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내가 믿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 안에 의심을 심어주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믿음을 심어주십니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택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믿음시리즈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주제는 ‘믿음은 죽음보다 강하다’라고 할 수도 있고, ‘죽은 자를 살리는 믿음’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믿음에 대한 오해
우리는 믿음에 대한 착각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은 굉장히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고, 성경도 읽고, 주일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착하게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믿음이 성장하기는커녕 결정적인 순간에 포기하고 뒤돌아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고, 신앙에 대한 회의가 생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믿음에 대한 오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오해하고 착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오해로 인해 우리는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면 은혜가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도, 점점 제도적이고 율법적으로 되거나 종교적이고 형식적으로 되어가는 자기 안의 두꺼운 벽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러한 오해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나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노력이나 종교적 활동으로 인해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우리들은 자주 잊어버립니다. 처음에는 믿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믿다가도 한 1~2년쯤 지나면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능력으로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행위로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축복해주실 것 같고 봉사와 전도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나를 축복해주실 것 같은 그런 율법적인 생각에 자꾸 빠집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열매 없는 삶입니다. 믿음의 성장과 성숙이 없어지게 됩니다. 나로부터 만들어진 믿음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내가 만든 것에 무슨 생명력이 있겠습니까. 기적도 없고, 성장도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어떨까요. 비록 겨자씨만큼 작은 것일지라도 그곳에 말씀이 들어가고 성령이 역사하면 그 믿음은 놀랍게도 사람 키보다도 더 큰 나무로 변하게 됩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초신자들의 믿음은 씨앗과 같습니다. 그러나 작은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 있는 믿음이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믿음은 자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일지라도 내가 노력하고 내가 애쓰고 또 내가 성실하게 행해서 얻어지는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믿음은 죽기 시작합니다. 이런 오해를 오늘 아브라함이 풀어주고 있습니다. 한편 믿음은 가지고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믿음의 행위가 필요합니다. 율법적인 의미의 행위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죽은 나무와 살아 있는 나무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죽은 나무에 아무리 물과 비료를 주어 잘 관리한다고 해도 죽은 나무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나무는 물을 주고 해충을 잡아주고 비료를 주고 때를 따라 가지치기를 해주면 잘 자라고 열매도 풍성하게 맺힙니다. 믿음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믿음이 생기고 의심이 없어지고 근심도 사라지게 됩니다. 살아 있는 나무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 나무에 비료를 주고 물을 주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믿음을 열심히 가꾸는 것입니다.
또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집을 가꾸는 것과도 같습니다. 선물로 받은 새집이라면 입주해서 살고 깨끗하게 청소해야 그 집이 잘 유지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끝나면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의 행위와 율법적인 행위를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봉사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기 때문에 봉사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과 늘 가깝게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살아 있고, 생명력이 넘치고,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아무리 고난의 파도가 밀려올지라도 긍정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얼굴에서부터 빛이 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믿음
믿음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사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가장 먼저 심어주신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성령님을 알아보고 말씀을 알아보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머리가 좋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씨앗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눈을 감은 사람과 똑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보면서 발견하는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물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받은 믿음을 키우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믿음을 선물로 주신 뒤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주신 그 믿음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십니다. 이 순간 갈등이 생깁니다. 진짜 믿음을 가지면 이러한 갈등에 부딪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시한 것을 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것을 돌려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도 이러한 믿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100세에 나은 소중한 이삭을 청년 때에 제물로 바쳐 돌려달라고 하십니다. 17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바쳤습니다. 그는 약속들을 받은 사람이면서도 자기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습니다.”
믿음에 따르는 시험
이 말씀에서 발견하는 것은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시험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에는 시험이 따릅니다. 주신 것을 거두어가시는 시험입니다. 왜 이런 시험이 있습니까. 이 시험을 통과해야 믿음이 자라고 단단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위기에 부딪혔을 때 자라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시험을 주십니다. 그냥 쇠붙이를 가지고서는 아무것에도 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시험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실컷 얻어맞아야 합니다. 쇠붙이를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교만도 두드리고 오만도 욕심도 두드려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을 빼내기 위해 하나님은 시험과 시련을 주십니다. 이 시험을 받을 때 시험 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공법입니다. 믿음의 당연한 원리입니다. 시련이 없으면 내 믿음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100세에 태어나 아름답게 자란 청년 이삭을 볼 때 아브라함은 얼마나 깊은 정을 느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사랑스러운 이 아들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갈등을 느꼈을까요. 이삭을 바치는 행위는 한편으로는 예배지만 한편으로는 살인입니다. 예배와 살인 사이에서 아브라함은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갈등과 시련의 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즉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 외아들을 기꺼이 바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하기 전에 아브라함이 갈등을 했다면 18절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고 불릴 사람은 이삭으로 말미암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순간적으로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을 통해 자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 지금 이 아이를 죽이면 하나님이 스스로 그 약속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갈등입니다. 이삭을 바치라고 하면 기꺼이 순종하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갈등입니다.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기꺼이 순종합니다. 순종이 일목요연하게 이해되고 깨달아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순종은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아도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내 모든 걸 다 잃게 되고 모든 게 엉망이 되겠지만 순종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약속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약속
아브라함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굴곡과 모순들이 많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켜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갖는 순간에 주저없이 자기 아들을 내놓았습니다. 내 생명을 달라고 해도 줄 수가 있겠지만 아들의 생명은 쉬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과거의 슬픈 상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음성을 들은 지 10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을 때였습니다. 너무나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라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신경질을 내거나 전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라도 그랬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에게서 아기를 낳으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리석게도 사라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따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이삭과 이스마엘 간의 싸움이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까. 믿음으로 해야 할 때에 인간적인 생각이 끼어든 것입니다. 갈등이 심해지니까 인간적인 해답을 찾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안 주시면 다른 여자 하나를 얻어서 아기를 낳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속에서 끓어오를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내놓으라고 하셨을 때 이스마엘을 낳았던 상처가 다시 드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 아들은 죽어도 산다.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런 믿음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 시련도 있고, 시험도 있고, 고통도 있겠지만 이러한 때 답답한 나머지 다른 종교를 찾거나 점을 치거나 그릇된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길이 안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예전에는 조용기 목사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까이서 뵙고 보니까 그분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조 목사님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히듯 늘 설교하셨습니다. 이제 제가 나이가 들고 시련을 많이 겪고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시련과 믿음
여러분들도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시련도 겪고 갈등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하나 생기는데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오고 원망이 생기더라도 이 믿음이 생기면 약속은 현실이 됩니다. 그러면 죽음에서 벗어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저주와 질병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19절을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로 말하자면 그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로부터 돌려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비전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또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작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요 끝날 때까지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믿음이 바로 부흥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면 교회도 부흥하고 도시도 부흥하고 나라도 부흥합니다.
미래를 보는 믿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폭풍이 치고 파도가 치고 지진이 일어나고 천지가 진동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믿음의 싸움을 아브라함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를 보면 절망이지만 미래를 보면 희망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잘 설명해주는 책이 로마서 4장 13절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율법으로 인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인해 된 것입니다.”모든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환경과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인생의 연단을 받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흔들리지 말고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저는 믿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반드시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많고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하는데 어떻게 무너지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도 여러분이 계속 기도를 한다면 반드시 돌아오고 잘 될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싸움입니다.
로마서 4장 16~17절입니다. “기록되기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조상이 됐습니다.”오늘 말씀의 결론은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내가 믿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의심도 있고, 믿음도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 안에 의심을 심어주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믿음을 심어주십니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택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을 선택하라 창세기 22장 5절에는 아브라함이 “너희는 나귀를 데리고 여기 있으라. 나와 아이는 저기 가서 경배한 다음 너희에게 함께 돌아오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삭과 ‘함께’ 돌아오겠다는 말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은 믿음으로 죽을 때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했으며 자기 지팡이 머리에 몸을 기대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요셉 역시 믿음으로 죽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떠날 것에 대해 말했고, 자기의 뼈를 가지고 나갈 것을 지시했습니다. 여러분, 죽을 때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자손을 축복하고 죽는 것입니다. 자손을 축복하는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어떠할지라도 결국 남는 것은 약속과 축복입니다.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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