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호산나 다윗의 자손! (마21:1-11-예루살렘 입성)

새벽지기1 2018. 5. 19. 08:41


호산나 다윗의 자손!

(21:1-11-예루살렘 입성)

 

본문


1.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해석과 설명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1)

본장은 예수님의 유월절 입성이다.

마태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서론(1-4: 유대에서의 사역 준비)

2부 유대에서 갈리리로(5-20: 갈릴리 사역)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4:12)”

3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21-27: 예루살렘 마지막 한 주간)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21:1)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구속사 마지막 사역이 이루시기 위해 입성하시는 것이다.

이제 곧 유월절이다.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1)

감람산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성전 맞은 편 산을 말한다.

벳바게무화과 나무의 집이라는 뜻의 지명으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감람산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이곳은 예수님의 무화과 나무의 저주와 관련된 지명이다.

그리고 스가랴선지자가 언급한 나귀타고 입성하실 예수님께서 나귀를 취한 곳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귀를 구해 오라고 명하신다.

특이한 것은 마가와 누가는 나귀 새끼만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마태는 나귀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가와 누가는 예수님께서 타실 나귀 새끼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그러면 왜 나귀가 아니라 나귀 새끼인가?

그것은 언약의 성취와 관련이 있다.

일찍이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9:9/본문5)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

그것은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이 말은 당연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마가는 그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11:4-6)“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전능자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4)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이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62:11)와 스가랴(9:9) 예언의 조합된 형태다.

이는 예수께서 자신이 오실 메시야임을 밝히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말씀 가운데 분명이 언급하고 있다.

네 왕바로 그것이다.

, 내가 바로 너희 이스라엘 왕이다이렇게 선포하신 것이다.

한편, ‘시온은 예루살렘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산성으로 후에 이것을 다윗성이라고 불렀다.

시온의 딸은 성경에서 <예루살렘 성민-영적으로는 교회>을 지칭 한다.(45:12, 47:1)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7-9)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이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

이 구절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의 기쁨의 정도를 표현하고 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직역하면 다윗의 자손 메시야를 찬송합니다.’이지만 의역하면 메시야 만세라는 의미.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 말씀은 시118:26의 인용이다.

이 말은 원래 예루살렘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서로를 향해 했던 말이었으나,

여기서는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은 메시야를 부르는 말로 사용되었다.


<특주> 다윗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마태복음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우선 구속사에 있어서 메시아’(그리스도)의 개념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다윗의 언약(삼하7:5-16)이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다윗의 언약 내용

1)하나님께서 다윗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신다.(89:29)

2)다윗의 자손이 왕의 위()를 영원히 끊기지 않을 것이다.(삼하7:12)

3)한 아기가 나서 다윗의 위()에 앉아 공평과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9:6-7)

이 다윗 언약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수님 당시까지 메시야 대망사상의 핵심이 되어 왔다.

따라서 다윗의 자손은 메시야를 지칭하는 말로 고착 되었다.


<참고> 메시야

예수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헬라어 크리스토스기름 부음 받은 자의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야.

구약에서 메시야는 직무상의 칭호로서 왕, 선지자, 제자장들에게 사용되었다.

메시야호칭은 신구약 중간기를 거치면서 더욱 발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왕권과 세상을 심판할 능력을 부여 받은 이스라엘을 회복할 종말론적 구원자라는 특수한 칭호로 사용되었다.

이 칭호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야 대망사상으로 강하게 자리매김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강력한 저항의지와 통치력을 지닌 인물로 원수들에 영원한 승리를 가져다 줄 지도자였다.

하지만 예수가 보여준 메시야의 모습은 고난 받는 메시야였다.

유대인들은 후에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살인한 강도를 풀어주고 오히려 예수를 죽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10)

이는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소동하여는 어원상 지진으로 인해 땅이 흔들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수많은 이적을 행했고 수많은 사람을 살리신 예수시다.

무엇보다 전에는 듣지 못했던 수많은 천국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다.

그 중에는 구약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이른 바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런 예수께서 지금 백성들의 환호 속에 입성하시는 것이다.

백성은 환호했지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등 종교 지도자들은 초긴장 상태다.

이 날 사람들은 예수를 이렇게 표현했다.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11)

 

교훈과 적용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9)

이 영광! 이 환대!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환영하고 있다.

그동안 고난과 박해를 무릎 쓴 사역의 귀한 열매처럼 보인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참으로 대견스러운 장면이다.

하지만 지금 예수님에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죄수의 모습이다.

어쩌면 나귀 새끼가 예수님의 현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엄한 왕의 영광이 아니라 초라한 왕의 귀환이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7)”

지금 예수님은 유월절을 맞아 대속물로 입성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물로 입성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이렇게 환호하던 저들의 돌변이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19:15)“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은 것은 신앙이 아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1:2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