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십자가의 복음과 축제하는 공동체

새벽지기1 2019. 3. 29. 11:38


십자가의 복음을 체험한 그리스도인과 체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적극적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사랑, 기쁨, 감동, 축제가 항상 흘러넘칩니다. 그들은 상황과 상관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삽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자기도 모르는 태양처럼 빛나는 능력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날마다 성령충만한 축제의 삶을 계속 살아갑니다. 이런 감동과 축제와 기쁨과 사랑의 영향력은 그 사람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 예를 들어 가정, 일터, 사회, 민족, 국가 등에 미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은 ‘십자가의 복음과 축제하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로 부르신 하나님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혼자 살지 못합니다.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혼자서 외롭게 살지 마십시오. 반드시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인생이 비참하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상처받아서 혼자 살겠다고 결정한 사람은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함께 살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빨리 빠져나오십시오. 사람들과 더불어 대화하고, 같이 음식을 먹고,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지만 공동체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에는 비전이 있고, 희망이 있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날마다 신이 납니다. 가난은 상관없습니다. 그 공동체는 항상 긍정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아무리 큰 권력이 있어도 체념하고 절망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일까요? 구약의 공동체는 약속 공동체, 언약 공동체입니다. 신약의 공동체는 성령 공동체요, 십자가 공동체입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뭉쳐진 공동체가 신약의 공동체요, 그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희망과 비전과 약속과 축복의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현대교회는 싸우고 헤어지고 갈등합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본질은 생명입니다. 기적입니다. 이 공동체에 참여하기만 하면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우울한 사람이 밝아지고, 병든 사람이 건강해 지고, 깨졌던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신약의 공동체를 상징하는 공동체는 사도행전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온누리교회의 꿈이 ‘Acts29’입니다. 사도행전적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만약 온누리교회에서 누군가 싸우고 질투하고 서로 미워하고 옥신각신한다면 Acts29라는 말을 빼버려야 합니다.  


사도행전 공동체의 특징  


사도행전 공동체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십자가 공동체입니다. 세상의 모든 공동체는 권력, 돈, 세상적인 가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사도행전 공동체는 십자가의 복음을 기초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행전 공동체를 ‘십자가 공동체’라고 합니다. 둘째, 비전 공동체입니다. 십자가를 알면 비전이 생기고 꿈이 생깁니다. 희망이 생깁니다. 노예라도 희망이 생깁니다. 가난하고 병들어도 비전이 생깁니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달라집니다. 반짝반짝 거립니다. 반드시 절망하고 좌절하고 우울증에 빠져야 할 상황인데도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공동체를 비전 공동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적 공동체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날마다 삶이 축제입니다. 춤을 춥니다. 클럽에서 추는 춤이 아닙니다. 걷는 것도 신이 나게 걷습니다.


여러분, 이 공동체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까? 이것이 저의 목사로서의 꿈입니다. 저는 온누리교회가 사도행전적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아무리 슬픈 사람도 온누리교회에 오면 기쁨이 생기고, 우울한 사람도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축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도행전 공동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오늘 읽은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47절에 잘 나옵니다. 다섯 가지로 정리해서 사도행전 공동체의 특징을 설명하겠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가정, 직장, 사회가 이런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 공동체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며 빵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행 2:42)첫째, 예배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교제에는 항상 술이 있습니다. 축구장, 야구장, 농구장에 가서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좀 지나친 사람은 춤을 추거나 도박을 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교제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갈 곳이 많았는데 왜 여기 오셨습니까? 졸러 온 것도 아니요 의무 때문에 온 것도 아니라 말씀을 들으러 오신 것 아닙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씀을 듣는 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면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기쁨, 사랑, 영적인 힘이 생깁니다. 성령 충만해집니다. 그 힘이 여러 가지 슬픔, 외로움, 고독, 우울한 것들을 싹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교제하는 방법이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들은 TV를 보며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공동체는 우상이나 미신이 없는 공동체였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그들은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애찬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자주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기 바랍니다. 그냥 맨송맨송 만났다가 헤어지지 말고, 가족끼리, 친척끼리, 친구끼리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십시오. 이상한 사람 만나서 술 마시지 말고 그 돈으로 밥을 드십시오. 그러면 사랑이 생깁니다. 초대교회는 애찬만 나눈 것이 아니고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성만찬이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것 같지만 진짜 성만찬을 하면 온 몸이 진동을 합니다. 성령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포도주와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찬을 하고, 성찬을 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가리켜 예배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공동체는 예배 공동체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정에 예배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 모여서 예배드리면 좋겠지만 요즘은 다 모이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부부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기쁨이 오기 시작합니다. 예배는 기쁨의 문, 사랑의 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예배로 가득 차기를 축원합니다.  


은사와 기적 공동체  


둘째, 사도행전 공동체는 초자연적인 은사와 기적의 공동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임했는데 사도들을 통해 기사들과 표적들이 나타났습니다.” (행 2:43)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공포가 아니고 경외심입니다. 사람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리면 사람을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친구도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친구에게도 경외심이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존경과 경외심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에게도, 부부 사이에도 함부로 대하면 비참해집니다. 부인을 존경하고, 남편을 존경하십시오. 하물며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떻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어라’는 식으로 하나님께 함부로 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예배는 경외심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거룩과 경외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짐승과 같습니다. 천박해 집니다. 자기 삶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과 사랑과 인격을 회복하십시오. 초대교회는 기쁨이 충만하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이것이 ‘축제’입니다. 병든 자가 살아나고, 귀신이 떠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방언과 예언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날마다 만나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일터에도 이런 축복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온누리교회에 기적의 소문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눔과 섬김 공동체  


셋째,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함께 쓰며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눠 주었습니다.” (행 2:44~45)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은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모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병들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아야 합니다. 서로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여러분,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이 좋아 보이십니까? 사람도 안 만나고, 집에 들어가면 이불 뒤집어쓰고 구석에 앉아있고, 밥도 혼자 먹는 것은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십시오. 사도행전적 공동체는 함께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이웃을 섬기고, 내 일이 아니어도 도와주고, 청소해 주고, 자기 재물을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건이 너무 많은데 주기는 아깝고, 쓰자니 어렵고, 버리자니 괴롭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교회에 다 주십시오. 그러면 교회가 다 알아서 외국에도 보내고, 지방에도 보내고, 북한에 보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새 것을 보내야지 어떻게 쓰던 것을 보내느냐’고 하는데 괜찮습니다. 새 것도 주시고 헌 것도 주십시오. 이것이 초대교회였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올 때마다 항상 물건을 갖고 왔습니다. 필요한 사람 쓰라고 말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것이 사도행전이었습니다. 자기 소유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났을 때 많은 그리스도인이 가서 봉사를 했습니다.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전쟁이후에 사회빈민층을 도와주었던 사람의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공동체였습니다.  


축제 공동체  


넷째, 축제하는 공동체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공존하고,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공존하고,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는 공동체가 사도행전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날마다 축제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전에서 한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집집마다 빵을 떼면서 기쁨과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행 2:46) 설이나 추석이 되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집집마다 음식을 만들고 색동저고리와 한복을 입고 온 사회가 한바탕 축제를 벌입니다. 사실 이것이 기독교적입니다. 집집마다 음식을 해놓고 이웃을 초대해서 먹이고 서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교회에 와서 절대 우울해 하지 마십시오. 우울한 사람은 우울해지지 않기로 결정하십시오. 그러면 기쁨이 옵니다. 삶을 축제로 만드십시오. 우리 온누리교회에는 일 년에 네 번 정도 축제를 합니다. 이번 성령축제 ‘더 파이어(The Fire)’도그런 축제입니다. 함께 춤추고, 먹고, 말씀 듣고, 24시간 기도하면 내가 바뀝니다. 우리는 작년에 일본에서 ‘러브 소나타(Love Sonata)’라는 축제를 여섯 번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축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따리 싸들고 일본, 대만,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우울한 백성들, 고통스런 사람들을 붙잡고 말씀을 주고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초대교회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인생을 즐겁게 만드십시오. 내가 나를 기쁘게 하면 하나도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을 도와주면 기쁨이 생깁니다.  


전도 공동체  


다섯 번째 전도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행 2:47) 그들은 찬양하는 공동체,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더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고, 인기를 얻고, 권력을 얻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이고, 성만찬을 하기 위해 모이고, 그리스도를 묵상하기 위해서 모이고, 봉사하고 헌신하기 위해 모이고, 피와 살을 기념하여 포도주와 떡을 먹고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모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적 같은 공동체가 가능할까요? 사도행전 2장 1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오순절날 무엇이 임했습니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 받지 못하면 축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뻐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기쁨, 기적, 말씀, 찬양, 기도가 생깁니다. 축제가 시작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새로운 세상, 새로운 공동체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고, 혀처럼 갈라지는 불이 임하고, 방언하고, 찬양하고, 얼굴 색이 달라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약간 들뜬 사람입니다. 도사님같이 침착하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교회, 살아있는 예배는 춤을 춥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이 놀라운 흥분과 감동과 기쁨과 축제의 영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만 보면 슬픔이 떠나고, 절망이 떠나고, 갈등이 다 떠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십시오. 퍼주면 또 생깁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축복을 더 주십니다. 그렇게 사십시오. 그것이 사도행전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도행전 공동체는 소아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로마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들은 군대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고 그냥 예수 믿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에게는 사랑만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성령님이 임하셔서 여러분의 가정에 영향력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사랑의 화신이 되게 하시고

기쁨의 원자탄이 되게 하시고

가는 곳마다 세상을 변화시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