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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보수와 진보

새벽지기1 2020. 2. 27. 06:53


신앙의 보수와 진보


정치에도 보수와 진보가 엄연히 존재하듯 한국 교회와 신학에도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는 진보를 progressive라고 하기도하고 liberal이라고 하고, 반로 보수를 conservative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크게 분류한다면 사당동 총신을 비롯한 합동 산하의 모든 신학교가

소위 보수주의 노선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광나루 신학의 장신 출신들인 통합 측을 진보적인 신학이라 칭하고,

한신 대학의 기장 소속 출신들을 자유주의 신학 노선을 걷는 사람들 정도로 규정한다.

이러한 정도의 구별이 꼭 합당하지만은 않으나 대략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Context로부터 가까운 쪽과

Text로부터 좀 더 가까운 쪽에 위치할 때를 염두에 두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앙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보수적이다.

한국사회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종교 자체가 원래 보수적이기도 하고,

국에 복음을 들고 들어온 초기 선교사들이 보수 계열이라서 그러한 경향이 짙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성향에서 규정하는 보수주의는 근본주의에 더 가깝다.

진정한 보수이기보다는 순진(naive)하고도 고지식하다는 말에 더 가깝고 미성숙에 더 가깝다.

보수적이란 말은 때에 따라 radical하다고 할 수 있다.

급진적인이고, 과격하고, 극단적이며, 근본적인 것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원래 radical이라는 단어는 뿌리(root)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radical하다는 말은 “뿌리부터 철저하다”는 뜻이다.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는 뿌리부터 철저하게 개혁적인 것이다.

이런 보수와 진보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를 무시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고 오히려 앞서고, 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되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이 남과의 비교 즉 상대적이 될 때,

이미 그 보수와 진보는 그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다고 본다.


진정한 보수적 가치와 장단점


보수는 귀한 가치다. 기독교의 전통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예배의 예전 전통을 지키고, 세례와 성찬을 바르게 지켜나가고,

사도신경을 신앙의 토로 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보수진영은 개인 구원에 중점을 두고 전도와 제자훈련, 부흥회 등의 교회 내의 사역에 집중한다.

보수는 대체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을 집중하지만 그러나 상대적으로 사람들에 해서는 소홀한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에 관심한다는 강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을 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대체로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순결하나 무지하고, 너그러우나 필요한 때의 용기는 없으며,

사랑이 풍요로운듯하지만 희생과 오해, 모욕이 불가피하면 뒷걸음질치고, 시대를 위한 예언은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또한 보수는 성경이라는 규범을 지키려는 열심이 때로는 이론과 교리에 치우쳐서 유연하지 못하고
답답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래서 진리를 지키기 위한 열정은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삶에 있어서 대개 교회 중심적 경향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교회가 사회의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돌아보는 복음의 본질을 망각한 채
교회 안의 믿는 자들만을 위한 이기적 공동체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보수는 이 외에도 성경 문자주의, 성수주일과 십일조의 율법 화, 기복주의, 반공주의,

타종교 거부, 동성애자 배척 등을 기치로 내건다.

이런 신앙은 보수주의가 아니라 근본주의에 가깝다.


진정한 진보주의의 장단점


반면, 진보진영은 인간의 절적인 인권에 관심하고 집중한다.

사회 구원에 중점을 두고 민주화 운동과 사회 참여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역시 상대적으로 하나님에 해서는 소홀한 경향이 짙다.

진보는 인권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신앙인들은 질타는 할 줄 알지만 위로하는 능력이 없고,

불의에는 맞서나 정작 자신의 죄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믿음은 있으나 기득권은 버리지 못하는 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세대는 읽으나 좁은 길로 가지 않고 세대를 좇아 로의 길로 피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가 하면 진보는 생활과 상황에 치우친 나머지 원칙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무오성 및 예수만이 구원의 길임을 고백하는 복음주의 교회로부터

말씀과 하나님 명령에서 떠난 인본주의라는 비판을 듣게 되었고

근본주의 교단으로부터는 때론 이단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보수는 태생적으로 전통을 중히 여기며, 진보는 태생적으로 개혁을 중히 여긴다.

보수는 전통을 벗어나면 반발을 하고, 진보는 전통에 얽매이면 반발한다.

보수와 진보를 신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복음주의와 자유주의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입장이 현재 한반도가 안고 있는 남북치 국면과 맞물려 극단적으로 ‘좌파’와 ‘우파’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찾으신다.


결론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신앙에 있어서는 보수를,

운동에 있어서는 진보를 추구할 때에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진정한 신앙인은 보수가 관심하는 하나님의 절적인 권위를 인정하며

진보가 관심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이다.

교회는 정치적 사회적 이념이나 개인적 신념 때문에 모인 공동체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가치 때문에 모인 하나님 나라 생명 공동체다.

이러한 결론 속에서 신앙 문제를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것은 너무 도식적이다.

경우에 따라서 보수적이어야 할 때도 있고, 진보적이어야 할 때도 있다.

무조건 지키는 게 대수가 아니고, 또 무조건 혁신하는 게 옳은 것도 아니다.

지킬 건 지키고, 버릴 건 버리면 된다.

결국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신학적인 분별력과 통찰력이다.

내용은 보수를, 방법은 진보를 취하여 보수와 진보로

양극화된 한국 사회를 치유하는 또 하나의 노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을 죽이고 교회는 그를 다시 하늘로 올리려고 하고

하늘에 계신 분으로만 경배 하려 하는 사신(死神)의 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신5:32) 라는 말씀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