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메시지의 요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하면 야단도 치시고, 경고와 채찍과 심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거기에 머무시지 않고 우리의 회개를 통해 회복과 축복을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제입니다. 죄를 짓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 70년 동안 고생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 구원, 축복을 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회복시키시고, 치료해 주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메시아가 오실 길을 예비하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신다. “돋우어라, 돋우어서 길을 내어라! 내 백성이 가는 길에 장애물을 치워 버려라.” (사 57:14)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축복의 길을 가려고 해도 길이 다 부서지고 다리가 끊어지고 장애물이 가득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주와 심판과 고통과 눈물과 갈등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생각을 바꾸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40장에도 기록된 말씀입니다.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여호와의 길을 내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 길을 곧게 닦으라. 모든 골짜기는 높이고 모든 산과 언덕은 낮추고 가파른 곳은 고르게 하고 울퉁불퉁한 곳은 평지로 만들라. 여호와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친히 입으로 말씀하셨다.”(사 40:3 ~5)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 중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길로 오시는 환상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저주와 죽음과 절망가운데 하나님께서 오시니 길을 만들라”고 선포합니다. 높은 산은 낮추고 낮은 골짜기는 높여서 길을 평탄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막에서 샘물이 나고 황무지에서 장미꽃이 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메시아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을 받아서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책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은 낮아질 것이며 굽은 길은 곧아지고 험한 길은 평탄해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눅 3:4~6)
여기서 말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 전에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끊어진 도로를 잇고, 무너진 도로를 수축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길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낮게 만들고 비참한 사람은 높이 올려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구원의 길을 평탄하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극히 높으시고 영원히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 그 이름 거룩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살고 있지만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과도 함께 있고 기운이 빠진 사람과도 함께 있다. 기운이 빠진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상한 마음을 되살려 주려는 것이다.”(사 57:15) 오늘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설명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영원히 보좌에 앉아 계신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지극히 높고 영원한 보좌에 앉으십니다. 반면 인간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 인간의 권력과 명예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은 이름이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는 것은 곧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악합니다. 인간은 욕심덩어리입니다. 비전이라고 해도 천박하고, 자신의 욕심을 목표로 할 뿐입니다. 잘 위장했을 뿐 인간의 생각에는 거룩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 영원히 계십니다. 이름마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회개입니다. 가만히 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회개가 아니라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후회는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열매가 있습니다. 애통·겸손의 회개 회개에는 참 회개와 거짓 회개가 있습니다. 회개를 했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그 회개에 애통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잘못과 실수를 말하면서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고백은 하지만 죄에 대한 애통이 없습니다. 가슴을 찢는 일이 없습니다. 진실함이 없습니다. 참 회개는 애통입니다. 참 회개에는 내가 지은 죄를 보면서 가슴을 찌르는 고통을 느끼고 더러움과 추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영적 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만히 보면 우리의 회개가 너무 뻔뻔합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요즘은 죄의 정도가 심해져서 아무리 약을 써도 죽지 않는 병균처럼 웬만한 죄는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그래, 나 죄 지었다. 어쩔래? 나만 죄 짓느냐? 목사도 죄를 짓더라”고 대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혼이 순수해지기를 바랍니다.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고 자복하고 재를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리고 무릎꿇는 영적 태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숫자가 많은 데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교회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진실하게 회개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많은데 참 회개가 없습니다. 물은 많은데 마실 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참 회개요 애통입니다. 둘째, 참 회개는 겸손입니다. 회개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욕하고 화를 냅니다. 정죄합니다. “나도 회개했지만 너는 뭐냐?”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것은 참 회개가 아닙니다. 참 회개를 하면 마음이 온유해집니다. 참 회개를 하는 사람은 마음이 겸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리적인 힘보다 강한 것은 온유입니다. 큰 소리로 떠드는 것보다 강한 것은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회개의 축복
15절을 다시 보면 애통하는 회개, 마음이 겸손한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첫째,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밖에 계시지 않고 안에 계십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참 회개를 한 사람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시고, 내 손을 만져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내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계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찬양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예배는 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오늘 이 자리에 계셔서 나의 눈물과 나의 애통과 나의 마음을 받아주옵소서. 내가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는 거기에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과 동행하십니다.
둘째, ‘기운이 빠진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겠다’고 하십니다.
회개의 축복은 회복입니다. 부활입니다. 회개의 축복은 소생합니다. 소생한다는 것은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셋째 ‘상한 마음을 되살려 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다 상한 생선처럼 냄새나고 눈동자가 풀리고 지저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싱싱한 고기로 만들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내가 너를 위로하리라
넷째는 16절에 있습니다.
“그렇다. 나는 줄곧 다투지만은 않는다. 끊임없이 노여워하지도 않는다. 내가 만든 사람에게서 기운이 빠지고 숨이 약해지지나 않을까 해서다.”(사 57:16)하나님께서 이제 더 이상 인간과 싸우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더 이상 분노를 표출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기운이 빠지고 숨이 약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인간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다투고 노여워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17절에 있습니다. “그들의 사악한 탐욕 때문에 내가 화가 나서 그들을 치고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 식대로 살았다.”(사 57:17)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사악한 탐욕 때문에 화가 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사탄은 그런 인간을 유혹했고 인간은 결국 죄를 지었습니다. 그 일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계속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연한 죄를 그냥 두시지 않았습니다.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죄는 쌓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구름이 쌓여 어느 수준이 되면 비를 내리듯이 죄가 쌓이면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면 분노를 거두고 우리와 다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 내가 보았기에 그를 고쳐 주겠다. 그를 이끌어 주고 위로해 주겠다. 그들 가운데 슬퍼하는 사람들도 위로해 주겠다. ”(사 57:18)하나님께서는 참 회개하는 사람을 고치고, 이끌고, 위로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입니다. 한국인을 잘 말해주는 두 단어가 있는데 한(恨)과 정(情)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한이 정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여정에서 받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씻을 수 없는 과거가 치유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치실 뿐만 아니라 인도하십니다. 양 떼를 이끄는 선한 목자처럼 우리 인생의 지팡이가 되시고, 등대가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하고 격려하십니다.
약속된 하나님의 평화
다섯 째, 참 회개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하겠다. 멀리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평화가 있을 것이다, 평화가 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를 고쳐 주겠다.”(사 57:19) 여기 ‘입술의 열매’는 기도의 열매, 찬양과 감사의 열매, 예언의 열매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찬양한 대로 열매가 맺힐 것이며 말한 대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멀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사람에게도 평화가 있고, 가까이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에게도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평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두 번 이야기하는 것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애통하고 통회하는 사람에게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평화는 히브리 말로 ‘샬롬’입니다.
주여, 이 땅에 샬롬을 주옵소서. 우리 가족에게 우리 민족에게 나에게 평화를 주옵소서. 전쟁이 없고 건강과 번영과 행복을 말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오면 광야에서 꽃이 피고, 대지에서 곡식이 잘 자라고, 가정에서 서로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마치 에덴동산과 같게 됩니다.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이 선포되었는데 끝내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그러나 악인들은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와 같아서 잠잠할 줄 모르고 진창과 진흙을 토해 낼 뿐이다.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사 57:20~21)성경은 악인들을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와 같다’고 합니다. 그들의 삶은 잠잠할 줄 모르고 진창과 진흙을 다 토해낼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싸우고 음모를 꾸미고 배신하고 시기와 모략 속에서 살아갑니다. 악인들도 굉장히 바쁩니다. 사기치고, 모략하고, 사람을 죽일 궁리를 하느라 새벽부터 일합니다. 하지만 평화는 없습니다. 살벌합니다. 살기가 등등합니다. 이것이 악인의 운명입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일도 많이 하지만 일하는 만큼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평화가 없는 축복은 축복이 아닙니다. 평화가 없는 부는 부가 아닙니다.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돈 벌면 뭐하겠습니까. 형제끼리 재산을 놓고 싸워 얻은 돈으로 뭘 하겠습니까. 가족들을 모략하고 죽여서 얻은 돈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화가 중요합니다. 평화가 있을지어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회개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약한 존재요,
실수가 많은 존재요,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존재입니다.
아버지! 저희에게 오셔서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고 가슴을 찢게 하시고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섯 가지 축복을 다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좋은 말씀 > 하용조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을 걸고 쓴 마태의 선교복음 (0) | 2018.12.16 |
---|---|
마지막 때에 깨어 있으라! (0) | 2018.12.15 |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0) | 2018.12.13 |
예수님과 삭개오 (0) | 2018.12.12 |
지도자의 타락과 악인의 죽음 (0) | 2018.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