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교회를 위한 위대한 기도

새벽지기1 2019. 4. 11. 06:58


오늘 말씀은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감옥 안에 있는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14절에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라고 소개합니다(15절).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신 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모든 결정권을 갖고 계신 그분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3장 10절부터 하나님께 교회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건물도, 제도도 아닙니다. 교회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교회인 자신을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소서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무엇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세 가지 기도제목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소서’입니다(16절). 우리에게는 속사람과 겉사람이 있습니다. 겉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부분이고 속사람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영적, 정신적인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속사람이 강건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여호수아 1장 6~7절을 보면 ‘낙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용기를 내라’는 말씀을 ‘강하라’는 말씀과 붙여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강하다는 것은 낙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비전과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속사람이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교회를 위한 첫째 기도제목입니다.


어떻게 하면 속사람이 강해질 수 있을까요? 성령님에 의해서 속사람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꿈과 소망과 사명을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경험, 지식이 많으면 강해질 것 같지만, 사람을 딱딱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지만 강하게, 강하지만 부드럽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불같이 바람같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 속사람을 강하게 만드십니다. 여러분 중에 근래에 꿈, 사명을 접으려고 했던 분이 계신다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달려갈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마음 가운데 계시옵소서 


둘째, ‘그리스도께서 마음 가운데 계시옵소서’입니다(17절). 쉽게 요약하면 내가 내 마음의 왕좌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계신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마음대로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전 세계 열방 가운데 죽어가는 백성을 살리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죽어가는 영혼을 향한 눈물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서울을 보며 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고향을 생각하며 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로 꽉 차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크리스천의 타락은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다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있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 마음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 이 민족의 모든 크리스천 가운데 계시옵소서. 주님의 눈물, 꿈, 소망, 마음이 우리를 터치하고 지배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시게 할 수 있을까요? 17절 맨 앞에 보면 ‘믿음으로 인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예수님을 처음 믿고 구원받을 때의 믿음이 아니라 이미 믿고 있는 사람이 계속해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 내 인생의 자리를 계속 양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위대하지만 예수님을 위해 내 생각의 자리를 비워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충만하게 하소서 


셋째, ‘충만하게 하소서’입니다(18~19절). 기독교는 내려놓음, 비움보다 채움이 더 중요한 종교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채워야 합니까? 17절 마지막 부분과 18절, 19절에 세 번이나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하나님의 충만’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갖고 계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사랑입니다(요일 4:8).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사랑이 흘러넘칩니다. 그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우십시오. 여러분을 툭 치면 무엇이 나옵니까? 사랑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한국 교회는 규모보다 사랑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면 사랑이 넘치고 감동하고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세상은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요 13:34 ~25). 사랑을 구하십시오. 교회는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도 사랑이 충만해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랑이 충만할 수 있을까요? 18절, 19절을 자세히 보면 두 단어가 나옵니다. ‘깨닫고’와 ‘알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알면 사랑이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혈서를 쓴다고 사랑이 충만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알고 십자가 앞에 가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알게 될 때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사랑에도 넓이가 있습니다. 처음엔 사랑이 한 평 정도 되다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꾸 알게 되면 열 평, 삼십 평, 백 평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넓어진 만큼 품을 수 있게 되고, 품을 수 있는 만큼 리더십과 영향력이 생깁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몇 평입니까? 천 평 정도 되기를 축원합니다. 계속 커지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사랑의 넓이를 넓힐 수 있을까요? 날마다 주님 앞에 가서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알면 내 속에 사랑이 충만해 집니다. 주님은 영원히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용서하셨습니다. 실수해도 받아주십니다. 천하보다 여러분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만날 때 우리가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신다 


우리가 이런 기도할 때 정말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주십니다(엡 3:20~21).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교회입니다. 상대방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가 교회입니다. 온누리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끝까지 일본과 대만과 중국을 넘어 인도와 이슬람권을 넘어 북녘땅과 전 세계 열방가운데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Acts29 비전을 끝까지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온누리교회를 위해서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전 세계 흩어져 있는 열방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보다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어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은 기도입니다. 오늘은 고향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