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억울하게 도망자 생활을 할 때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쿠데타나 반역을 도모한 것도 아닌데 사울의 미움을 받아 도망을 다녔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해 악신이 들려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너무 힘들어서 블레셋으로 망명을 하기도 했지만 거기서도 어려움을 당했고, 주로 광야에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억울하게 쫓겨 다니면 불평,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그힐라에 숨었을 때 블레셋이 쳐들어왔습니다. 사울 왕은 자기 백성들을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윗만 추격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쫓기면서도 그힐라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좋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힐라 사람들은 다윗을 보호해 주지 못했고 또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 광야 호레스라는 곳으로 왔고 사울도 다윗을 쫓아왔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위기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이 말씀은 우리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줍니다.
첫째, 위기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입니다(15절~16절).
어려움, 고통,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예상하지 못한 위기의 순간을 맞습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내 실수가 아닌데, 난 열심히 살았는데 다윗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일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 위기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위기에 빠진 다윗을 위해 요나단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위기 가운데 있다면 바로 그 시간이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시간입니다. 위기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광야가 아니면 새벽기도도 하지 않을 사람이 많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 내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위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위기는 현실을 넘어 비전을 보는 시간입니다(17절~18절).
위기 가운데 있는 다윗에게 요나단은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은 요나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 “내 아버지 사울은 자네를 죽이지 못한다.” 어려움이 너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다.” 지금은 어렵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 비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자네 다음이다.” “내 아버지 사울 왕도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실제로는 사울 왕도 이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승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승리를 이미 갖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얼마나 두렵고 힘드셨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사단도 좋아하고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도 좋아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승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결정해 놓으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고난, 현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눈을 들어 미래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부활의 영광을 보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주님과 같이 담대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십시오. 고통의 크기는 꿈의 크기와 비례합니다. 고통이 클수록 여러분이 얻을 영광도 클 것입니다. 현실을 넘어 비전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셋째, 위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입니다(19절~25절). 본문을 보면 다윗이 그일라라는 곳을 떠나 십 광야로 들어갔는데 십 광야에 있는 사람들이 사울 왕에게 다윗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십 광야에 있는 사람들은 유다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도 유다 지파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다윗을 보호하고 도와줘야 될 그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하고 사울 왕에게 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울 왕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사울은 다윗을 도와줬다는 이유만으로 제사장 85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무서웠을 것입니다. 위기 때 우리는 도와줄 사람을 찾지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위기 때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배신을 잘 합니까? 사람을 의지하면 시험에 듭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우리는 무너지게 되어 있고,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잡으면, 하나님께 집중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는 상처도 받지 않고, 배신도 당하지 않고, 도리어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을 놓쳐버립니다. 하나님을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사람은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의 산성이다. 나는 너의 피난처다”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홍해 앞에 가로 막힌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려워했을 때 모세가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굳게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에게 행하시는 일을 보아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축원합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위기는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입니다(26절~29절). 결국 십 광야에 있었던 다윗은 사울이 추격해 오기 때문에 또 도망을 치게 됐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을 가다가 결국은 독 안에 든 쥐가 됐습니다. 이제는 사울 왕에게 잡히게 됐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사울 왕이 그 블레셋을 막아야만 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결국 사울이 돌아가게 됐습니다. 다 잡은 다윗을 하나님의 섭리로 잡지 못하고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할 때 넘어졌던 다윗은 결국 하나님을 바라봤고,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놀라운 방법으로 다윗을 구해 내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곳 이름을 ‘셀라하마느곳’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분리의 바위’라는 뜻입니다. 사울 왕의 공격으로부터 다윗을 분리시켰다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과 절망감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 분리의 바위가 필요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모든 원수로부터, 모든 고난, 위기, 환란으로부터 분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위기는 죽음, 절망, 아픔, 근심, 걱정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가운데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기 가운데 계신다면 주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보십시오.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고, 억울하게 비난을 당하고,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쫓겨 다닐 때, 그때 하나님께 받은 복을 세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일어나서 주님을 바라보시고 우리에게 크신 복을 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걱정 근심이 우리를 누를 때, 세상에 모든 풍파가 우리를 흔들 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다시 일어나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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