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명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과 제사장들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하라고 하시며 구체적인 형식과 내용을 가르쳐 주십나다. 왜 그러셨을까요? 제사장에게 그냥 축복하라고 하면 어떻게 축복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쓸데없는 축복을 하는 사람, 심지어 마치 자기 자신에게서 복이 나는 것처럼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공식을 주시며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축복하라고 하십니다(27절). 이것은 이 축복의 기도를 주문처럼 외우면 저절로 일이 풀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 약속,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가에 대해 올바로 깨닫고 반응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내용이 24~26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비노라.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 비추시고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비노라.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너를 향해 드시고 네게 평강을 주시기를 비노라.”
이 말씀은 히브리어 단어 15개로 되어 있습니다. 이 축도는 세 열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통적으로 ‘여호와께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한글 성경으로 보면 ‘여호와께서’가 맨 앞에 나오지만 히브리어는 동사가 먼저 나오기 때문에 ‘여호와께서’가 항상 두 번째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히브리 문법적으로 보면 한 번만 써도 문제가 없지만 그것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단어 15개 중에서 ‘여호와’라는 단어 3개를 빼면 12개가 남습니다. ‘12’는 열 두 지파, 열 두 제자, 즉 모든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뜻입니다. 24절은 3단어, 25절에는 5단어, 26절은 7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시각적으로 확장, 풍성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호하시는 축복
세 구절에서 ‘…하시고’에는 ‘그리고’라는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한 구절 안에 두 단어가 나오면 앞에 있는 단어는 일반적이고, 뒤에 나오는 단어는 특별한 것을 의미합니다. 뒤에 나오는 단어가 앞에 나오는 단어를 보충해서 설명하는 식입니다. 그러한 해석법을 적용하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키시는 복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 위해 얼굴을 비추신다’,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시기 위해 얼굴을 너를 향해 드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 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축복은 하나님의 보호입니다(24절).
광야를 여행하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보호, 즉 안전입니다. 광야에서 살다보면 물이 없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짐승이나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광야의 삶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호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아기는 무엇이든 입으로 갖다 넣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기가 이물질을 먹지 못하도록 주변을 다 치웁니다.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사고가 나지 않도록 장애물을 치우고 조심하고 살핍니다. 아기가 잘났기 때문에 사고 없이 크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이미 보호했기 때문에 잘 자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사는 것은 우리가 잘 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지구상의 온도가 1도만 올라가도 재앙이 일어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보호하는 것을 멈추시면 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시 121:4~8).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우리도 지키십니다.
은혜의 축복
두 번째 축복은 하나님께서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25절).
첫 번째 축복보다 하나님께서 조금 더 움직이십니다. ‘얼굴’은 존재를 나타내는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뒷모습만 봐서는 그 사람의 감정, 인격, 성품을 알 수 없습니다. 얼굴은 그 속에 있는 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할 때 얼굴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십니다.
그럼 ‘얼굴을 네게 비추신다’는 무슨 뜻일까요? 얼굴에서 광선이 나온다는 것이 아니라 ‘전달된다’ ‘드러난다’ ‘알려진다’는 뜻입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친밀하게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참된 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얼굴빛을 우리 심령 속에 비춰주시는 순간,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 번째 축복은 하나님 자신의 얼굴을 드셔서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26절).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아주지 않자 가인이 몹시 화가 나서 고개를 떨구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창 4:5).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는 몹시 화가 나면 고개를 떨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입니다. 그렇다면 얼굴을 든다는 것을 무슨 뜻이겠습니까? 몹시 기쁘다는 뜻입니다.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는 뜻입니다. 시편 24편에 보면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왕이 들어가는 문들까지도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고개 들어 주를 맞이하라’는 말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얼굴을 드신다는 것은 우리를 향해 기뻐하고 즐거워 하신다는 뜻입니다. 때로 우리 인생에 먹구름이 찾아오고 광야의 기간을 지날 때도 하나님은 웃고 계십니다. 끝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 심령에 평강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평강의 축복
하나님의 축복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알지 못할 때도 보호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지라도 함께 하십니다. 보호하심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함께 하십니다. 우박이나 벼락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만 떨어지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에게만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치사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보호하시고 햇빛과 단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러나 악인이 누리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평강입니다. 은혜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평강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런 평강을 우리 자신만 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녀, 이웃, 민족, 나라,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평강이 비추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며 그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소서. 그리하여 주의 길이 땅에 알려지고 구원하시는 주의 힘이 온 민족들 사이에 알려지게 하소서(시 67:1~2).” 이런 기도를 날마다 해야 합니다. 날마다 저와 여러분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축복할 때 가정, 일터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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