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겸손히 부르짖는 기도

새벽지기1 2018. 12. 10. 06:42


누가 의로운 사람인가 오늘 말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오늘 기록된 비유를 하시게 된 이유입니다.(9절)

둘째,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입니다.(10~13절)

셋째, 예수님께서 정말 말씀하시려는 메시지입니다.(14절)


9절과 14절에 의로운 사람이 나옵니다. 9절에는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고, 14절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로운 사람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의로움에 대한 세상과 하나님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도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태도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진정한 의로움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누구를 높다고 인정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14절)라는 말씀에 힌트가 있습니다. 해답은 겸손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도, 기도 응답도, 구원도 겸손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겸손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잘못된 두 가지 태도가 나옵니다.

첫째는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흠이 없어, 나는 부족한 것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의로움을 하나님께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들을 업신 여긴 것입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의롭지 않다고 정죄하고 업신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정말 의로운 태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의로움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교만과 겸손의 기준 


10절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비유가 나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바리새파 사람이 더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11~13절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마치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아도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십일조 많이 내고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금식하는데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과 달리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쳐다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이야기합니다. ‘이 죄인에게’라는 고백에는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회개가 있습니다. 자비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세리는 바리새파 사람과 달리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고백했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의 차이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바리새파 사람은 교만이요 세리는 겸손입니다. 교만이란 관계가 뒤틀어져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겸손은 제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올바른 관계, 주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최대의 교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올바르게 사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혹시 아직도 혼자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반면 기도는 최고의 겸손입니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보라고 하시는데 바리새파 사람은 구하지는 않고 ‘저는 할 것 다 했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하겠습니까. 반면 세리는 가슴을 치며 자비를 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돕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자존심 내세우지 마십시오. 특히 가족에게는 자존심을 버리십시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도 자존심을 꺾고 ‘하나님, 도와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암수술처럼 큰 것 뿐만 아니라 작은 것까지도 기도하십시오.  


겸손의 능력 


예수님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은 업신 여기는 사람들에게 본심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이 저 바리새파 사람보다 오히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14절)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세리가 더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존귀함과 통하고 교만은 낮아짐과 통합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무능력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이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겸손은 진정한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요 나는 피조물입니다. 당신은 내 아버지요 나는 자녀이기에 나의 삶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그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리를 찾으면 능력이 나타나고 기도가 응답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에서 겸손하게 산 사람 중에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그는 전도를 하다가 사도행전 17장 24~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신은 온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사람이 손으로 지은 신전들 안에 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뭔가 부족해서 인간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다른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입을 열어 구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온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순간마다 무릎꿇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이 창조자시며 이 땅의 주인이시며 생명과 호흡의 주관자이시라고 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찬송가 415장 ‘주 없이 살 수 없네’를 묵상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피조물인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으십시오. 하나님께 순수하고 겸손하게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입을 열고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도와줄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당신을 쓰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내 능력이 그렇지 못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하나님은 그것을 의롭다 인정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창조주요 나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요 나는 그분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간구하고 구하면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순간 숨도 쉴 수 없고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고백을 통해 당신의 자리를 찾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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