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지도자의 타락과 악인의 죽음

새벽지기1 2018. 12. 11. 07:49


지난번 말씀에서 우리는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며 세 가지를 부탁하십니다.

첫째 ‘공의를 지키고 의롭게 행동하라’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공의를 지키지 않고 의롭게 살지 않아서 심판을 받았으니 회복된 후에는 공의를 지키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안식일을 지키라’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마저 부담스럽게 생각하자 70년 동안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회복되면 안식일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면 하나님을 섬기는 대로가 열립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율법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교회 중심으로 살고, 말씀 중심으로 살면 우리 인생에 대로가 열립니다. 안식일을 평범한 날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안식일은 주님의 날이요, 특별한 날입니다. 많은 돈이 있지만 십일조도 특별한 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입니다.

셋째 ‘비전을 품으라’입니다.

고난이 없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비전을 갖게 된다면 나이도, 건강도, 능력도 상관하지 않고 그 비전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 비전이 우리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위기 앞에서 잠자는 파수꾼  


세 가지를 당부를 하신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 하나를 지적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타락입니다. 종교, 정치, 사회 등 각 분야의 지도자가 잘못되면 한 조직이 망가지고 한 나라가 망가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게 된 것도 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56장과 57장에 걸쳐 나옵니다. 56장 9절입니다. “들짐승들아. 숲 속의 짐승들아, 모두들 와서 먹어치우라!” 여기서 ‘들짐승들’과 ‘숲 속의 짐승들’은 이방인을 말합니다. 이방의 군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 앞에서 조직을 구원하고 나라를 구할 책임이 파수꾼에게 있습니다. 파수꾼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졸거나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쳐들어오는 적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56장 10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은 모두 눈이 멀었고 하나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구나. 그들은 모조리 짖지도 못하는 벙어리 개들이구나. 기껏 드러누워 꿈이나 꾸고 나른하게 잠자는 것만 좋아하는구나.”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가리켜 ‘파수꾼’이라고 하십니다. 파수꾼은 그 시대의 지도자들인데, 파수꾼이 잘못하면 적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니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눈이 멀었고 무지했고 벙어리 개와 같으며 잠자기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파수꾼들, 영적지도자들이 이랬습니다. 그들은 눈이 멀었고,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짖지 못하는 개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누워서 잠만 잤습니다. 영적 상태가 이랬기 때문에 그들은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신음하고 죽어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심하게 책망하십니다.  


잘못된 지도자들의 특징  


하나님은 교인들은 덜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심각하게 책망하십니다. 목사, 장로들을 심각하게 책망하십니다. 역할이 크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도자인 당신이 눈을 감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을 따르는 양 떼는 다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이 말을 듣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지도자의 위치에 세우신 것은 여러분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을 보호하고 국민들과 교인들을 보호하라고 세우신 것입니다. 11절입니다. “게다가 그 개들은 식욕까지 왕성해서 도대체 만족할 줄 모르는구나. 그들은 아는 것도 없는 목자들이어서 모두들 자기 길만 고집하고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구나.”잘못된 지도자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끝없는 탐욕입니다. 식욕이 왕성해서 다 집어 먹고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무식하면 조용히 있으면 좋으련만 자기 길만 고집하고 자기 이익만을 챙깁니다. 이것이 잘못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분별력이 있어야합니다. 절제할 줄 알아야합니다. 지도자가 자기 식욕,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살면 백성들은 죽게 되어있습니다. 탐욕의 극치를 달리고 외골수, 고집쟁이,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2절을 보면 잘못된 지도자가 하는 일이 또 나옵니다. “오라, 우리가 포도주를 내올 테니. 독한 술로 취하도록 마시자! 내일도 오늘처럼 마시자! 아니, 더 마시자!”탐욕스런 지도자, 이기적인 지도자, 고집스런 지도자, 눈이 멀고 짖지 못하는 개와 같은 지도자가 포도주까지 내오라고 합니다. 향락 파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자, 더 마시자, 오늘도 마시고 내일은 더 마시자”라고 합니다. 내일도 파티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임박한 심판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상숭배는 곧 멸망  


이들을 막을 수 있는 의인은 하나도 없었던 것일까요? 57장 1~2절입니다. “올바른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마음에 두는 사람이 없고 경건한 사람이 사라져도 아무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다. 사실 올바른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재앙을 떠나 평화를 누리러 가는 것이다. 올곧게 사는 사람은 자기 침상에 누워서 편히 쉴 것이다.”선한 시대에는 의인이 있지만 악한 시대에는 의인이 사라집니다. 의인이 악인에게 순교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57장 1절을 보면 ‘의인이 죽어도 아무도 마음에 두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소리 없이 의인이, 경건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들은 재앙을 떠나 평안한 안식처로 들어가서 주님의 침상에서 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시대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의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이런 저주의 때에 나타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곧 그 시대의 절망과 좌절과 파멸을 의미합니다. 우상숭배는 그냥 재미로,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숭배는 그 시대를 파멸시키고, 정신적, 민족적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가 만연하면 몇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먼저 미신이 판을 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에는 골짜기에도, 산꼭대기에도 신당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성적 타락이 판을 쳤습니다. 우상숭배는 반드시 성적 타락을 몰고 옵니다. 우리 시대가 성적으로 타락한 것은 세상이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독재자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물질을 숭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갈 때 사회적 현상이 이러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있습니다. 요즘 교회보다 많아지는 것이 점치는 집입니다. 점치는 카페가 생기는가 하면 언론까지 합세해서 점치는 것을 부추깁니다. 무당이 판을 치고 점쟁이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미신적 사고를 하기 시작하면 성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재자가 등장하고, 사람들은 물질을 숭배합니다.    


우상숭배의 다섯 가지 모습  


3~4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이리 가까이 오라, 무당의 자식들아! 간통꾼과 매춘부의 종자들아! 너희가 누구에게 치근덕거리며 말하느냐? 너희가 누구에게 입을 쩍 벌리고 혀를 쏙 내미느냐? 너희는 어그러진 자의 자식, 거짓말쟁이의 종자가 아니냐?” 우상을 숭배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계속 늘어납니다. 거짓말쟁이 종자, 어그러진 자의 자식들이 사회에 양산되기 시작합니다. 지성적이고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사회가 되지 않고 폭력이 난무하고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들이 양산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가리켜 무당의 자식들, 간통꾼, 매춘부의 종자, 어그러진 자의 자식, 거짓말쟁이의 종자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이 말씀을 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족속들이 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5절부터는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다섯 가지 모습이 나옵니다. “너희는 상수리나무 사이와 우거진 나무 아래라면 어디에서나 정욕을 불태우고 있다. 골짜기에서, 갈라진 바위 밑에서, 자식들을 잡아서 희생제물로 바치고”


첫째,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상수리나무와 우거지진 나무 아래에서 정욕을 불태웠습니다. 둘째, 제사를 드릴 때 자식들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6절입니다. “골짜기의 매끄러운 돌들을 자기 것으로 골라서 그 돌들을 바로 그 돌들을 네 운명의 돌로 삼으며, 심지어 그것들에게 술을 붓고 곡식을 바치기까지 하니 이런 것들을 내가 어떻게 눈감아 주겠느냐?”  셋째, 골짜기의 돌을 골라서 자기 운명의 돌로 삼고 심지어 술을 붓고 곡식까지 바칩니다. 넷째, 높은 산에서 침상을 만들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7절입니다. “너는 높이 솟은 언덕에다 침대를 만들어 놓고 심지어 거기에 올라가서 제사를 지냈다.”  임박한 심판  낮은 골짜기에서도 제사를 드렸고 산꼭대기에서도 침대를 만들어놓고 정욕을 불태우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너는 문과 문설주 뒤에다 이방 사람의 상징물을 두었다. 너는 나를 버리고 옷을 벗고 누울 자리를 넓게 폈다.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화대를 받고 함께 누워 색을 즐겼다.” 다섯째, 문과 문설주 뒤에다 이방 사람의 상징물을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을 즐겼습니다. 이처럼 다섯 가지 우상숭배 모습은 두 가지 단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배신과 음행입니다. 오늘 우리시대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특징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음란의 바다에 빠지고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음란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배신의 술잔을 들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라는 이름으로 우상을 숭배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사인입니다. 9절과 10절입니다. “또 너는 기름을 바르고 향수를 듬뿍 뿌리고 몰렉에게 나아갔다. 너는 네 사신들을 멀리 보냈고 심지어는 음부에까지 내려 보냈다. 너는 많은 여행으로 지쳤을 법도 한데 ‘그만 해야지!’ 하고 말하지 않고 도리에 네 우상이 네게 활력을 주어서 네가 아프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다.”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열정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몰렉’은 해외에 있는 신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던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가서도 우상을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많이 다녀서 피곤할 법도 한데 ‘우상이 내게 활력을 주어서 피곤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마귀도 사탄도 이 세상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정반대로 일을 합니다.  


영원한 희망 예수 그리스도  


11~13절입니다. “누가 그렇게도 무섭고 두렵기에 너는 내게 거짓말이나 하고 나를 기억하지도 못하며 나를 네 마음에 두지도 않느냐? 내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고 네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냐? 네게 잘한 것이 얼마나 있는지 네가 한 일을 내가 드러내 보이겠다. 그때 네 우상들은 네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소리를 질러서 네 우상들이 너를 건져 내게 해 보아라! 도리어 바람이 그것들을 몽땅 날려 버리고 입김이 가져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내게 피하는 사람은 땅을 물려받고 내 거룩한 산을 상속받을 것이다.”  성경을 보면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있고 저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 악인의 결론은 멸망입니다. 사랑하는 온누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십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 가십시오.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가 예언하는 말씀이 지도자를 향한 엄한 경고임을 깨달으십시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향한 무서운 경고의 말씀임을 깨달으십시오. 우리 자신을 돌이켜 잘못된 지도자의 길, 우상숭배의 길로 가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함을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상숭배로 심판을 받았던 이스라엘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온누리교회 성도들과 대한민국이 되게 하옵소서.

대선이 곧 다가오는데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선거를 치러야하는지

지금부터 기도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우리 민족, 국가의 운명과 미래를 깊이 생각하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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