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는 작은 로마서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 우리는 바울이 복음에 대한 일관성 있는 설명을 명백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십자가라는 말만 골라서 읽어보면 십자가의 전부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십자가가 강렬하게 불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주장하는 것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서 6장까지 율법과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배경은 십자가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일곱 가지 십자가의 복음의 메시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자가 지심은 하나님의 뜻
첫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고 로마병정이 십자가를 처형했고 유대인이 예수를 죽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뜻도 아니고 그 누구의 의도도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3절~5절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려고 우리 죄를 대신해 자신의 몸을 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3절에서 십자가는 인류에게 은혜와 평강을 준 사건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는 그냥 막연한 기원이 아니라 십자가로부터 흘러넘치는 우리에 대한 축복을 뜻합니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선물이고 평강은 은혜로부터 나오는 열매입니다. 4절에 보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하신 위대한 믿음의 행동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방황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확실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죽는 것도 쉽고 아픈 것도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고통도 쉽습니다. 4절에는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뜻이 나옵니다. 십자가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준 사건입니다. 만일 인간을 구원하는 데에만 초점이 있다면 예수님이 하실 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희생을 하시고 대가를 치르시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말로는 다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해 희생하고 죽겠다는 말은 못합니다. 그래서 5절에서 십자가는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입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은혜와 평강도 없고 구원도 없고 하나님께 드릴 영광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맨 먼저 하는 주장입니다.
내가 못 박히는 사건
둘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지만 그것은 철학이나 사상, 이데올로기나 이념이 아니라 내가 그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세상의 진리와 다른 부분입니다. 다른 진리는 배우고 깨달으면 됩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9~20절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인해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 대해 살고자 함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할렐루야! 십자가는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게 하신 사건입니다.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눈과 말은 다릅니다. 죽은 옛사람이 살아나서 망령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고 시체입니다. 하지만 내가 죽은 그 자리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 계십니다. 예수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고 예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고 십자가의 삶은 이성이 아니고 믿음입니다. 때로는 시체처럼 사십시오. 화가 날 때 정욕이 불탈 때 욕망이 사로잡을 때 내가 시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대신 사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명백한 사건
셋째, 십자가는 부인할 수 없는, 눈앞에 벌어진 명백한 사건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입니다.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여러분의 눈앞에 분명히 드러나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미혹했습니까? 여러분에게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단 말입니까?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 와서 육체로 마치려고 합니까?” 1절에 보면 십자가의 사건은 어느 하나의 골목이나 구석에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옛사람에게만 보여 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눈에 분명히 보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내가 헛것을 본 것이 아니고 꿈을 꾼 것도 아니고 환상을 본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십자가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부인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며 바보입니다. 동시에 2절에 보면 십자가는 분명한 사건임과 동시에 성령사건입니다.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천재라도 이해 못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십자가의 신비로운 비밀을 알게 됩니다. 요즘 우리들 가운데 성령사역, 성령운동, 기적, 은사 등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것은 하다보면 금세 공허해집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십자가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성령운동은 영원합니다. 지구 끝까지 갑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령체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에 여러분의 가슴을 묻으십시오. 그래야 흔들리지 않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관한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은 율법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는 자에게만 성령이 임합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십시오. 성령의 바람과 불이 여러분에게 떨어질 것입니다. 성령 받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묵상하고 십자가를 사랑하고 십자가를 선전하고 자랑하면 성령이 하늘의 문을 열고 무더기로 쏟아집니다.
인류 위해 저주 받은 그리스도
넷째, 십자가는 온 인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 받은 사건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 1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기록되기를 ‘나무에 달린 사람마다 저주를 받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고 우리도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는 저주받은 사건입니다. 십자가 자체는 영광스런 사건이 아닙니다. 내가 받아야할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은 저주스런 사건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나를 위해 저주 받은 사건이 없다면 어떤 축복이 있다하더라도 나에게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저주를 받았고 희생을 하셨고 피를 흘리셨고 고통을 겪으셨기에 내가 겪어야할 저주와 죽음과 고통과 모든 슬픔은 그분이 다 가져가시고 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받는 핍박
다섯째,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는 박해가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십자가를 말하면 사람들은 욕을 합니다. 핍박을 하고 박해합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는데 십자가를 이야기하면 싫어합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면 가족이 신경질을 내고 주변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의 핵심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1절입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여전히 할례를 전한다면 왜 아직도 핍박을 받겠습니까? 그랬다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없어졌을 것입니다.” 할례는 십자가의 걸림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할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할례 받은 자나 할례 받지 못한 자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돌멩이를 들어 쳤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지 할례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느냐고 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율법을 무시하고 할례의 전통을 없애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교회가 10년쯤 되면 전통이 생깁니다. 주보 만드는 것도 전통이 생기고 성가대 가운 입는 것도 전통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대로 안하면 믿음 없다고 화를 냅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이렇게 하는데 왜 온누리교회는 이렇게 하느냐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에 익숙해 있고, 익숙한 게 옳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관행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잘못된 관행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잘못된 관행을 그냥 지나가는 까닭은 과거에서부터 해 온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죄라고 의식하지 못하는데 따른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꾸 문제가 생깁니다. 고쳐야 합니다. 익숙한가 그렇기 않은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관행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틀린 관행이 있다면 고쳐보려고 하십시오. 고치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들고 땀이 나는지 모릅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여론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발전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옛날식으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핍박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갈라디아서 6장 12절입니다.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핍박을 받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예수 믿고 십자가를 믿으면서도 십자가를 자꾸 숨기는 것은 교회 안에서 핍박 받거나 인기 없는 발언을 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괜히 뜨거운 감자를 건드렸다가 욕이나 먹고 얻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걸리는 것이요 이방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할 때 핍박이 온다는 사실도 기억하시고 핍박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화의 길
여섯째, 십자가는 성화의 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25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산다면 또한 성령을 따라 행합시다.”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십자가에 죽어서 시체가 된 것으로 죄와 욕망과 정욕이 못 박힌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몸은 못 박혔는데 정욕과 욕망은 바뀌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만 살아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못 박혔는데 말입니다. 정욕과 욕망이 나를 지배하면 음행과 더러움과 방종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질투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리와 질투와 술 취함과 방탕 등이 나를 지배합니다. 이렇게 살고 싶으십니까. 이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내 몸에서 시체로 만들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친절과 오래 참음과 선함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 같은 법들이 내 몸 안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굉장히 놀랩니다. 옛날에는 입이 아주 거칠고, 행동도 이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변한 것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할 뿐만 아니라 성화의 길을 걷게 합니다. 모든 악한 것이 내 몸에서 쓰레기가 빠지듯이 그 자리에 향수가 뿌려지고 깨끗해집니다.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어집니다.
십자가만을 자랑함
마지막 일곱째, 십자가는 십자가만을 자랑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세상이 내게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해 그러합니다.” 결론은 당신이 만약 십자가의 본질과 십자가의 진실을 깨달았다면 십자가 외에는 더 이상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깨닫고 나서 고린도 전서 2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외에는 배설물로 여기겠다고 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중심이고 핵심가치이며 절대가치입니다. 십자가 이상도 없고 십자가 이하도 없습니다. 세상이 내게 대해서 못을 박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못을 박았습니다. 세상을 나는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세상 때문에 내가 살고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에 대해서 못을 박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부활로 변하고 부활은 성령으로 변하고 성령은 십자가를 온 세상에 퍼지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발라서 해주신 것 아닙니다. 내가 구원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피를 단번에 흘림으로 말미암아 내가 영원한 구속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가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십자가는 온 인류를 구원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모든 죄와 사탄의 세력을 끊어 버릴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믿음의 근거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성화의 수단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증거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십자가의 시리즈를 마치는 이 마지막에 제가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십자가만을 자랑하십시오. 십자가만을 선포하십시오. 십자가가 온 세상에 편만하게 증거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좋은 말씀 > 하용조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 되어 행하라 (0) | 2019.04.15 |
---|---|
교회를 위한 위대한 기도 (0) | 2019.04.11 |
십자가의 복음과 축제하는 공동체 (0) | 2019.03.29 |
십자가의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삶 (0) | 2019.03.25 |
십자가의 복음과 4가지 그림언어 (0) | 2019.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