠들 때 내가 네 몸에서 나올 네 자손을 일으켜 네 뒤를 잇게 하고 내가 그의 나라를 든든히 세울 것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해 집을 세울 것이고 나는 그 나라의 보좌를 영원히 세워 줄 것이다”(삼하 7:11~13). 이 말씀만 보면 솔로몬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을 보면 솔로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의 보좌를 영원히 세워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솔로몬의 왕국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시대에 이르는 다윗 왕가의 모든 왕들을 보면 우상을 숭배했고, 형제들을 죽이고, 잔혹하게 다루고,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던, 하나님이 세워줄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셨습니다. “그는 위대한 이가 될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다”(눅 1:32). 로마의 압제시대에 가문이 완전히 무너져 있고, 왕국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증거가 요셉이 목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의 후손이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인간의 철저한 실패의 한복판에 오셨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마태가 기록한 14대로 끊을 수 있는 바로 그 세 번째 역사의 실패 한복판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 영원히 견고한 나라의 왕으로 오셨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대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그분이 오셨습니다. 이 족보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예수님의 출생을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습니다”(16절).
일반적인 표현인 ‘ 요셉이 예수님을 낳았다’ 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특수 관계를 표현한 형식인 ‘ 요셉이 마리아에
게서 예수를 낳았다’ 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라고 되어 있습
니다. 세 번째 방식입니다.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이 동정녀의 탄생이라는 것입니다. 아
담의 혈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고 표현한 것은 아담의 후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인 아담의 혈통에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서 나왔든 아담의 혈통이라는 것입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입니다. 전 인류와 다른, 완전히 새로운 두 번째 아담, 새로운 인류의 조상입니다. 그
래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조상을 가지신 온전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분
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분의 조상에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유대인 조상도 있었
고, 다윗의 후손으로 왕의 조상도 있었습니다. 라합과 룻과 다말과 같은 부정한 조상도 있었고, 히스기야와 요시야와
같은 거룩한 조상도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
는 나라의 왕으로 오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역사적 정당성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가장 확실한 미래의 소망을 가진 것
입니다. 이제 성경을 읽을 때 믿음과 신앙이 깊어지고,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감격스럽고, 가장 도전적이고, 가장 은혜
로운 예수님을 발견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