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인생의 원초적인 문제는 나 없는 나, 나 아닌 나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왜곡된 나, 나 아닌 나를 나라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삶이 공허하고 번뇌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 없는 나, 나 아닌 나를 나로 알고 사는 것은 인간의 원형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시야를 좀 확장해서 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내가 발 딛고 사는 이곳은 대체 어떤 곳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 지구라고 하는 특정한 별에서 살고 있습니다. 태양의 주변을 돌고 있는 8개의 행성 중에 하나인 지구, 태양의 빛과 열이 없으면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는 지극히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별, 우주의 광대함에 비하면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한 지극히 미미한 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어떤 곳일까요? 단지 여러 원소들이 결합한 물질 덩어리일까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어쩌다 보니 존재하게 된 우연의 산물일까요? 만일 이 세상이 우연의 산물이라면 인간도 우연의 산물일 수밖에 없게 되는데 과연 세상이 우연의 산물일까요? 세상은 단지 세상일 뿐일까요? 결코 그럴 리 없습니다. 이 세상은 단지 세상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디자인하시고 정성스레 만드신 소중한 집입니다. 지금도 쉼 없이 사랑으로 가꾸시고 돌보시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집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며 온갖 살림살이를 하시는 실제적인 집입니다. 예, 하나님은 단지 세상을 창조하신 게 아니에요. 당신의 집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집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 월세도 내지 않고 보증금도 없이 하나님의 집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초라하고 구질구질하고 무너져가는 집이 아니라 광대하고 다채롭고 아름답고 조화로운 집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광대하고 다채롭고 아름답고 변화무쌍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집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광대하지도 못하고 다채롭지도 못하고 아름답지도 못하고 조화롭지도 못합니다. 광대하고 다채롭기는커녕 허접하고 누추하고 빈곤하고 추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대적하고 속이고 정죄하고 경쟁하며 추레한 죽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기쁘고 활기차게 자기할 일을 찾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얼굴을 찌푸리고 몸을 비비꼬면서 억지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사는 집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데 삶은 왜 이렇게 허접하고 누추하고 추악하고 추레한 것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나 없는 나, 나 아닌 나로 살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나, 나 아닌 나를 나라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모른 채 살기 때문에 삶이 허접하고 누추하고 빈곤하고 추악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어떤 곳입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떤 곳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합니까?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전쟁터 내지는 경쟁터라고 생각합니다. 인생도 내가 살아남느냐, 네가 살아남느냐 하는 양보 없는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실제로 총성 없는 전쟁터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끝없는 전쟁과 경쟁의 연속입니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요 경쟁입니다. 일터 경쟁, 승진 경쟁, 입시 경쟁, 취업 경쟁, 무기 경쟁이 치열합니다. 국가 간의 무역은 경쟁을 넘어 전쟁입니다. 중국과 미국, 한국과 미국이 총성 없는 무역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정당 간에도 국가 권력을 잡기 위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은 인기를 얻기 위해 전쟁을 하고, 사람들은 내남없이 돈을 벌기 위해 쩐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지구촌이 월드컵 열기로 뜨거운데요 축구도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닙니다. 단지 우승을 놓고 벌이는 스포츠 경기가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오가는 돈 잔치입니다. 국가와 선수 개개인의 명예와 돈이 걸려 있는 어마어마한 전쟁, 세계인이 보고 즐기는 스포츠 전쟁이에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살벌한 전쟁터이자 경쟁터입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놈은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한 놈은 도태되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은 동물의 세계에만 통용되는 법칙이 아닙니다. 인간의 세계 또한 능력 있는 놈은 살아남고 능력 없는 놈은 도태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경쟁 없는 세상, 누구나 다 똑같이 평등하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을 꿈꾸어왔지만 그런 꿈을 이루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훌륭한 선각자들이 좋은 말들을 많이 했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뜨겁게 외쳤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약육강식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시스템, 경쟁의 시스템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서로 눈치보고 힘겨루기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대적하고 속이고 정죄하고 경쟁하며 죽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예, 사는 것은 곧 경쟁입니다. 사업도 경쟁이고, 일도 경쟁이고, 공부도 경쟁이고, 과학과 이데올로기도 경쟁이고, 정당도 경쟁입니다. 심지어 농사도 경쟁이고, 내적인 성품이나 종교까지도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세상이 그래요. 어느 누구도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단 하루도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봅시다. 세상이란 본래 그런 곳일까요? 약육강식의 방식으로 살도록 그렇게 구조화되었을까요? 적자생존의 법칙을 따라 굴러가게 되어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적자생존의 세계를 창조하셨을 리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본래 너를 통해서 내가 살고, 나를 통해서 네가 사는 상부상조의 시스템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체인 사랑과 연합의 시스템이었습니다.
에덴동산 이야기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깊이 잠재우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돕는 배필을 지어주셨습니다(창2:18). 서로 도우며 살도록 돕는 배필을 지어주셨습니다. 사람뿐 아닙니다. 태양과 지구가 함께 공존하고, 지구와 달이 함께 공존하고, 바람과 새가 함께 공존하고, 바다와 육지가 함께 공존하고, 사자와 양이 함께 공존하고, 고래와 새우가 함께 공존하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공존하는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만인과 만인이 싸우는 전쟁터로 창조하신 게 아니라 만인과 만인이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는 상부상조의 시스템, 서로가 서로의 지체인 사랑과 연합의 시스템, 서로가 서로를 통해 살 수 있는 공존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특히 창조자 하나님이 함께 거할 수 있는 세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세상은 당신의 집으로 창조하셨어요. 이 세상은 다른 무엇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주인이요 사랑이신 하나님의 집에서 모든 생명이 사랑 없는 죽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살벌하고 잔인한 약육강식의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왜 하나님의 집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며 사는 것일까요? 인간의 대표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의 시스템이 마비됐기 때문입니다. 본래의 시스템인 상부상조의 시스템, 사랑과 연합의 시스템, 공존의 시스템이 마비돼서 약육강식의 방식으로 살게 된 거예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너와 경쟁해야 되고, 너를 이겨야 되고, 너를 이용해야 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추락한 겁니다. 큰 틀에서 말하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갈라진 겁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께서 우주만물만 창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공간에 있는 것들만 창조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우주만물만 창조하신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창조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것들만 창조하신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 밖에 있는 것들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
여기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은, 눈에 보이는 땅의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세계로 구성된 신비하고 오묘한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늘과 땅이 따로따로인 세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 하늘과 땅이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둘인 오묘하고 신비한 세계, 하늘은 지혜와 사랑으로 땅을 다스리고 땅은 하늘의 지혜와 영광을 드러내는 참으로 오묘하고 조화롭고 복된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물읍시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오묘한 세계를 창조하셨을까요? 눈에 보이는 세계만 만들어도 될 텐데 그것이 여러 가지로 단순하고 쉬울 텐데 왜 굳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복잡하게 창조하셨을까요? 시편과 이사야서에서 중요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은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신다.”(시104:1-4)고 노래했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사66:1)라고 반문하듯 말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시편이 말하는 것은 ‘창조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사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적 행위’라는 뜻입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것은 ‘창조가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나라)을 세우는 원대한 작업’이었다는 뜻입니다. 예, 바로 이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온 세상에 밝히 드러내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집(나라)이 되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세계를 창조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세계라야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을 다스릴 수 있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을 다스릴 수 있어야 이 세상이 하나님의 집(나라)이 될 수 있으니까, 또 그렇게 돼야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밝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갈라졌습니다. 처음에는 하늘과 땅이 한 몸이었는데,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한 몸이 되듯이 하늘과 땅이 한 몸이었는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한 몸 됨이 깨졌습니다. 하늘과 땅이 이혼한 상태가 됐습니다.
부부가 이혼하면 어떻게 됩니까? 부부만 남남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집의 살림살이와 재산과 가족들 전체가 찢기고 나뉘고 상처를 받습니다. 하늘과 땅의 이혼도 그렇습니다. 한 몸이었던 하늘과 땅이 갈라지자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찢기고 나뉘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특히 사람이 가장 큰 상처와 타격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늘과 대화하는 존재였습니다. 사람은 세상과도 대화하고 자기와도 대화하는 정신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하늘과도 대화하는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사람은 일차적으로는 정신과 육체(뇌와 몸 - 땅에 속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더 근본적으로는 하늘과 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할 때 어떻게 창조했습니까? 먼저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흙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는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창2:7). 여기서 하나님의 생기는 하나님의 세계, 하늘의 세계에 속한 것을 표상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어떤 존재냐, 흙과 하나님의 생기로 구성된 존재다, 다시 말하면 땅의 것과 하늘의 것으로 구성된 존재다, 이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옳습니다. 사람은 단지 몸뚱이(뇌와 몸으로 이루어진 몸뚱이)가 아닙니다. 사람은 본래 몸뚱이 이상의 존재, 즉 땅에 속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하늘에 속한 존재입니다. 마음과 영혼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입니다. 하늘을 통해 땅을 바라보고, 하늘의 뜻을 좇아 땅을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고(마4:4). 그렇습니다. 사람은 땅에 속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하늘에 속한 존재입니다. 자기 안에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참 사람으로서 참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존재, 참 사람으로서 하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는 존재,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아주 독특한 존재입니다.
결국 사람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중간 매개자입니다. 하늘과도 소통하고 땅과도 소통하는 소통의 창구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을 아는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늘과 땅의 소통이 막혀버렸습니다. 하늘과의 소통도 막혀버렸고, 땅과의 소통도 막혀버렸습니다. 아담이 본래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는데 하나님께 등을 돌림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세계가 닫혀버렸습니다. 하늘의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것으로 그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에덴동산’은 하늘의 세계를 표상합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다는 것은 아담이 하늘의 세계를 잃었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세계가 닫혔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하늘과 땅이 이혼한 상태의 세상입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이 갈라진 것처럼 하늘과 땅이 두 쪽으로 갈라진 상태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소통이 완전히 막힌 상태입니다.
지금 이 상태를 인간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사람은 머리(뇌)와 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머리(뇌)와 몸이 신경이라는 세포다발로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경을 통해서 몸의 감각이 뇌로 전달되고, 뇌의 반응이 몸으로 전달됩니다. 그런데 뇌와 몸을 연결하는 신경이 마비되면 어떻게 될까요? 뇌와 몸을 연결하는 신경이 마비되면 뇌와 몸이 따로따로 놀고, 몸과 몸이 따로따로 놀게 됩니다. 몸은 배가 고파 죽겠는데 뇌는 몸이 배고파하는 걸 인지하지 못합니다. 또 뇌가 손뼉을 치라고 신호를 보내도 손이 손뼉을 치지 않습니다. 신경이 마비되어 뇌와 몸의 소통이 막히면 밥 한 숟가락도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되고, 말 한 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헝클어지고 엉망진창이 됩니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세상은 하늘과 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경이 뭐냐 하면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하늘과 땅이 소통합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경인 사람이 타락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추 신경이 마비됐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추신경이 마비됐으니 하늘과 땅이 따로따로 놀지 않겠습니까? 땅이 하늘과 상관없이 지 맘대로 놀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이 헝클어지고 엉망진창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서로 미워하고 대적하고 속이고 정죄하고 죽을 똥 살 똥 모르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서로 죽이고 죽는 죽음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시스템(너를 통해서 내가 살고 나를 통해서 네가 사는 상부상조의 시스템, 서로가 서로에게 지체가 되는 사랑과 연합의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져 오작동 하니까 세상이 온통 살벌한 전쟁터요 경쟁터가 된 것이고, 삶 전체가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헝클어지고 엉망진창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살벌한 전쟁터가 된 것은 하늘과 땅이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하늘과 땅이 이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이혼하게 된 것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추신경인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추신경이 마비됐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집인 이 세상이 형편없는 세상으로 추락하게 된 근본 이유입니다. 이 세상이 살벌한 전쟁터가 된 근본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갈 짓자 걸음을 걷게 된 근본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마비된 중추신경이 회복되면 만사가 회복됩니다. 마비된 중추신경이 회복되면 갈라졌던 하늘과 땅이 다시금 한 몸이 되고, 갈라졌던 하늘과 땅이 다시금 한 몸이 되면 세상의 모든 문제, 인간의 모든 문제는 절로 회복됩니다. 관건은 중추신경입니다. 관건은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과 영혼이 다시금 하늘을 향해 열려야 합니다. 각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의 내면이 정상화될 수 있고, 이 세상의 시스템이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과 영혼이 하늘을 향해 열려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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