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피조물조차 구속의 날을 대망하다!(롬8:18-25 피조물의 소망, 성도의 소망)

새벽지기1 2019. 3. 1. 07:03

8

세례와 성화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

6:1-11 세례

-그리스도와 연합

6:12-23 성화의 자세

-자신을 의의 무기로 드리라!(6:13)

7:1-6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

7:7-13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

7:14-25 그리스도인의 내적 갈등

두 법 사이에 낀 성도의 삶-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7:24)

8:1-11 생명의 법: 사망의 법

8:12-17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

8:18-25 피조물의 소망, 성도의 소망

8:26-30 중보하시는 성령

8:31-39 성도의 승리에 대한 확신

내가 확신하노니...(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8:38-39)

성도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의의 확신)


피조물조차 구속의 날을 대망하다!

(8:18-25 피조물의 소망, 성도의 소망)

 

본문


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해석과 설명


<개요> 성화의 과정 중에 성도들이 받는 고난은 성도들 자신들만의 고난이 아니라 죄와 사단의 권세 아래에 있는 피조물 전체가 당하는 고난이며, 따라서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하나님께서 죄성을 지닌 육신까지 구속되는 그 날을 소망하며 참음으로 기다릴 것을 권면하고 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18)

생각건대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로기조마이계산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확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고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여기서 현재의 고난은 당시 교회에 대한 유대인들이 끊임없는 핍박과 점증하던 로마 정부의 박해를 의미한다.

성도의 이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즉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된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영생과 더불어 충성된 자들에게 주어질 상급을 가리킨다.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일시적인 것임에 비해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는 끝까지 신앙의 인내를 해야 한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19)

19-25절은 인간 구원과 관련된 피조물의 회복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 받아 창조된 피조물의 대표인 아담의 타락과 이로 인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저주 받은 것이 상호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3:17-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

여기서 말하는 피조물(헬 크티시스)’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만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고대하다(헬 아포카라도키아)’란 말은 문자적으로 목을 뽑아 바라보다는 뜻으로

한자 숙어 학수고대(鶴首苦待)’와 같은 뜻이다.

이는 피조물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날을 얼마나 간절히 열망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

이는 곧 예수 재림시에 살아 있는 성도들은 물론 무덤에 있는 자들도 다시 살아나 영광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고전15:50-54).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은 성도들을 가리킨다.(15-17).

그런데 피조물 곧 자연계가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대를 고대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회복의 때가 또한 이때이기 때문이다.(65:25)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20)

공동번역은 이를 피조물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은 제 본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라고 기록했다. 이는 아담이 모든 피조물의 대표이자 주관자였던 측면에서 그의 타락이 모든 피조물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를 굴복하게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행됨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허무한 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마타이오테스타락’ ‘무의미함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만물의 불안정성과 쇠락하고 부패하는 현상 내지는 성향을 가리킨다.(알포드).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2)라고 말한 헛되다는 말이 바로 이 허무한데에 해당하는 단어다. 바울은 이 허무한 데21절에서 다시금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21)

그 바라는 것은

여기서 바라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피스소망을 뜻하는 단어.

이것을 공동 번역은 거기에도 희망이 있습니다로 번역했다.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만물이 비록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함께 쇠락하고 부패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있는 이유다.

그것은 바로 피조물들도 궁극적으로 새롭게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벧후3:13, 21:1). 즉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새 창조의 계획으로서(고후5:17, 6:15) 그 가운데는 피조물 역시 재창조될 것이 포함되어 있다.(21:5).

그리고 새롭게 될 세계에서는 피조물들도 지금처럼 죽거나 썩어지지 않을 것이다.(위트머)

그러므로 피조물들도 이때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여기서 영광과 자유란 장차 성도들이 누릴 영광스러운 자유’, 즉 죽음으로부터 자유하여 영생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피죄되었으나(1:26-27) 죄로 인해 손상된 모습을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르다는 것은 피조물들이 이같은 성도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여기서 이제까지란 아담의 타락 시점부터 오늘날까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이어질 것이다.(메이어) 즉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피조 세계를 새롭게 회복하시기까지 만물은 원하지 않는 썩어짐과 쇠락함에 여전히 처해 있어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20)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새가 노래하는 것이 실상은 우는 것이며, 산천초목이 춤추는 것 역시 자신의 회복을 위해 절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아담의 타락은 인간 뿐만아니라 다른 피조물들도 함께 고통 중에 처하게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새롭게 회복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뿐아니라 만물도 그 회복의 때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23)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공동 번역은 이를 성령을 하나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로 기록했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바울이 성령을 가리켜 우리 기업의 보증’(1:14)이라고 했다. 한편 여기서 처음 익은 열매(firstfruit)’ 그 해의 처음 익은 곡식이나 과일의 첫 수확을 가리키는데,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모든 성도들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은 장차 성도들이 누리게 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미리 맛보게 하시는 분이자 또한 그에 대한 보장자이신 것이다.(위트머)


<참고> 첫 열매(firstfruit)와 초실절

그해에 처음 익은 곡식이나 열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는 땅에서 수확한 모든 결실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감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22:29; 23:19; 48:14).

한편, 첫 열매개념은 신약성경에서 상징적 의미로 승화되어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고전 15:20). 첫 열매가 모든 수확의 시작이요 보증이 되듯이 부활의 첫 열매 되신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된다는 말이다. 그외에도 한 지역 안에서 처음 주를 믿게 된 새 신자(16:5)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1:18), 혹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11:16)을 가리키는 말로 언급되고 있다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속으로 탄식하여

피조물의 탄식(22)에 이어 이제 성도의 탄식에 대한 언급이다. 바울은 이외에도 탄식하는 분이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곧 성령이시다.(26) 이처럼 성령과 성도와 만물이 함께 탄식하는 것은 모두가 회복될 주의 날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물론 성도들은 법적으로는 이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아 신분상 그이 양자가 되었다(15). 그러나 이미 무덤에 묻혀 잠들어 있거나 비록 살아 있어도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 몸은 아직 부활의 영광을 입지 않았다. 따라서 성도들 역시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고전15: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이는 우리가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5:1)는 말과 상반되는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구원이르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벵겔)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믿음으로(by faith) 구원을 바라는 소망 중(in hope)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구원을 얻었으매가 과거 시제인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 이미 예수 믿은 그 즉시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몸의 구속은 장차 성취될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소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은 이미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소망한다는 말은 말이 안 된다.

소망이란 미래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 곧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람이다.

이는 공기가 분명히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 원리와 같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11:1)”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25)

여기서 참음으로는 두 가지로 해석 할 수 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참는다는 의미. 즉 성도가 소망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날까지 현세에서 당하는 고난을 염두에 둔 해석이다. 또 하나는 인내심을 가진다는 의미. 이는 성도에게 확실한 소망이 있으니(24) 이를 성취하기까지 인내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참으면서 인내하는 중에 기다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교훈과 적용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 날을 사모하는가!

본문에서 자주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피조물이라는 단어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19)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20)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21)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22)

여기서 말하는 피조물(헬 크티시스)’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만물을 의미한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만물이 비록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함께 쇠락하고 부패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있는 이유다.

그것은 바로 피조물들도 궁극적으로 새롭게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21:1).

즉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새 창조의 계획으로서

그 가운데는 피조물 역시 재창조될 것이 포함되어 있다.(21:5).

그러면 여기서 본문 18절을 주목해야 한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말씀은 본문 전체를 상징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여기 현재의 고난은 당시 교회에 대한 유대인들이 끊임없는 핍박과

점증하던 로마 정부의 박해를 의미한다.

바로 본문의 배경이기도 하다.

즉 현재 성도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은 성도들 자신들만의 고난이 아니라

죄와 사단의 권세 아래에 있는 피조물 전체가 당하는 고난이므로

하나님께서 죄성을 지닌 육신까지 구속되는 그 날을 소망하며 인내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돌아 볼 것이 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 날을 사모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8:24-2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