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으라!(롬8:12-17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

새벽지기1 2019. 2. 27. 08:07

6

7

8

세례와 성화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

6:1-11 세례

-그리스도와 연합

6:12-23 성화의 자세

-자신을 의의 무기로 드리라!(6:13)

7:1-6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

7:7-13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

7:14-25 그리스도인의 내적 갈등

두 법 사이에 낀 성도의 삶-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7:24)

8:1-11 생명의 법: 사망의 법

8:12-17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

8:18-25 피조물의 소망, 성도의 소망

8:26-30 중보하시는 성령

8:31-39 성도의 승리에 대한 확신

내가 확신하노니...(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8:38-39)

성도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의의 확신)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으라!

(8:12-17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

 

본문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해석과 설명


<개요> 성도의 성화(sanctification) 성령께서 도우시지만 성도 자신도 몸의 행실을 죽이고 성령께서 지시하시는 영의 일을 행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요청된다. 또한 성도는 성화 과정에서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맡게 될 고난을 극복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12)

여기서 그러므로1-11절을 받는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도입을 이끄는 접속사다.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이는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사는 가운데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즉 성도는 성삼위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의 전과정에 걸쳐 사랑의 빛을 진 자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이 구절의 의미는 공동번역 성경이 좀 더 분명하다.

그러나 육체에 빚을 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 의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육신을 좇아, 즉 죄의 성향에 종노릇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배은망덕한 삶을 사는 것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밤비라는 학자는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일 너희가 육신의 욕심에 따라 살면, 너희가 충성을 바치며 집착하고 있는 너희 심령 속의 바로 그 죄악 된 세력이 너희를 얽어매어 그 자체의 운명인 사망에로 이끌고 갈 것이다.’ 물론 본 절은 성도가 구원의 은총을 얻은 후 다시 죄를 지으면 구원을 상실하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위트머) 따라서 이 말은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사는 것은 죄를 낳고 죄의 결국은 사망임으로, 성도는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성령에 온전히 이끌려 죄를 극복해야 함을 강조한 이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기서 성령, ‘목의 행실부패하고 타락한 인간 본성을 좇아 행하는 모든 악한 행실을 가리킨다.

이는 5절에서 육신의 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가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자신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더불어 죄에 대항하여 싸우면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하나님게서 주신 구원을 온전히 이루게 된다는 말이다.(2:12) 사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단순히 금욕생활에 힘쓰는 의지만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을 좇아 행할 때만 가능하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

사도 요한은 이 말씀과 관련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란 죄의 종노릇하는 자는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 할 수 없음을 깨닫는 이들마다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는 것(딤후1:7)을 가리킨다.(크리소스톰) 또한 이 말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 죽음과 천재등을 두려워하여 일평생 근심 속에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은 성도들을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셨으며 또한 부활과 영생을 소망하는 가운데 기뻐하게 하셨다.(11)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이는 먼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저를 믿는 자마다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된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이는 그러한 법적 신분에 걸맞게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가운데 나날이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양자(養子)’라는 표현의 의미는 예수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나(2:6),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었으며, 범죄함으로 마귀의 자녀였던 죄인(2:3)이 칭의 됨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여기서 아바 아버지는 아람어와 헬라어 복합어인 압바(아람어-아버지) 호 파테르(헬라어-그 아버지)’를 음역(音譯)하고 번역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두 해석이 있다.

이는 부성을 지니신 하나님께 대한 애정과 열성을 강력하게 나타내기 위한 이중적 표현이다.”(그레다누스)

반면 아람어를 일상언어로 사용하던 당시의 유대인과 헬라어를 통용하던 이방인들을 염두에 둔 탓이다’(라이트푸트)

한편 부르짖느니라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에 못이겨 큰 소리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이와 관련하여 루터는 누구든지 인간을 영적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영적 지혜를 깨닫게 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으 믿을 수 없으며 또한 믿어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즉 성령께서 우리로 믿게하시는 역사가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부성을 이해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에 대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종이 주인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할 수 없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여기서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부자지간이 된 사실, 즉 양자(養子)된 것(15)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이 양자또는 자녀라는 말은 이미 후사(後嗣)’ 즉 상속자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상속물은 믿는 자 모두에게 주어지는 부활과 영생, 그리고 충성의 상급(고전3:12-15, 딤후4:8, 1:12, 벧전5:4, 2:10, 21:1-7, 22:14)등이다. 그런데 이 일에 있어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라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러한 상속물을 받게 된 것이 어디까지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 때문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이말 역시 우리가 고난을 받지 아니하면 구원도, 하늘나라 영광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고난당하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다만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신 것처럼 우리도 필연적으로 고난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9)”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

 

교훈과 적용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지 말라!

본문 1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그러므로의 의미는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반문이다.

그 답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육신을 좇아, 즉 죄의 성향에 종노릇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배은망덕한 삶을 사는 것이다.

13절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의미는

성도가 구원의 은총을 얻은 후 다시 죄를 지으면

구원을 상실하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사는 것은 죄를 낳고 죄의 결국은 사망임으로

성도는 성령에 온전히 이끌려 죄를 극복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단순히 금욕생활에 힘쓰는 의지만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오직 성화는 성령 충만한 삶으로만 가능하다.

아울러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14)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는 것이다.(17)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의 은총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각오를 해야 한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8: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