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믿음을 따라간 사람

새벽지기1 2020. 2. 25. 07:20


내가 가야 할 곳, 더 나은 본향을 더욱 많이 묵상할수록 천국이 나와 더 가까워지는 겁니다. 천국의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날마다 천국을 이루면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에는 부르심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오늘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시리즈 설교를 이어가기 전에 지난번에 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설교를 먼저 요약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닐 때 제일 먼저 우리에게 오는 변화는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파도가 넘실대는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선진들, 믿음의 모델들을 나열하면서 그 사람들의 믿음의 독특성, 믿음의 본질, 믿음의 승리, 이런 것들을 히브리서 11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온전한 순종 


지난번 말씀에서 우리는 네 가지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가 부름을 받았을 때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믿음, 지식으로 얻은 믿음. 이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고 축복이 일어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와 봉사하고,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어도 내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건 어딘가 믿음의 뿌리가 썩었거나 잘못됐거나 오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믿음을 갖고 있으면 우리들의 삶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갈등에서 행복으로 바뀌게 됩니다. 환경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돈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고 어려운 조건 속에 있더라도 충만하고 풍요로운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 혼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거나 하나님을 만나거나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면 믿음의 씨가 뿌려집니다. 믿음의 씨가 뿌려지면 믿음은 생명이기 때문에 거기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잎사귀가 나고 열매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왜 내 믿음이 이렇게 약한가. 생각으로는 다 할 것 같은데 해보면 안 되는가.’ 그것은 여러분이 믿음을 지식으로 이해하거나 믿음을 참 생명으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믿음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으면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나 순모임, 성경공부그룹에서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면 믿음의 씨가 뿌려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그에게 “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곳으로 가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 순종한 데 있습니다. 믿음은 맹종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고 응답인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발견된 믿음의 시작입니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완벽한 믿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태어난 아기가 곧바로 걸어 다니거나 말하거나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믿음도 처음 가질 때는 벙어리와 같습니다. 방향 없이 돌아다니고 자기 힘으로 서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아기가 자라면서 사람 모양이 생기고, 지성이 생기고, 육체가 건강해지고, 걷고 뛰고 점점 성숙한 인간으로 변하는 것처럼 믿음은 말씀을 계속 먹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궤도 수정이 돼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같아지는 것입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해 장차 유업으로 받을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요점은 믿음에는 부르심의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조건 없는 순종이 있습니다.  9절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의 땅에서 다른 나라에 사는 이방 사람처럼 잠시 머물렀는데 그는 동일한 약속을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했습니다.” 믿음은 또한 동류들하고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과 외국인, 나그네처럼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우리가 지상낙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같이 또 나그네같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회 나오면 행복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갈대아 우르를 떠나 천국과 같은 곳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으로 갔는데도 거기에는 가나안 일곱 족속들, 즉 하나님을 안 믿는 이방인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속에서 믿음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9절에서 우리는 믿음이란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핍박도 받고, 야단도 맞고, 쫓겨 다니기도 하면서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험한 일을 당할 때에도 심히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믿음은 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믿음은 이삭과 야곱이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자손들과 함께 자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녀교육을 잘 해야 되는 이유입니다. 자식들과 살면서 믿음을 전수해주고 유산을 남겨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10절입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견고한 터 위에 세워진 도시를 고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 약속은 하나님이 직접 설계한 도시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설계한 도시를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은 내가 생전에 받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죽기까지 못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죽고 천국 가면 약속의 성취는 즉시 나타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의 믿음의 삶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내 마음이 천국이 되는 것이지 환경을 하나님이 갑자가 바꿔준다든지, 빚을 갚아준다든지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부족해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시나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불공평하시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믿음은 견고한 터 위에 하나님이 설계해놓은 새로운 도시가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새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아니라 죽으면 가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약속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만 생각하면 기쁘고 좋고 신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진급하고 돈 벌어서 신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진급도 하고 돈도 벌겠죠. 그러나 진짜 믿음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설계해놓으신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비록 그 자신이 너무 늙고 사라도 단산됐지만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는 그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들고 사라가 단산을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겠다고만 하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100세까지 아브라함을 끌고 가신 이유는 하나님이 이 아이를 주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시는가?’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생깁니다. 걱정하지 말고 고생하십시오. 이 삶의 현장은 내 육체와 함께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백 년, 이백 년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고통을 빨리 끝내려면 역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얼른 순종하면 됩니다. 얼른 깨달으면 됩니다. 시간을 오래 끌 필요가 없습니다. 내 삶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임을 빨리 깨달으면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어려움이 생기거든 ‘하나님이 나를 믿음으로 이끌어가시는 방법이구나.’ 이렇게 정리하면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의 목적입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설교까지의 요약입니다. 오늘 메시지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자처럼 되어 있는 나를 다시 살리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믿음 13절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으며 세상에서는 외국 사람이며 나그네임을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멀리서 그 약속을 보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환영하고 이 땅에서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사는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오늘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온누리교회 교인들은 힘들다는 말을 하지 맙시다. 실제로는 그렇지만 믿음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힘들지 몰라도 다음 자손 때에는 살아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고난을 뚫고 나가게 됩니다. 지금 경제가 나쁩니다. 이럴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할렐루야’하고 기쁘고 즐겁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징징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은 현재를 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보고 살고, 약속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학문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합니다. 이성은 우리를 설득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성은 기적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이해는 시키지만 이성이 기적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기적은 믿음으로 만들어집니다.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얘기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의심합니다. 이성적으로 믿었다고 해서 여러분의 자손 세대가 복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몰라서 못합니까. 믿음이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환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비전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그림을 하나 갖다 줬는데, 몽골의 한 사막의 몰아치는 먼지 속에 한 사람이 가만히 앉아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본향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이 떠오르면서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비바람이 치고 폭우가 들고 가뭄이 오고 풀 한 포기 없는 맨땅을 바라보고 서 있는 한 노인의 모습. 그러나 거기서 우리가 희망을 보고, 약속을 듣고 미래를 본다면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또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본향을 찾는 사람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향을 찾는 사람들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믿음의 사람들은 본향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본향이란 자기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고향이 있고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고향은 이 땅이 아닙니다. 더 나은 본향이 있습니다. 이 지상의 본향은 기껏해야 무덤 아닙니까. 돈 있는 사람은 좋은 무덤, 돈 없는 사람은 간단한 무덤. 들어가는 것뿐이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 무덤이 인생의 종착역이라면 인생은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아브라함에 의하면 더 나은 본향, 내가 창조 때 보았던 그 본향, 내가 죄 짓기 전의 그 본향으로 우리가 돌아간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14절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향을 찾는 사람들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CGNTV를 보다가 좋은 것을 하나 배웠습니다. 철새와 텃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철새는 추운 겨울을 피해 남쪽으로 왔다가 날씨가 변하면 죽을힘을 다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갑니다. 쉬고 싶고 피곤해도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간다는 겁니다. 그러나 철새가 힘들어 ‘여기가 좋구나’라며 주저앉아 살면 날지 못하는 텃새가 된다는 겁니다. 자막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철새가 되겠습니까? 텃새가 되겠습니까?’ 우리들에게도 같은 질문이 가능합니다. 힘들어도 더 나은 본향, 이 지상의 고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만들어주신 그 태초의 본향을 향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가는 것입니다.


15~16절입니다.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나은 곳을 사모하는데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한 도시를 예비하셨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죽음을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 설교를 많이 못 듣습니다. 지옥 설교도 많이 못 듣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니까 천국 이야기를 잘 안 합니다. 대신 성공하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언젠가 천국 시리즈 설교를 하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됩니다. 내 육체가 죽는 것이지 내 영혼이 죽는 게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 준비를 잘 한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살아 있는 동안 회개도 안 하고 예수도 안 믿고 정리를 안 한 채 죽으면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신 게 아니라 천국에 못 가는 것이 지옥입니다.  


천국을 사모함여러분, 곰곰이 천국과 지옥을 생각해보십시오. 구원은 왜 받습니까. 천국을 가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니고서도 천국을 못 간다면 그건 무엇입니까. 천국도 지옥도 잘 모르는 거니까 그냥 없는 것으로 하자, 나중에 좀 생각해보자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살아서 회개 못하면 죽는 순간부터는 회개가 안 됩니다. 불가능합니다. 모두 끝납니다. 회개를 하려고 해도 숨 쉴 동안 해야 합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결정이 나버립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천국 갈 자격과 조건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겁니다. 우리들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다는 것은 바로 이 말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내 심장이 멎는 순간 천사들이 나타나고 당신은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오늘 주제는 천국과 지옥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못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회개해야 합니다. 지옥에 가 보고나서 ‘아이고 안 되겠구나. 회개를 해야겠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마 저녁밥 먹고 별이 비처럼 쏟아지는 밤에 밖에 나가서 별을 보면서 16절 말씀을 묵상했을 겁니다. 내가 가야 할 곳, 더 나은 본향, 하나님이 예비하신 집. 이것을 더욱 많이 묵상할수록 천국이 나와 더 가까워지는 겁니다. 천국의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천국 하면 아무 생각도 안 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귀신의 세계만 봐서 천국은 꿈도 못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새 믿음을 가지십시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날마다 천국을 이루면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종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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