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주까지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사랑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믿음에 대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단어 중에 위대한 단어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물을 인지하는 능력을 많이 주셨습니다. 이성, 지성, 상식, 경험, 합리성 등을 주셔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성, 지성 등으로 사물을 알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이해하고, 믿음을 갖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인해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것이 은혜라면 그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려오기만 한다든지, 올라가기만 한다든지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믿음 때문이요,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믿음 때문이요, 성령님을 받게 된 것도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실 때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실 때는 반드시 이 ‘믿음’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이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준 은혜로 네가 믿음을 갖게 된다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도 소유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라고 다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가짜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생각한 믿음, 내가 꿈꾸는 믿음, 내가 설계하고 디자인한 믿음은 진짜가 아닙니다. 내 머리, 지식, 신념, 생각에서 나온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에 많이 속으며 살아왔습니다. 요즘 서점에서 자기개발에 대한 책이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그 책들은 너무 불안해 하고 근심걱정이 많은 현대인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 있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아니라 심리학적 믿음입니다. 다 가짜입니다. 자기 생각에서 나온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진짜 믿음은 내 생각, 지식, 합리성,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성령의 감동에서 나오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나의 능력, 지능에서 나온 믿음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 아무 능력도 행사하지 못합니다.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 적극적 사고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은 진짜 믿음에도 있고 가짜 믿음에도 있습니다. 진짜 믿음을 가지려면 가짜를 구분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향해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거라’ 하면 옮겨 갈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마 17:20) 아무리 작더라도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은 능력이 있습니다. 진짜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크고 화려해 보여도 인간에게서 나온 것은 가짜입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내 믿음이 진짜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10년 동안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믿음을 뒷받침하는 확신
둘째, 내 믿음이 진짜라 할지라도 믿는 사람에게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진짜 믿음이라고 해도 내게 확신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확신이 없이 적당히 믿으면 낭패를 봅니다. 더 헷갈립니다. ‘나 이거 믿었는데, 예수님 말씀으로 믿었는데, 확실히 믿습니다 했는데, 침을 튀겨가면서 내가 입술을 깨물어 가면서 했는데 왜 이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금식하면서 했는데, 철야하면서 했는데, 내가 헌금도 많이 하면서 했는데 왜 안 되냐?’는 것입니다. 혼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17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조금 이상한 행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 밖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성 안으로 들어오시는 길이었습니다. 시장하셔서 길가에 있는데 마침 있던 무화과나무를 보고 가까이 가셨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에는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다시는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쨌든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자마자 즉시 이 나무가 말라버린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당황을 해서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이렇게 당장 말라 버렸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부인할 수 없고 예수님이 하신 행동도 부인할 수 없지만 이해하기는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게 진짜 믿음이 있지만 이 믿음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말씀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성령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계속 이성, 지성, 상식, 합리성에 근거한 믿음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에게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해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다.”(마 21:21~22)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말씀에서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이라는 말씀에 밑줄을 치십시오. 이 말씀은 ‘너희의 믿음의 순도가 몇 퍼센트냐?’는 뜻입니다. 순도 100%인지, 80%인지, 50%인지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성이 통하지 않아도, 상식에 거슬러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심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저 하용조 목사의 말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도 다 가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만이 진짜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우리와 똑같은 형편에 있습니다.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못 믿는 것도 아닌데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설교를 들을 때는 너무 좋은데 말씀 앞에 서면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분석해 보면 첫째,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했더니 그냥 말라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성을 뛰어넘어 진짜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둘째,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너도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런 일을 너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까 더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그냥 “얘들아, 그건 나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당황스럽지 않을 텐데 “너도 할 수 있다”고 하시니까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아멘”하며 어린아이같이 믿는 사람이 있고, 당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 뿐만이 아니라 이것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네가 순도 100%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 산에게 ‘들려서 바다에 빠지라’고 해도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적을 부르는 믿음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좀 너무 심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에이~ 내가 남산에게 들려서 한강으로 가라고 한다고 그대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믿음 안에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신앙 안에 살고 있습니다. 수 없이 교회에 들락날락하면서도 우리의 진짜 믿음은 자라지 않고 불신앙에 아주 익숙해집니다. 그러니까 그냥 문제를 덮어버립니다. 내가 못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말레이시아에 사시는 목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무이라는 분입니다. 그분은 태생이 고아입니다. 부모가 누군지를 모릅니다. 자기가 말레이시아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분이 안 되게 살았답니다. 희망도 없고 가난하게 살던 중에 이 분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때 진짜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분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중에 ‘야, 이 사람은 순도 100% 믿음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을 보는 순간에 ‘나는 말씀을 전하기만 했지 말씀을 믿지는 않았구나. 나는 가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말하면 그대로 병이 다 나았습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병이 다 나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나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나하고 이분과의 차이가 뭔가?’하는 생각에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믿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저는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도 100%로 믿으면, 따지지 않고 믿으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확신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저는 제 부끄러움을 고백하기 위해서 이 설교를 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죠. 말씀 안에 있는 능력이죠. 저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나도 할 수 있고 이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믿고 그대로 합니다.”
믿음은 실체요 증거
오늘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1절). 믿음의 정의를 말하는 이 말이 얼마나 확신이 있고 분명합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가 아닙니다. 확실한 고백입니다. 여러분과 제게 이 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이 고백이 없습니다. 이 말은 믿습니다. 그런데 능력이 없습니다. 믿음은 내가 바라고 구하고 희망하는 것의 실체입니다. ‘실체’라는 단어를 여러 번역서에서 찾아보면 실상, 보증, 확증, 권리문서, 사실, 기초… 이런 말입니다. 또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변함없는 확신,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원리는 놀라운 것입니다. 한번 믿지 않으면 계속 믿지 않습니다. 한번 의심하면 계속 의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번 믿기 시작하면 믿음이 믿음을 낳습니다.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롬 1:17)’는 말은 믿음이 믿음을 낳는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많습니다. 기도하다가 보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제가 놀랍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치유은사와 신유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계속해서 선포를 합니다. 그러니까 기적이 계속 일어납니다. 믿음이 믿음을 낳고, 치유가 치유를 낳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오늘만 믿고 내일은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고 선포하십시오. 오늘이 온누리교회 창립 23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저는 23년 동안 말씀을 계속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23주년을 맞아 저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게 능력을 주십시오. 제게 치유의 은사를 주십시오. 저만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병을 다 고칠 수 있는 믿음을 내게 주십시오.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이제 목회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처럼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교인들이 참 불쌍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제가 낫지 않으니까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 교인들이 행복할 것입니다. 제가 기도하면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이 제게 필요합니다. 이제 제가 인생의 후반전에서 교인들한테 줄 수 있는 것은 능력입니다. 말씀이 능력이요 변함없는 능력입니다.
믿음으로 보이는 세계
둘째, 참으로 조상들은 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2절). 확실하게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인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폼 잡고 잘 보이려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인정받지 못합니다. 셋째, 앞선 두 절에 이어 실제적인 두 가지 예를 듭니다. 하나는 천지창조의 예고, 다른 하나는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믿음의 조상에 관한 예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됐고 따라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지어지지 않은 것을 압니다. (3절) 여러분은 미생물의 세계를 아십니까? 혹시 이 자리에 미생물학자가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은 보통 사람들이 모르는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생물과 동물의 세계를 아십니까? 우리가 가끔 TV를 통해서도 보고, 책으로도 보지만 전문 학자들이 보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우스운 것이겠습니까. 제가 한번은 오키나와에 설교하러 갔다가 오키나와에 유명한 수족관이 있다고 해서 가 봤습니다. 굉장히 큰 유리 밑에서 고기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데 얼마나 놀랍던지요! 저는 꽃을 보거나 물고기들을 보면 놀랍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요. 특별히 고기들의 모양이 다 다릅니다. 사각형, 삼각형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서 모양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색깔이란! 도대체 그런 색깔이 어떻게 나왔을까요. 동물의 세계, 식물의 세계는 그렇다 할지라도 인체는 어떻게 그리도 신비스러울까요. 인체, 지구, 우주에 대해 과학자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발견하지 못한 것의 백만분의 일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아주 큰 퍼즐의 작은 한 조각일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무엇으로 알까요?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압니다. 할렐루야. 아멘.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이것을 믿음으로 알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생각하면 걱정, 근심할 게 없습니다. 금덩어리만 보느라고 땅만 보며 살지 말고 하늘을 향해 별을 보십시오. 희망을 가지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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