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잎만 무성한 나무 (마21:18-22-무화과 나무 저주사건)

새벽지기1 2018. 5. 21. 07:13


잎만 무성한 나무

(21:18-22-무화과 나무 저주사건)

 

본문


18.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해석과 설명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18)

이른 아침은 성전 정화를 하셨던 다음 날 즉, 월요일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정화를 하신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에 출퇴근하셨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 약 4km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가 살던 곳으로 나사로 동네로 부른다.(11:1).

아마도 이 날 예수께서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으시고 성으로 들어오셨던 것 같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19절상)

무화과 나무는 팔레스틴의 3대 과목 중 하나로 가나난 사람들의 양식으로 불렸다.

무화과 나무는 보통 3월 말에 싹이 나서 5,6월에 열매를 맺고 8-10월 사이에 수확을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예수 당시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을 때다.

신적 지각력을 지니신 예수께서 무화과 철을 몰랐을리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그 나무에서 무화과를 구하셨을까?

성경은 시장해서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무화과나무를 통해> 제자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였다.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19절하)

예수께서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때는 무화과 철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무화과 나무는 포도나무 올리브나무(3:17)는 모두 이스라엘을 상징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신약의 크리스찬들은 영적 이스라엘로 똑같은 적용을 받는다.

, 입만 무성한 무화과는 의식과 형식에 치우쳐 참된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당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를 주시기 위한 사건이다.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20)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제자들은 예수의 무화과 나무 저주사건을 이상히 여겼다는 것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무화과나무 저주사건 시기가 다른 문제.

마태 - 무화과나무의 저주와 마름이 거의 동시에 나타난 것으로 기록했고,(본문)

마가 - 예수님의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는 월요일 아침(11:1214),

그 나무의 마름을 제자들이 발견한 것은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으로 기록하고 있다.(11:20).

이는 마태는 사건을 주제에 따른 배열을 더 선호한 반면,

마가는 사건을 시간적인 순서나 연대기적 배열에 충실하여 사건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21)

제자들은 무화과나무 저주사건의 교훈보다 그 이적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했다.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본 절은 이에 대한 예수의 답변이다.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다

이 표현은 복음서에 믿음의 표적과 관련하여 종종 등장하는 표현이다.(고전13:2)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기록하고 있다.(17:6)


마태복음에는 겨자씨에 관한 비유가 기록되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여기서 겨자씨는 믿음의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소재들이다.

결코 믿음의 대소(크고 작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겨자씨은 믿음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소재들일 뿐,

결코 믿음의 크기(대소)를 비유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

, ‘겨자씨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생명력을 가리킨다.

은 인생을 살면서 닥치게 되는 어려운 일들을 상징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어떠한 문제라도 생명력이 있는 믿음(겨자씨)만 소유해도 능히 난제()을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본문에서도 믿음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예수님의 표현이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2)

예수께서는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고

이어서 기도를 말씀하시고 있다.

본 절의 의미는 믿음에 근거한 기도가 응답 받는다는 것이다.

다 받으리라불의 한 것이라도 무슨 기도든지 그대로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응답의 범위는 여전히 하나님 뜻 안에서.

 

교훈과 적용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19절상)

무화과 나무는 보통 3월 말에 싹이 나서 5,6월에 열매를 맺고 8-10월 사이에 수확을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예수 당시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을 때다.

이 사실을 마가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11:13)’

왜냐하면 유월절이 있는 니산월은 민간력으로 3-4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11:13)

신적 지각력을 지니신 예수께서 그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그 나무에서 무화과를 구하셨을까?

따라서 본문은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다.

마태는 예수께서 시장하여무화과를 얻기 위해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신적 지각력을 가지신 예수께서 제철도 아닌데 실제로 무화과를 얻고자 가신 것이 아니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통해> 제자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화과나무의 상징성이다.

무화과 나무와 포도나무 올리브나무(3:17)와 함께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입만 무성한 무화과는 의식과 형식에 치우쳐 참된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당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를 주시기 위한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잎만 무성한 나무에 대한 심판이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결국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3: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