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십자가의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삶

새벽지기1 2019. 3. 25. 12:18


그리스도인의 삶을 생각해 볼 때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보다 ‘십자가를 통과했느냐, 통과하지 않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지만 십자가를 모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백이면 백 모두 실패합니다. 십자가를 붙들지 않고 예수님의 겉모습만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통과했습니까? 보혈을 통과했습니까?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 보혈을 통과한 사람은 어떻게 살까요? 예수님께서 몇 가지 대답을 주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그러고는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눅 9:23)

첫째,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합니다.

인간의 최대 우상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은 가장 아름답고 귀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자기가 살아있으면 괴롭습니다. 계속 갈등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인간은 욕망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진 사람은 자기를 부인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 십자가를 집니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할 것은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온 인류를 위한 십자가를 지실 수 있습니다. 내가 져야할 십자가는 따로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한 십자가를 지셨다면 내가 져야할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가족, 친구, 동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경험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사실 십자가는 피하고 싶습니다. 고통이요, 고난이요, 죽음인 십자가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십자가를 내가 져야 합니다. 자식을 위한 십자가, 남편을 위한 십자가, 아내를 위한 십자가를 다른 사람은 질 수 없습니다. 내가 져야합니다. 위에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날마다’라고 했습니다. 한두 번은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큰맘 먹고 희생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가 매일매일 찾아온다고 하십니다. 매일 십자가를 지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희생하고 섬기는 삶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갈 5:24)


셋째,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삽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만 생각하면 우울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자기와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부인한다는 뜻이 아니라 죄를 부인한다는 뜻입니다. 내 속에 있는 악한 요소들은 무섭게 부인하고 거절해야 하지만 동시에 내 안에 있는 선하고 희망적이고 영적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중에 나는 새보다, 들풀이나 꽃보다도 우리를 더 존귀하게 여기십니다(마 6:26, 30). 우리는 내 자신을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를 학대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처럼 자기를 존귀하게 여기고 자신을 격려하고 축복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넷째, 원수까지 사랑합니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내 인생을 깎아 먹는 사람을 사랑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힘드니까 그 사람을 피합니다. 무관심하게 아예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적극적인 사랑을 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섬깁니다. 섬김을 받지 말고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인자 역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치를 몸값으로 자기 생명을 내어 주려고 온 것이다.” (막 10:45)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섬기는 자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통치자가 아니라 종입니다. 이 원리를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섬김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 제가 섬기겠습니다’라고 마음 먹는다고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만 말해서 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해야 섬길 수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섬길 수 있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해야 섬길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만이 섬김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 답지 못하게 하는 죄 문제는 말씀은 좋지만 내가 하려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와 싸워보니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꺾기 힘든 존재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피하게 되고, 원수의 뺨을 때리고 싶고,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약 십자가를 이해했다면, 십자가를 통과했다면, 십자가를 경험했다면 이렇게 살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 그대로 살겠습니까? 그리스도와 연합해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해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합니까?” (롬 6:1~3)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이 왜 실패하는 줄 아십니까?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요, 의지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잘 살고 싶은데 안 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죄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가 나를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게 하고, 시기, 질투, 미움, 분노, 염려, 근심 등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를 다시 고민하게 합니다. ‘나는 예수도 믿고, 세례도 받고, 교회도 다니고, 설교도 열심히 듣는데 왜 죄가 없어지지 않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원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죄는 내 의지, 지식, 행위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원죄는 십자가로만 없앨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를 잘못 믿은 것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척만 하면 내 안에 있는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죄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일한 해결책


‘십자가’ 세례를 받을 때는 진지했지만 참 세례를 받지 못해서 죄가 죽은 척 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죄가 죽은 척 한 것입니다. 죄가 교회 들어올 때 숨어 있다가 주차장에 갈 때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입니다. 바이러스가 숨어있으면 겉보기에는 건강합니다. 바이러스가 나를 속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바이러스는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병이 들고 죽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에 대해 죽은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죽지 않은 사람은 당분간은 괜찮습니다.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사는 동안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24시간 1년 열두 달 정신 차리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긴장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와 싸울 수 없습니다. 싸우면 반드시 집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결정타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보혈의 피를,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으면 그 즉시 내 죄의 문서는 찢겨지고 죄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죄는 어디서 죽었습니까?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의 피를 진정으로 믿으면 내가 착하게 살았든지에 상관없이 인격적, 도덕적으로 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죄는 죽었습니까? 십자가를 믿는 순간 죄는 파괴되는데 아직도 죄의 파편이 여러분에게 남아있다면 십자가가 무능하든지 내가 십자가를 잘못 믿었든지 둘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죄사함의 선언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해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롬 6:4)세례란 ‘죄가 죽었다’는 선언입니다. 내가 인격적으로 성숙해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다 없어져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았기에 죄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성경도 안 읽고, 멋대로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죄가 죽었다고 선언하십시오. 그러면 그때부터 죄가 없어집니다. 선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하루는 깨끗해진 것 같아도 다음날 이 되면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죄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착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죄가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요 세례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 진짜 십자가를 믿은 사람은 죄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수술을 받은 직후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때부터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고후 5:17). 내 자신이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죄가 죽었음을 확인하십시오. 죄가 죽는 경험을 하십시오. 사탄이 내 몸에서 떠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라고 하면 귀신이 나가면서 얼굴색이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지고,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귀신이 몸에서 빠져 나가는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냥 ‘귀신은 죽었다’, ‘죄는 죽었다’, ‘아멘’이라고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정말로 죄가 죽고 사탄이 떠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단번에 사라진 ‘죄’ 


여러분에게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죄가 내 안에서 찢어지고, 소리지르고, 뒤집어지고, 토하는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죄가 곱고 세련되고 얌전하게 나가겠습니까? 아닙니다. 지성적으로 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몸부림치는 죄에 대한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경험, 고통, 아픔,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사라지는 영적경험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넘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으로 그분과 연합한 사람이 됐다면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로도 그분과 연합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해져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압니다. 이는 죽은 사람은 이미 죄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롬 6:5~7)


여러분, 이 죄가 내 안에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죽지 않으시고 죽음이 더 이상 그분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해 사시는 것입니다.” (롬 6:8~10)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반복해서 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한 번만 죽으면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한 번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단숨에 사라집니다.  


예수 안에서 산 자  


여기서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완전히 해결했다,

단번에 해결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믿지만 죄가 죽었다는 사실을 선포도 못하고, 죄의 시체도 건져내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이 시간에 ‘아, 그 말이 맞다. 내 안에 아직도 죄의 시체가 아직도 있구나’라고 느끼는 분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완전히 해결했다는 사실을 믿고 선포하십시오. 죄는 내 안에 더 이상 살아날 수 없다고 여러분이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죄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선포하면 죄는 여러분 안에서 재생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살아나도 죄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산 자로 여기십시오.” (롬 6:11) ‘아멘’하십시오. ‘나는 죄를 안 지을 수 있다’라고 선포하시면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심입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능력이 살아있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인정하고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죄가 살아나려고 하면 선포하십시오. 죄는 단숨에 죽었고 우리는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죽을 몸에서 죄가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해 몸의 정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자처럼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죄가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할 것인데 여러분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롬 6:12~14)


둘째, 우리 몸은 죄의 병기가 아니라 의의 병기입니다.

‘나는 나쁜 짓을 하기 위해, 죄를 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하십시오. 선언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죽었던 자가 살아나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눈먼 자가 눈을 뜨는 것도 능력이지만 죄를 짓지 않는 것도 능력입니다. 죄 지을 때마다 선언하십시오. 유혹받을 때마다 선언하십시오. 죄의 시체가 냄새를 피울 때마다 시체를 제거해 버리십시오. 할렐루야!   


기도합시다.

죄의 능력에 내안에서 사라지고

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