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의 사명!
(마5:13-16)
◆본문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서론
우리는 지난주까지 2주간 전도훈련교실을 했습니다.
오늘은 수여대에서 캠퍼스 전도하는 날이었는데 비가와서 제대로 할 수 있었는지 걱정됩니다.
하지만 수여대의 그런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말씀은 소위 예수님의 산상 수훈 내용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교회에서 여러 번 들었던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잘 아는 만큼 그렇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본문
그러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맛의 사명>으로 살라는 것입니다(13절).
본문 13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금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소금, 그리고 황금-
누가 만든 말인지 모르지만 100%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황금이 아니라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소금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 소금일까요? 왜 설탕이면 안 될까요?
소금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설탕은 없어도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금이 없으면 죽*습니다.
오히려 설탕은 부패를 촉진합니다.
그래서 ‘달콤한 유혹’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단 것은 갈증을 재촉하지만, 소금은 탈진을 방지합니다.
단 것은 치아를 상하게 하지만,
소금은 치아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 치약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금이 없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군에서는 야외 훈련시 지휘관은 반드시 병사들의 소금 주머니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훈련 중 땀을 많이 흘릴 경우 탈수로 인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소금을 먹이지 않고 죽이는 형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소금을 바다에만 두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암염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암염(巖鹽, rock salt)은 석염· 돌소금이라고도 합니다.
바닷물이 증발하여 소금이 광물로 남아 있는 것인데
중국 내륙이나 파키스탄등에는 상당히 큰 소금광산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땅 속에도 소금 창고를 두신 것입니다.
소금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구약 제사에서도 소금은 반드시 필요한 재료입니다.
레위기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소금의 비유’를 통해서 교훈하시고자 하셨던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 13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여기서 ‘맛을 잃은 소금’은 어떤 것일까요?
바로 앞에서 말한 암염이 짠맛을 잃었을 경우에 해당합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말 그대로 돌일 뿐입니다.
그래서 밖에 버리워지고 사람들에게 발피울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소금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맛’을 내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날 우리 성도들은 그 ‘맛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는 제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거창고 직업선택 10계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6.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거창고는 경남 거창에 있는 미션스쿨입니다.
거창고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직업선택의 십계(十戒)'라는 유리 액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합니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계명의 정신은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학생들이 몸속에 익혀 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학교는 비록 지방에 있지만 90% 이상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입시 성적 때문에 유명한 학교가 아니라,
인성 교육이 부족한 우리 나라의 교육계에 신앙 인격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는 학교이기 때문에 유명한 학교입니다.
저는 이 학교 졸업생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교육의 참된 목표가 무엇인지, 크리스찬의 삶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가르치는 이런 학교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 방침이 바로 이 시대 크리스찬들이 살아 가야할 ‘소금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왕이 ‘참된 인생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해 현자를 찾아 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참된 삶을 살 수 있소?’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뭐요?’
‘첫째는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그거야 세 살짜리도 다 아는 것 아니요?’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생 80이 되어도 그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소금의 사명’을 받은 크리스찬 청년들입니다.
‘소금의 사명’은 사회에서 맛을 내는 삶입니다.
‘영적 소금’의 맛은 ‘사랑’입니다.
내가 쓴 맛을 내면 이웃들이 떠날 것입니다.
내가 신맛을 내면 이웃들이 얼굴을 찌푸릴 것입니다.
내가 느끼한 맛을 내면 이웃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내가 있어 이웃들이 기뻐하고 흐믓해 한다면 나는 이미 ‘소금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금의 사명’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둘째, <빛의 사명>으로 살라는 것입니다(14-15절).
본문 14-15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14상).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빛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빛의 사명’은 어둠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노출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9-12)'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어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단의 권세가 성도를 미혹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너희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빛의 사명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빛 되신 예수님의 반사체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빛으로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구약 성막의 금촛대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레24:1-2)“
그것은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기름(감람유)을 공급해주듯이,
영적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곧 성도가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날! 세상이 이렇게 어두운 것은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회적 지탄을 받고 성도가 조롱거리가 된 것 역시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한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도 이제부터 세례를 받고 본격적인 신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얼마나 읽어야 하고 신앙의 연조는 얼마나 돼야 합니까?”
테일러목사는 청년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촛불은 언제부터 빛을 발합니까?”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그야 양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테일러목사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신앙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과 신앙 연륜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훌륭한 크리스천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심에 순종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고 부르신 그 순간부터 ‘빛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R.A. 토레이 목사님의 이 말이 늘 도전이 됩니다.
‘성경에 많은 번역이 있습니다. 번역이 너무 많아지면서,
때로는 어떤 번역본이 더 좋은지에 대한 논쟁도 일어나곤 하는데,
저는 오늘 그 많은 번역 중에서 가장 뛰어난 번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성경의 가장 뛰어난 번역, 그것은 바로 삶으로 번역한 성경입니다’
저는 이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성경의 가장 뛰어난 번역, 그것은 바로 삶으로 번역한 성경이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삶으로 번역 되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말이 아닌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4:20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요일3:18)”고 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말을 잘 하라고 보내신 것도 아니며,
성경 공부를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살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다시금 흐트러진 몸가짐을 새롭게 정돈합시다.
그리고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 충만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이 어둠의 세상 가운데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셋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16절).
오늘 본문16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한 명이 미치면 정신병이라고 하고 단체로 미치면 교회라고 한다.
죽어서 천국을 위해 살아서 지옥을 만드는 예수쟁이!
신도는 회개를 하고 목사는 회계를 하는 씁쓸한 현실!>
얼마 전 교회 문제가 사회적 잇슈로 등장했을 때 포털에 올라왔던 댓글입니다.
이 댓글에 공감한다는 댓글이 엄청납니다.
특별히 충성파로 여겨지는 한 분의 글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doo님! “몸=교회 암=일부 교인들입니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이있습니까? 죄 없으면 예수 안 믿어도 천국갑니다.
하지만 죄를 지었다면 십자가를 믿는 길 밖에 하나님나라를 받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들 화풀이 대상입니까?
당신들이 말씀 속에 하나님보다 더 선하고 깨끗한지 먼저 알아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아니요 구원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나 저 또한 회개해야 하는 것 맞습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 맞추어 살지 못한 것이
세월호등 사회문제에 간접원인이 됨을 인정합니다. 죄송합니다.“
과연 이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로 천시 받고 있는 이 시대!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욕을 먹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모욕을 당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크리스찬)가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 우리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크리스찬으로서의 맛을 잃어 버린 것이며, 빛의 사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케냐에 영국 기독교인 귀족 한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케냐 소년 한명을 하우스보이로 고용해 석달 동안 일을 시켰습니다.
석달 후 그 소년은 주인에게 타 지방에 사는 회교 귀족 집에 가서 일하고 싶다며
추천서를 한 장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주인은 월급을 올려 줄 터이니 떠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월급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자기가 기독교인이 될까? 회교도가 될까? 결정하려는데
회교 귀족 집에서도 석 달을 일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의 삶도 보고 회교도의 삶도 경험한 다음 결정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영국 귀족은 그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얘야, 너는 왜 처음부터 그런 말을 나에게 하지 않았니??
이 이야기가 정말 실화인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 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소름끼치도록 두려운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캠퍼스에서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너 예수 믿었어?-
이 말에 의미는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역시 예수 믿는 사람이었구나!’
‘네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라구?’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맛의 사명’과 ‘빛의 사명’과 관련된 아주 적절한 예화가 있습니다.
전에 제가 읽었던 <위기의 십대, 기회의 십대>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교회 저녁 식사모임에 초대를 받은 두 가정이 있었습니다.
▶Smith씨 가정의 자녀들은 정장 차림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었고,
그들의 대화 내용은 요즈음 그들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불신자들과는 거의 사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집에서도 최신 음악은 전혀 듣지 않습니다.
심지어 극장에도 가지 않습니다.
집에 텔레비전이 있기는 하지만, 오직 교육방송을 볼 때에만 틀어 놓습니다.
스미스씨는 직장에서 두 명의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고,
스미스 부인도 기독교인 친구들과 작은 친목모임에서 대부분을 보내고 있습니다.
스미스씨 가정이 외부 세상을 대하는 모습은
한마디로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구별되게 사는 것이다.
->스미스씨의 생각: 악은 모든 문화 속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모든 문화를 피해야 한다.
▶Jones씨 가정의 자녀들이 입은 옷은 스미스씨 자녀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한 가지만 보자면, 존스씨 자녀들은 많은 장신구들과 귀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남자애들까지도 그렇게 하고 습니다.
존스씨 딸은 식사를 하는 동안 듣지도 않으면서 목에 헤드폰을 끼고 있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많은 학교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아들은 크리스천 락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의 자녀들은 불신자 친구들처럼 행동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존스씨 가정의 반응은 한마디로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Jones씨의 생각: 성도의 삶은 동화(assimilation)'다.
모든 것은 가치 중립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해롭지 않다.
하지만 이 두 가정은 각각 하나씩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불신자들과 교제 조차 하지 않는 Smith씨 가정은
그리스도인의 '빛의 사명'을 잃어 버린 것이며,
거의 방종에 가까운 자율을 허용하는 Jones씨 가정은
그리스도인의 '소금의 사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노출의 사명자들’입니다.
캠퍼스에서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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