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사랑의 교향곡

새벽지기1 2019. 7. 4. 07:38


여러분이 기도해주신대로 제 건강이 이제 설교 할 만큼 회복되었습니다. 기쁜 얼굴로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지난 1년 동안 일본에서 ‘러브소나타’를 계속 섬기면서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은 과연 일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또 일본 사람들을 만난 후로는 이런 생각도 있었습니다. ‘일본 사람은 과연 한국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역사적 상처가 있습니다.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정말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열심히 사랑하다가도 ‘이 사랑이 얼마나 갈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그 상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상처가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와 일본은 영원히 함께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고린도전서 13장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잘 보여주는 책도 없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말씀이지만 저는 이 말씀을 다시 붙들고 ‘사랑의 교향곡’이라는 주제로 사랑에 대한 일곱 가지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랑의 말을 하십시오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가 서론입니다. 동시에 본론이기도 합니다. 내가 만일 사람의 언어와 천사들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소리 나는 꽹과리와 같을 뿐입니다.(1절) 첫째,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소리 나는 꽹과리와 같을 뿐입니다. ‘사람의 언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 앞에 가면 기가 죽습니다. 영어만 잘 하는 사람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선교사님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언어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언어가 얼마나 많습니까. 수천 가지가 있는 사람의 언어를 화려하고 해박하게 구사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냥 울리는 징과 같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말’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사람의 언어와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땅의 언어가 아니라 하늘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방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방언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정말 천사의 말처럼 아름답고 성숙하게 방언으로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여려 번 봤습니다. 방언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도 있지만 정말 거룩한 방언 앞에서는 겸허해지고 머리가 숙여집니다.  한번은 미국에서 어떤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제 손을 꽉 잡더니 “목사님, 제가 기도를 좀 할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언을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 하늘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사람의 말과 천사의 말을 다 통달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울리는 징이나 소리 나는 꽹과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사랑하십시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옳은 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옳은 소리라고 합니다. 정의로운 소리, 바른 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까? 그 소리는 맞지만, 그 말은 맞지만 그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변하지 않고 시끄럽기만 합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생각하고 하는 말 중에 건질만한 말은 몇 개나 될까요? 어쩌면 다 쓰레기통에 가도 괜찮을 말들을 가지고 우리는 열심히 핏대 세우며 말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눈물, 감동, 사랑이 있는 말이 몇 마디나 되겠습니까? 어쨌든 사랑이 없으면 모든 말은 울리는 징이나 꽹과리와 같습니다. 내가 만일 예언하는 은사를 가지고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2절) 


둘째,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지식 가운데 가장 탁월한 지식은 과거를 해석하는 지식이나 현재를 이해하는 지식이 아닙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지식이 탁월한 지식입니다. ‘예언하는 은사’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영적으로 미리 알아보고 판단하는 은사입니다. 요즘에는 부쩍 성령님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들이 도처에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아프리카, 남미 등 신유의 능력이 강한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비밀을 다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모든 일을 다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그런 사람이 목회하면 저는 물러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병이 낫고 믿음으로 산을 옮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하지만 이런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만큼 고생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으면 작은 부스러기라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예수님도 병을 많이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면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사람을 향한, 병자를 향한 긍휼한 마음,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가치를 두십시오  


내가 만일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남을 돕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3절) 셋째,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세상은 구제와 봉사에 큰 가치를 둡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자기 전 재산을 내놓기도 하고, 시간을 내어서 봉사하고, 선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내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면 이것보다도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깍쟁이도 많습니다. 헌금할 때마다 벌벌 떨고 교회에서 무슨 돈 얘기하면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전 재산을 다 내어 놓은 사람입니다. 또 한 사람은 자기 몸을 불사릅니다. 왜 불사를까요? 이념, 사상 때문입니다. 대개 불사르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 때문에 몸에 불을 지릅니다. 하지만 구제하고, 봉사를 수없이 많이 하고, 사람들이 기억 할 수 없을 정도로 선행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할지라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여러 가지로 좀 불편한 마음이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시위를 하는데 그 얼굴에 폭발적인 분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정당화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좌파든 우파든 사랑이 없는 시위, 봉사, 소리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로서 저는 성직자들은 집단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들의 얼굴에 분노와 폭발적인 언어가 등장하면 저도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설교하는 입으로 분노를 터뜨리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나’에게 사랑이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3장 1절부터 3절 말씀을 보면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내게 사랑이 없으면’ 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사랑이 있느냐입니다. 이 세상은 “네게 사랑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고 불만을 털어 놓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어떻습니까? 대개 자신에게 사랑이 없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사랑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기 마련입니다. 정의가 없는 사람일수록 정의를 부르짖기 일쑤입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약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듯이 사랑이 없는 행함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 보면 1절에는 사람의 말과 천사의 말, 2절에는 예언의 은사, 모든 비밀, 모든 지식, 산을 옮길 만한 믿음, 3절에는 구제와 봉사, 불신자의 죽음 등이 나옵니다. 그러나 세 구절에 똑 같이 내게 사랑이 없으면 결론은 울리는 징, 소리 나는 꽹과리와 같고, 아무 것도 아니요, 아무 소용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세 가지 묵상을 하고 싶습니다.  첫째, 인간의 모든 영역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조사를 했는데 꽃과 나무에다가 계속 ‘사랑한다(I love you)’고 했더니 꽃과 나무가 잘 자라더라는 것입니다. 또 물에다 ‘사랑한다’고 계속했더니 물의 분자가 달라졌답니다. 사랑을 받고 자란 동물과 학대받고 자란 동물은 말할 것도 없이 다릅니다. 학대받은 동물들은 언제나 도망 다니고, 피해 다니고, 눈치를 봅니다. 학대받은 사람과 사랑받고 자란 사람도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학대받은 어린아이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랑을 받고 자란 어린아이들과는 그렇게 다를 수가 없습니다.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 민족은 참 특이한 것 같습니다. “이까짓 조국 사랑할 가치도 없다”고 하다가도 올림픽에서 잘 하면 순식간에 살아납니다. 메달을 딸 수 없을 것 같던 수영에서도 금메달을 땄습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 민족이 잘 되고, 잘 될 것으로 믿습니다. 자꾸만 잘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저주하면 안됩니다. 자식, 남편, 아내를 저주하지 마십시오. 속으로라도 축복하고 축복하고 축복하십시오. 그러면 이 나라도, 이 민족도, 우리 가정도 잘 됩니다. 이것이 영적 원리입니다. 사랑하면 잘됩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다 망합니다. 여러분이 속한 학교, 직장을 사랑하십시오.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으면 기둥이라도 붙들고 그냥 기도하십시오. “나는 이 학교를 사랑합니다. 학장님을 사랑합니다. 총장을 사랑합니다. 교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 학생들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말하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영역에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야단치고 충고하고 비판하고 고발한다고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화를 내거나 남을 비판하거나 남을 고발하거나 남에게 충고 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사랑하면 버릇만 나빠진다고 걱정합니다. 그것은 사랑해서 버릇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했다 안했다 해서 그런 것입니다. 꾸준히 사랑하면, 꾸준히 믿어주면 반드시 변합니다. 남편을 꾸준히 믿으십시오. 아내를 꾸준히 사랑하십시오. 사랑했다 안했다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변합니다. 오직 하나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버릇이 나빠진다고 걱정하지 마시고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어린아이들뿐이겠습니까? 세상만물들도, 모든 인간도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사랑은 죽음만큼 강합니다  


둘째, ‘내게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가슴에 손을 대보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향해 사랑이 없다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내게는 사랑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게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있는지,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지, 눈물 나는 사랑, 감동적인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가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당신 마음에 도장처럼 새기고 나를 당신 팔에 도장처럼 새겨 두세요.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하고 질투는 무덤만큼이나 잔인해 불꽃처럼 거세게 타오릅니다. 많은 물도 그 사랑의 불을 끌 수 없으며 홍수도 그것을 덮어 끌 수 없습니다. 누군가 자기 모든 재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한다면 그는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아 8:6~7) ‘나를 당신 팔에 도장처럼 새겨 두세요’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사랑은 우리 가슴에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하고’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하고 홍수로도 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천사의 말, 사람의 말, 예언, 비밀, 지식, 믿음, 구제, 봉사도 사랑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의 기초는 사랑입니다  


셋째,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 지식, 학력, 사업, 결혼, 자녀 등 내가 평생을 두고 이끌어 온 것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의 설교의 기초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목회의 기초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역의 기초가 사랑이어야 합니다. 선교의 기초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에 예수님의 이 사랑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은 ‘네게 사랑이 없으면’ 이 아니라

‘내게 사랑이 없으면’ 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 안에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하게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