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처음으로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어 약간 흥분이 됩니다. 다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일간지 기자가 저한테 “그렇게 큰 수술을 받고 나서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저는 이 질문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수술은 간단했지만 그 후 회복과정이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잠을 못자고, 진통제를 맞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 수술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습니다.
부족함과 연약함 보게 하신 하나님
첫째, 하나님께서는 제 부족함과 허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일에 열중하다보면 자기 허물과 부족함이 잘 안 보이기 마련입니다.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상처준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때로는 옳은 일이지만 겸손하지 못해서 동역자들에게 어려움을 끼쳐드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회개를 했습니다.
둘째, 육신의 연약함에 대해서 많이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정말 연약한 존재구나’, ‘하나님이 돌봐주시지 않는다면 쉽게 깨지는 유리 같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강하면 장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아프면 그 장기가 어디에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장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나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어디 장기뿐이겠습니까? 뼈, 근육, 핏줄, 신경, 두뇌 등 인체의 어느 부분, 어느 조각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정신적인 면도 있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요. 인간은 그렇게 큰소리칠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많이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회복의 원동력 ‘말씀과 기도’
셋째,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은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육신이 아프고 약해지니까 ‘왜 사는가’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잡념처럼 생각났습니다. 그러한 고통 중에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기도로 저를 건져 주셨습니다. 인간의 연약한 육체, 많은 허물과 실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끊임없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과 말씀의 능력에 접붙여질 때 저는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이 혼미하고 고통이 계속 되었을 때도 주변 사람들은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 주셨고, 기도를 해 주셨고, 찬송을 불러 주셨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격려는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진 것처럼 내 영혼을 흔들었습니다. 기도 소리가 부딪치고 찬송 소리가 부딪치고 말씀 소리가 부딪치면 고통이 깨어지고 아픔이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오래 있었는데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방에서 저와 함께 열흘 밤을 꼬박 함께 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와 감동이 흘러 넘칩니다.
성도님들이 손을 들고 저의 회복을 위해서 통성기도를 해 주시는 것을 CGNTV로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장로님들과 목사님들이 24시간 띠 기도를 해 주셨다는 말씀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수많은 성도님들의 격려와 기도들이 모여 저의 회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제 회복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넷째, 비전과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몸이 아픈 동안에 제가 얼마나 심심했겠습니까. CGNTV가 저를 구해줬습니다. CGNTV를 통해서 주일날 예배 드리는 것, 그것은 여러분이 체험해야 진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러브소나타는 저에게 기대감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애를 써도 다리가 휘청거리고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대만 러브소나타에는 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요코하마 러브소나타에서는 꼭 설교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러브소나타 포스터에 제 이름을 넣었습니다. 그때까지 건강이 회복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내가 요코하마에 가서 설교하겠습니다. 혹시 설교를 못하면 인사라도 하겠습니다”라고 선포를 했습니다. 그렇게 선포하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목소리도 좋아지고, 얼굴 표정도 밝아지고, 마음도 건강해져서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은 그런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건강을 다시 찾았고 수술 후 처음으로 오늘 주일강단에도 서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약속을 보십시오
제가 왜 서서 설교가 안 되면 앉아서라도 설교를 하는지 아십니까? 설교를 하지 않으면 제가 죽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제 스스로 자꾸 주저앉게 됩니다. 생각이 주저앉아 부정적이 되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크게 보입니다. 이 큰 교회를 끌고 가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쉬운 것만 골라서 하고, 불가능한 일은 빼버리고 편한 것만 하려는 유혹이 생깁니다.
하지만 설교를 하면 달라집니다. 우선 제가 살아납니다. 그래서 저는 죽을힘을 다해서, 앉아서라도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온누리교회가 비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도, 우리 조국도 날아야 합니다. 우리 믿음도 비상해야 합니다. 걸어가고 뛰어가서는 되지 않습니다. 현재 같은 상황에서 무슨 기적이 일어나겠습니까? 기도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데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내게 변화가 있으려면 비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을 기는 믿음, 생각하는 믿음에 주저앉지 마십시오. 날개를 활짝 펴서 독수리처럼 날아가는 그런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왜 40일 특별새벽기도를 매년 하는지 아십니까? 새해가 되면 ‘좀 쉬자’, ‘좀 그만두자’ 등 이런 생각이 너무나 강렬하게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 건강도 여의치 않습니다. 살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새벽기도입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새벽기도를 하니까 건강 문제도 그냥 넘어가고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제가 살아나니까 여러분도 살아나고, 교회도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미래를 향해 믿음을 가지고 약속을 바라보라”입니다. 설교하면 저는 살아납니다. 기도하면 저는 살아납니다. 살아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전, 새로운 사명도 깨닫습니다.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지고, 안 되던 일들이 되고, 없는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그런 역사와 기적을 체험합니다. 내게 능력이 없을지라도 성령을 의지하고, 비전을 보고,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사명을 위해 앞으로 진행하면 모든 장애물이 폭발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믿음의 여행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최후 명령
우리의 비전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내 비전과 내 사명이 아닙니다. 우리의 비전과 사명을 설명해 주는 성경말씀 두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 말씀과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입니다. 먼저 마태복음 말씀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18~2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갈릴리 바다에 모아놓고 하신 마지막 최후의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온누리교회를 지을 때 머릿돌에다 이 말씀을 새겨 넣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당신은 왜 예수를 믿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님처럼 되고 싶어서 예수를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답입니다. 정답이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예수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써서 노력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해야 예수님처럼될 수 있을까요? 해답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예수님을 닮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어떻게 예수님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예수님처럼 되길 원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합니다. 세상에는 성숙한 사람도 있고 미숙한 사람도 있고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약간 사기성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언제 예수님처럼 돼서 예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오로지 예수님처럼 된다는 목표만을 향해 간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실수가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게 되면 뭔가 변화가 생깁니다. 뭔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비전이요 사명입니다.
예수님 말씀 가운데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있어도 “나를 닮아라”는 말씀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언제나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는 못난 사람, 잘난 사람,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자격 없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나처럼 인격이 훌륭하고 도덕이 완성되고 실수가 없으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부족한 대로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없는 대로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따르다 보면 조금씩 주님의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격적으로 완성되어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우리의 인격도 완성되고, 우리의 부족함도 알게 되고, 우리의 허물도 알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번 병을 통해 이런 축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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