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율법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새벽지기1 2019. 2. 21. 07:41

6

7

8

세례와 성화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

6:1-11 세례-그리스도와 연합

6:12-23 성화의 자세

-자신을 의의 무기로 드리라!(6:13)

7:1-6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

7:7-13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

7:14-25 그리스도인의 내적 갈등

두 법 사이에 낀 성도의 삶-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7:24)

내가 확신하노니...(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8:38-39)

성도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의의 확신)



율법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7:7-13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

 

본문


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

 

해석과 설명


본문은 율법의 역할 및 성격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성도가 율법의 정죄로부터 벗어 났다고 해서 자칫 율법이 악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시정하는 내용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이러한 표현은 앞서 여러번 사용된 바 있다. 이는 지금까지 언급한 사실에 대하여 부연 설명하거나 아니면 혹시 있을 수 있는 문제 제기에 대하여 쐐기를 박기 위한 문장 전환이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이는 죄의 정욕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5),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났다’(6)는 등은 율법 자체가 나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바울은 자문자답형식을 통해 그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여러번 확인하고 강조했듯이 율법 자체가 나쁘거나 죄인 것은 아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와 같은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것과 같은 율법을 인간에게 주시기 전에도 인간은 육체의 정욕을 좇아 살았다. 하지만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인간이 자신들의 그 같은 패역한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 줄을 깊이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탐내지 말라는 율법의 규정은 십계명 중 열 번째. 그러면 바울이 여러 율법 조문 중 왜 이 율법 조문을 대표적으로 거론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것은 인간의 모든 죄악의 동기가 되는 탐심(12:15; 딤전6:10)임을 특별히 경계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기독교의 대명제인 사랑을 막는 것이 바로 탐심이다.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를 율법에 편승하는 세력으로 의인화됨으로써 죄의 배후에 사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즉 죄(사단)는 율법이 인간에게 무엇이 죄인지 일러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 기회를 포착해 율법이 가리키는 그 죄를 짓게 하는 악의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다.(Barmby) 여기서 기회(아포르메)’란 원래 군사 용어로서 활동 근거지를 가리킨다. 즉 이는 율법이 죄는 아니지만, 죄가 율법에 근거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간을 정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바울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보여진다. 즉 비록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던 자인 바울(3:6-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도 자신의 마음속에 발동하는 탐심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부패한 인간의 심령은 하나님께서 행하라고 명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악을 행하는 반동성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5)고 토로한 것이다.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이 역시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4:15)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5:13)와 같은 맥락의 말이다. 즉 죄를 죄로 규정하며 정죄해 주는 율법이 없을 경우,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의식을 갖고 부끄러워 할 리가 없는 것이다. 럴 경우 실제로 죄는 있으나 인간의 자각 속에서 죄는 죽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Barmby)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이때가 언제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하여 학자들간의 이견이 있다>

바울이 율법을 잘 알지 못해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던 바울의 어린 시절이라고 주장하는 부류(밤비, 빈센트)-하지만 바울은 어려서부터 교법사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우고 연구했음으로(22:3) 맞지 않는다.

바울이 율법의 근본정신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율법의 조문만을 이해하여 스스로 자신을 과신하던 때(3:6, 10:3)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부류(벵겔, 칼빈)-바울이 구원은 율법도 할례도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전도의 핵심 메시지)을 깨달은 것은, 바로 대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영접한 후였기 때문에 이 주장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살았더니

율법의 근본정신을 미쳐 깨닫지 못하여 죄와는 무관하게 편안한 가운데 죄의식 없이 생활한 것을 가리킨다.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계명이 이르매계명의 근본정신을 깨달으매라는 말이다. 그리고 살아나나다시 살아나다는 의미로서 죄를 분명한 죄로 자각하게 됨을 가리킨다. 즉 율법을 깨닫기 전에는 죄가 죄인 줄도 몰랐으나 이를 깨닫고 난 후에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19) 자신을 직시하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4)고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분명히 존재 했다.(5:13).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죄는 더욱 기승을 부려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의 요구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역사한 것이다. 죄의 배후에 바로 사단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여기서 계명율법을 말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율법은 이를 지키는 데 따르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 계명이다. “”(18:5)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바울은 반복해서 율법은 죄가 아니며, 율법의 역할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죄(사단)가 우리 안에 있는 탐심을 불러 일으켜 범죄하게 하고, 즉시 (율법을 들이대고) 정죄함으로써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8)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이는 8절과 같은 말로, ‘를 율법에 편승하는 세력으로 의인화됨으로써, 죄의 배후에 사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율법이 죄는 아니지만, 죄가 율법에 근거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간을 정죄한다는 것이다.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여기서 나를 속이고에서 속이다미혹하다는 뜻으로, 창세기 에덴 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미혹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게 한 것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나를 죽였는지라는 육신이 연약하여 죄 아래 팔린 상태를 가리킨다.(14)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래서 우리의 행위(율법)로는 도무지 구원을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예수의 피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5:8)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12)

이로 보건대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라는 말이다. 이는 율법 자체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기회를 잡아서 계명을 통하여 인간의부패한 본성을 충동하는 것이라는 사실(7-11)을 통해 볼 때,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님(7)을 분명히 결론짓는 말이다.(렌스키)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여기서 율법계명은 동의어다. 이를 굳이 세분하자면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의식법, 사회법, 도덕법을 통칭하는 것이며, ‘계명은 그 율법의 각 조문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율법이 거룩하며 의롭다는 것은, 율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하며 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지금까지 바울은 율법이 죄가 아니며(7) 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것임(12)을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자는 결국 사망 가운데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율법과 죄, 사망간의 관계를 새롭게 규명할 필요성을 느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율법이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것이라는 사실은 절대 불변이다.(12) 다만 뱀이 하나님의 명령에 반하여 인간을 충동하여 범죄하도록 하와를 미혹하였듯이 우리의 부패한 심령 가운데 있는 죄성이 율법에 반동하여 자꾸 범죄함으로 율법의 정죄를 면하지 못하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

율법이 죄를 죄인 줄로 깨닫게 해주는 율법의 역할을 다시금 강조하는 부분이다.


 

교훈과 적용


죄를 깨닫게 하고 경계하게 하는 율법!

앞서(1-6) 바울은 무조건적인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했다.

이어서 본문에서는 율법의 역할 및 성격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7)

즉 자칫 율법이 악한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라는 말은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와 같은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것과 같은 율법을 인간에게 주시기 전에도

인간은 육체의 정욕을 좇아 살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분명히 존재 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죄는 더욱 기승을 부려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의 요구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역사한 것이다.

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는 말은

를 율법에 편승하는 세력으로 의인화됨으로써,

죄의 배후에 사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죄가 율법에 근거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간을 정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율법 자체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기회를 잡아서 계명을 통하여 인간의부패한 본성을 충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니다.

오히려 율법은 죄를 죄인 줄로 깨닫게 하고, 죄를 경계하도록 한다.

한편 율법이 거룩하며 의롭다(12)는 것은, 율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7: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