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이끈 믿음의 사람들
성경에 나오는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쉽게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사람의 상식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자기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여호수아 군대는 요단강을 걸어서 건넜고, 여리고 성을 매일 돌고 나팔을 불었을 때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사건이 구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으로 오면 좀 더 심합니다. 귀신이 나가고, 병든 자가 낫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셨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상식, 이성, 합리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기 힘든 일들이 어느 날 성령님이 임하시면 눈물을 흘리면서 믿어집니다. 천지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믿게 됩니다. 이성의 눈으로 볼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믿음의 눈으로 보면 보이기 시작하고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예수 믿기 전에도 하고, 믿고 나서도 계속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왜 여기 와 앉아계십니까? 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한 시간도 설교를 못 듣습니다. 내 이상, 내 상상, 내 꿈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분들은 설교를 들으면서도 땀을 뻘뻘 흘립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받아들이고 믿음이 있는 분들은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정말 말씀이 달콤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켰고, 기적을 만들어 냈고, 역사의 등불이 됐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역사의 주인공은 이성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벨과 에녹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예를 들어 믿음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어느 단면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여러 종류의 믿음의 사람들을 등장시켜서 그 사람의 믿음의 독특성, 개성을 설명해 줍니다. 나중에 이것을 다 합하면 믿음의 전체 그림이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이 제일 처음 보여준 믿음의 사람은 아벨이었습니다.(히 11:4)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아벨의 믿음은 예배였습니다. 아벨은 참 예배를 드림으로, 어린양의 피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믿음의 기초는 예배임을 깨우쳐줍니다. 예배를 통해 의롭다함을 얻은 것, 피의 제사를 통해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지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아벨이 이 모델입니다.
두 번째로 성경은 에녹의 모델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히 11:5)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이 믿음의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나를 기쁘게 하거나 즐겁게 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던 에녹을 통해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은 에녹을 두 번째 모델로 소개해 줍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잘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믿음의 기초는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아 갔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시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바랍니다. 직업이 없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걷고 잠을 잘 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오.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노아의 순종
오늘은 세 번째로 노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쉽게 이야기 하면 불가능한 명령에 순종해 기적을 일으킨 믿음입니다. 아벨, 에녹의 믿음은 열심히 생각하고 묵상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이 노아의 믿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에 좀 가깝습니다. 우리가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고, 없는 것을 있게 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너무 많이 하면 균형을 잃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의 믿음을 통해 우리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노아는 패역한 세대에 타락하지 않는 유일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창 6:8)
이 말씀을 보면 세상은 타락했는데 노아만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친구들은 다 타락했는데 나만 거룩해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주변 국가가 다 타락했는데 우리나라만 타락하지 않는 것도 굉장히 외롭고 고독하고 힘듭니다. 그런데 노아가 그랬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으로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창 6:9)
9절 말씀을 보면 노아에 대한 세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 ‘완전한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러나 마음이 복잡하고 더럽고 추악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노아는 당대 의인이었고 완전한 사람이었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심판을 알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육체의 끝이 이르렀다. 그들로 인해 땅이 폭력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내가 곧 그들을 세상과 함께 멸절하겠다.”(창 6:13)
노아에게 들린 하나님의 음성은 이 세상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너는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그 방주에 방들을 만들어라. 그 안팎에 역청을 발라라.(창 6:14)
여러분, 역사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의 심판을 받을 때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이 지구에 종말이 올 때도 하나님께서 거룩한 교회와 거룩한 예언자들을 통해서 미리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심판은 연기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되면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 역사의 심판을 미리 말씀해 주십니다. 문제는 이 경고의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이 경고음를 듣지 못하면 다 무너져 버립니다.
노아는 ‘이 땅에 심판이 올 것이다’, ‘너는 방주를 지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방주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것이란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경험해 본 것은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는 물건을 만들라고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노아가 방주를 단 한 번이라도 상상해 본 적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노아는 “아멘”하고 행동합니다. 사람들에게 노아가 뭐라 설명했겠습니까? 자신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듣는 사람은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크기를 보십시오. 성경에 길이가 300규빗, 넓이가 50규빗, 높이가 30규빗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38m, 23m, 14m입니다. 축구장 넓이만한 크기입니다. 설계도도 없이 2만 톤 규모에 3층 높이 배를 노아와 세 아들에게 지으라고 하니 어땠겠습니까? 아들들이 순순히 말을 들었을까요? 많이 양보해서 4가정 8명이 잣나무로 이것을 짓는다고 칩시다. 그런데 바닷가가 아니라 아라랏산 꼭대기에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기절할만한 일입니까.
산 위에 만든 방주
하나님께서는 배가 아니라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배는 동력이 있어서 항해를 할 수 있는 반면 방주는 앞뒤가 없이 그냥 떠 있기만 하는 것입니다. 돛도 없고 키도 없어서 그냥 물이 가는 대로, 파도가 치는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배를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배를 운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 때 아무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해도 ‘아멘’하고 뛰어들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노아의 믿음을 배웁니다. 노아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음성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엄청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믿을 만하니까 믿고, 이해 될 만한 것만 골라서 믿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것, 믿을 수 없는 것은 믿는 척하지만 사실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습니다. 기적을 믿고, 부활을 믿고, 천국을 믿습니다. 이성으로는 잡히지 않지만 믿음으로는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경고를 받고 자기 집안의 구원을 위해 경외함으로 방주를 지었으며 이로 인해 그는 세상을 단죄했습니다. 또한 그는 믿음으로 인해 의의 상속자가 됐습니다. (히 11:7)
7절에서 노아의 믿음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타락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심판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경고가 있습니다. 노아는 이 경고에 귀를 기울였고 깨달았습니다. ‘아, 머지않아 심판이 오는 구나.’ 비록 미래를 보지 못했지만 본 것처럼 확신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경고만 들어도 미래를 현재같이 보는 눈이 생깁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미래를 준비하고 방주를 예비합니다.
명하신 대로 하다
둘째, 노아는 ‘자기 집안의 구원을 위해’ 방주를 지었습니다. 구원에는 개인구원, 가족구원, 사회구원, 인류구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가족구원입니다. 물론 개인구원을 통해서 가족구원이 이루어집니다마는 사회, 국가가 구원을 받으려면 가족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데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니라 내 가족부터 구원해야 합니다. 혼자 예수 믿고 안심하고 교회 다니는 분들은 오늘 회개하시고 예수를 믿지 않는 가족들을 먼저 구원하시기 바랍니다. 전화하십시오. 만나지 못하면 기도하십시오.
셋째,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밝고 건강한 것은 좋지만 이 두렵고 떨리는 모습을 잃어버린다면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에는 두렵고 떨리는 경건의 태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경고와 심판을 들었을 때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넷째, 노아는 방주를 지었습니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도 처음에는 도와주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방주에 자녀들과 며느리까지 다 동승한 것을 보면 그 자녀들도 믿음으로 순종하고 구원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노아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했습니다. 땅에 홍수가 났을 때 노아는 600세였습니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의 며느리들이 홍수를 피해 방주로 들어갔습니다.(창 7:5~7)
‘노아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행했습니다’라는 말씀에 밑줄을 치십시오. 할렐루야!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순종하십시오.
구원받은 노아
그리고 모든 짐승이나 새들이 하나님께서 지시한대로 다 순종했습니다. 어떤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는 3,500종, 조류는 8,600종, 파충류와 양서류는 5,500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전부 다 합하면 17,600종인데 각 쌍으로 계산하면 35,200종입니다. 짐승 한 마리가 평균적으로 양 정도의 크기라고 했을 때 방주에는 125,280종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설교할 때마다 제일 걱정입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해도 동물들을 두 쌍씩 넣을 때 안 들어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이놈 하나 잡아서 갖다 놓으면 저놈이 도망가고 그러면 얼마나 정신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 그런 설명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을 해 보니까 분명히 그 짐승들이 다 감동을 받아서 조용히 시키는 대로 들어가서 그 다음부터 겨울잠을 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동물들 음식이며, 배설물이며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그 일을 하셨을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이 만지시면 다 가능한 일이 됩니다. 믿음으로 하면 불가능한 일도 다 가능한 일로 바꾸어집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이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노아가 방주에 탄 것은 노아가 세상을 단죄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노아가 의인이요. 그의 믿음이 옳다면 이세상이 잘못된 것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이세상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는 요즘 CGNTV에서 창조과학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에 의하면 이 지구에는 오존층이 있고 물층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지구가 온실에 있는 것처럼 덮여 있었는데 이 물층이 깨져서 하늘에 있는 물이 다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또 지하에 있는 샘물이 다 터지고, 바다에서 화산이 터졌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상상을 한다면 엄청난 높이의 쓰나미가 비행기 속도로 덮쳤을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물이 아니라 진흙이랍니다. 진흙을 몰고 다니면서 도시를 다 덮친다는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쓰나미가 한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덮친다는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들어보니까 지구 종말은 순식간일 것 같았습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숨 쉬는 것은 다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노아만 살아남았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이 노아의 믿음을 사모하고 갖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방주를 지으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에게 노아의 믿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어떤 하나님의 명령도 순종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정리 : 서철 차장 chol@onnuri.or.kr/ 일러스트 : 최정훈 www.illustscho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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