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7장 | 8장 |
세례와 성화 |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 |
롬6:1-11 세례-그리스도와 연합 롬6:12-23 성화의 자세 -자신을 의의 무기로 드리라!(롬6:13) | 두 법 사이에 낀 성도의 삶-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24) | 내가 확신하노니...(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8:38-39) |
성도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의의 확신) |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2-23 성화를 위한 성도의 자세)
▶본문
12.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해석과 설명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12절)
‘그러므로’
여기서 ‘그러므로’는 1-11절에서 언급한 성도들이 어떻게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된 성도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기 위한 연결어다.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이는 14절의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은 같은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즉 성도들이 옛 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죄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 죄는 아담의 범죄이래 타락하고 부패된 죄의 성향을 지난 우리를 자꾸만 미혹하여 또 다시 죄의 종노릇하게 만들려고 한다.(벧전5:8)
따라서 우리는 법적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2절)에 걸맞게 실제 삶 가운데 부단히 죄와 싸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한편 ‘죽을 몸’이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에게 내려진 죽음의 형벌(창2:17)을 피할 수 없는 연약한 육신을 가리킨다.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이는 ‘육신의 욕망’, ‘육체의 욕구’를 의미한다.
만약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이 우리의 의지가 이에 동의 할 때 범죄 하게 된다.
이 ‘몸의 사욕’을 능히 제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전신 갑주(엡6:13)’ 밖에 없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절)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여기서 ‘너희 지체’는 뒤에 나오는 ‘너희 자신’과 12절의 ‘너희 죽을 몸’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지체’란 문자적 의미 그대로 우리 인간의 육신뿐만 아니라 전 인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는 공동번역은 “또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기어 악의 도구가 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라고 기록했다.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여기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란 11절 내용의 반복이다.
이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산 자로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행하기에 전적으로 힘쓰라는 말이다.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는 앞의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된 자의 소극적인 삶이라면, 우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성화의 적극적인 행위를 표현한 것이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14절)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본절은 12절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한편 ‘법 아래’는 율법을, ‘은혜 아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가리킨다.
사실 연약한 우리 인간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때문에 ‘율법 아래’서는 늘 ‘정죄’를 당할 뿐 아니라, 죄가 왕 노릇 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마암아 깨끗이 죄를 도말(塗抹-지움) 받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죄는 왕노릇 할 수 없다.(롬5:8-11)
바울은 이것을 롬8:1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15절)
‘그런즉 어찌하리요’는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역설적인 물음이다.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는 14절 내용을 오해해서 반문하는 것을 가정한 답변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더 이상 범죄를 규정하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니 범죄해도 정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니 범죄해도 용서 받을 것이므로 죄를 지어도 되지 않느냐?’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답하고 있다. 결코 ‘그럴 수 없다(Niv-By no means!:천만의 말씀).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16절)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여기서 ‘종(둘로스)’은 ‘청지기(디아코노스)’와 달리 주인에게 철저히 예속된 노예를 카리킨다.
즉 청지기는 고용 관계하에서 삯을 얻기 위해 주인에게 봉사하는 자유로운 자임에 반해,
종은 주인의 소유물로서 생사(生死)여탈권(與奪權) 조차 주인의 손에 다려있는 자유가 박탈된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종은 자신의 의사에 관계없이 오직 주인의 뜻에만 복종해야 한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종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6:24)’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다른 선택은 없으며, 오직 죄의 종이 되든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이 되든지 양단간에 택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여기서 ‘죄의 종’은 ‘순종의 종’과 대비되는 ‘불순종의 종’으로도 대치 될 수 있는 말이다.
또한 이는 ‘불순종의 아들들(렙5:6)’과도 같은 말로서 장차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자들을 의미한다.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여기서 ‘죄의 종’과 대조하여 ‘성결의 종’이라 하지 않고 ‘순종의 종’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자체가 거룩한 삶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망’과 대조하여 ‘영생’이라고 하지 않고 ‘의’라고 함은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 것 자체가 영생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22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17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바울이 감사한 이유는 17-18절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로마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받아 들인 후 변화된 모습을 보인 때문이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여기서 ‘너희’는 이 서신의 1차 수신자인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2차 수신자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원래 죄인’이었는데 복음을 듣고 순종했다는 칭찬이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8절)
‘죄로부터 해방되어’
여기서 ‘해방되다(헬, 엘류데로오)’는 본래 책임을 ‘면제받다’ 속박에서 ‘자유롭게 되다’는 뜻으로 노예가 된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는 죄의 종노릇 하던 자가 죄에서 해방된 것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새로운 신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새로운 주인은 ‘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우리는 ‘의의 왕’을 섬기는 ‘의의 종’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죄에게 복종해서는 안 된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19절)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이는 인간의 연약성과 한계성을 의미한다. 이 의미에 대한 학자들의 두 견해가 있다.
하나는 도덕적인 연약성, 즉 죄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 성량을 지니고 있어서 죄에 넘어지기 쉬운 측면을 가리킨다.(해리슨) 또 하나는 지적인 연약성, 즉 영적으로 우둔하여 신령한 일에 관해 잘 깨닫지 못하는 측면을 가리킨다.(알포드, 빈센트) 바울은 이와 유사한 의미로 고린도교인들을 이렇게 지칭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3:1)”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이를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옮겼다.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할까 하여 이렇게 인간사에 비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변화된 삶을 살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 ‘부정’은 육신의 정욕을 좇아 행하던 죄악을, ‘불법’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범법행위를 가리킨다.
결국 본절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온갖 정욕을 좇아 행하는 죄악을 가리킨다.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이 구절은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13절 말씀과 같은 말이다.
이는 곧 이 지상의 전투적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이 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여기 나오는 ‘거룩함에 이르라’에서 ‘거룩함(헬,하기아스모스)’ 성화의 삶을 가리킨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20절)
본 절 또한 19절과 마찬가지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변화된 삶을 살기 이전 사단의 세력하에 있을 때 처했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는 아담의 원죄를 물려 받아 타락한 심성을 좇아 각양 죄악을 행하기를 그치지 않았을 때를 말한다. 한편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는 “정의에 예속되지 않고 제멋대로 놀아났었습니다”(공동번역)는 뜻이다. 사실 죄에 종노릇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서부터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죄에 종노릇 하며 의에 대하여 자유로운 것)은 진정한 자유가 되지 못한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21절)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여기서 ‘그 때에’는 ‘죄의 종노릇 할 때에’를 의미한다.
너희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 무슨 열매를 맺었느냐는 반문이다.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여기서 ‘이제는’은 과거 죄의 종노릇하던 데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현재 상황 즉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옮기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 비참함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죄의 종노릇 하던 때’의 일을 부끄러워 한다는 말이다.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여기서 ‘사망’이란 ‘영생’(22-23절)과 대조되는 것으로 영원한 형벌로서의 ‘사망’을 가리킨다.(계20:13-14)
그리고 ‘그 마지막’은 인간이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때가 아닌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22절)
‘그러나 이제는’
이는 죄의 종 되었던 상태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영광됨을 영위하는 삶에 대한 묘사로 문장의 전환을 의미하는 접속사 역할을 한다.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이는 18절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의 반복 내용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법적으로 죄와 관계없는 ‘의인(칭의-justification)’이 되었다.
그리고 성화(sanctification)의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도가 거룩함에 이르는 것(19절)조차 우리 스스로 노력에 의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함에 도달하게 해주시는 것이다.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여기 ‘그 마지막’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이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때가 아닌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때’를 가리킨다. 하지만 여기서 유념할 것은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며, 최후의 심판 때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기서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는 의미는 ‘새 하늘 새 땅(회복된 에덴)’의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여기서 ‘삯(옵소니온)’ 정당한 노동의 댓가로 받는 보수라는 의미다.
여기서는 죄를 짓는 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는 ‘사망’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여기서 ‘은사(카리스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선물’이란 뜻으로,
이는 하나님의 죄 용서함을 기대할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못한 죄인에게 친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나타낸 말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면 ‘영생’라는 선물을 주신다.
“너희는 그(하나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교훈과 적용
◦‘적극적인 성화의 삶!
앞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에서 죽은 자가 다시 죄에서 거할 수 없음과
따라서 성도는 마땅히 의에 거하여 살아야 함(성화)을 강조한 바울은
이제 본문에서는 성도의 삶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성도는 사욕에 순종하지 말아야 한다.(12)
이는 ‘육신의 욕망’, ‘육체의 욕구’를 의미한다.
만약 우리 안에 있는 ‘탐욕’에 우리의 의지가 동의 할 때 범죄 하게 된다.
이 ‘몸의 사욕’을 능히 제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전신 갑주(엡6:13)’ 밖에 없다.
둘째, 우리 지체(자신)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13)
여기서 ‘지체’란 문자적 의미 그대로 우리 인간의 육신뿐만 아니라
전 인격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 마디라 우리 지체를 죄에 내 맡겨 악의 도구가 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행하기에 전적으로 힘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지체를 어떻게 드릴 수 있을까?
소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않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성화의 적극적 삶을 사는 것’이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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