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눈 믿음에 관한 말씀은 예수님의 선포였습니다. 병을 고치실 때나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은 항상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너의 믿음이 너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아름다운 꿈을 꾸십시오. 긍정적인 생각을 하십시오. 희망적인 미래를 보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네가 꿈꾸고 네가 생각하고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선포, 축복의 선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을 베푸실 때 알아야 할 원칙중의 하나는 예수님 자신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만 사용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실 때는 언제나 “너는 내가 이것을 할 것을 믿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나의 믿음과 나의 의지와 나의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다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시멘트를 써보신 적이 있습니까? 시멘트만으로는 그냥 가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시멘트에 물을 부으면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아무 조건 없이, 아무 방향도 없이 여러분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그냥 병을 치료하시지 않습니다. 병을 고쳐주실 때 예수님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 결단, 의지를 사용하셔서 축복하시고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
그러면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장 1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에 믿음에 대한 두 가지 설명이 나옵니다. 첫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완성된 현재가 아니라 미완성된 미래입니다. 바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믿음은 현재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소유할 것입니다. 여러분, 미래에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미래에 대해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미래에 대해서 문을 닫지 마십시오. 미래는 내가 막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내 생각이 내 미래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언제나 문을 여십시오. 여러분이 가면 미래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미래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믿음으로 미래를 내 것으로 만드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라는 말을 세 가지 비유로 설명하겠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 안에 필름이나 디지털 칩이 있다면 내가 찍은 대로 사진이 나옵니다. 그러나 카메라가 아무리 좋더라도 그 안에 필름이 없다면 아무것도 남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믿음대로 하면 믿음은 실상입니다. 내가 기대하고 내가 바라는 것의 실체입니다. 또 하나는 땅이나 건물을 매입을 하면 문서를 받습니다. 땅을 샀다고 해서 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문서를 하나 들고 다니면 됩니다. 문서만 있다면 그 땅은 내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은행에서 발행하는 수표와 같습니다. 만약 현찰로만 갖고 다녀야 한다면 1억원을 어떻게 들고 다니겠습니까. 1억원을 다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은행에서 발행해준 수표만 있으면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이제 건물이나 땅이나 돈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없으나 다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미래에 대해서 우리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도 망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막연하고 이기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믿음을 내 마음속에 가지면 이것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둘째,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계란을 보고 병아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보지 않았지만 보는 것, 듣지 않았지만 듣는 것, 느끼지 않았지만 느끼는 것입니다. 나아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네가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천국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을 믿고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천국이 있는 것, 하나님이 계신 것, 하나님께서 승리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는데 그 믿음이 내게 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과학자는 두 가지 도구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망원경이고 다른 하나는 현미경입니다. 지혜로운 과학자는 망원경을 사용해서 먼 곳에 있는 것을 봅니다. 천체 망원경을 사용하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우주의 별들과 은하계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혜로운 과학자는 현미경을 사용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을 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영적인 망원경과 현미경을 가지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은 것들을 보고, 느끼지 않는 것들을 느끼고,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몸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흔들 수 없습니다.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보고, 황당하게 여기고, 좀 심하면 미친 사람처럼 봅니다. 그런 말 가끔 들어도 괜찮습니다. 천국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죽음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손해와 고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선진들에게서 이어지는 믿음
셋째, 믿음은 나 혼자 독불장군처럼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선조들에 의해서 계승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절입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믿음의 조상들에 의해서 검증된 것입니다. 역사적 맥을 갖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일생동안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았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감옥에 들어가도, 아기를 낳지 못해도, 땅을 빼앗겨도 하나님께서 약속을 신실하게 이끌어 가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불속에 들어가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이런 믿음의 조상들이 검증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전통에서 믿음의 조상에게서 계승된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을 말하기 전에 세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제사를 드렸던 아벨입니다. 둘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나라로 승천한 에녹입니다. 셋째는 물의 심판 속에서도 살아남은 노아입니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가 바로 상징적인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특히 노아 같은 사람은 산 위에다 배를 120년 동안 만들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배는 바다 근처에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믿음으로 배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아벨은 의로운 제사를 믿음으로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오늘 여기 모였는데 사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140여 년 전에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에서 피를 흘려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냥 고무풍선같이 확 불어난 것이 아닙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 많은 선교사님들이 이 땅에 와서 고생을 하며 죽었습니다. 양화진에 가보면 그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 믿음의 역사의 전통의 결과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기풍 목사님,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목사님 같은 분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고 고난 속에서 믿음을 붙들고 살았던 믿음의 줄기가 오늘 한국교회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창조신앙
넷째 믿음은 창조신앙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우주의 기원에 대해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입니다.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진화론을 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이론은 창조론입니다. 그 선택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이 선택의 본질은 과학적 사실인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진화론 역시 과학적 사실이라고 입증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습니다. 과학적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 싫기 때문에 진화론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니까 믿을 것은 진화론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을 믿으면 혼돈에 빠집니다. 창조주를, 생명의 기원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인간이 우연히 만들어 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무에서 진화했다는 것을 인정한 인간은 결국 혼란과 무질서에 스스로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진화론을 선택합니다. 이성의 코드에 맞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코드에 맞는 것은 창조론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창조론을 믿지 못합니다. 믿지 못하니까 자신은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부모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고아든 사생아든 부모를 알든 모르든 간에 우리는 반드시 아버지 어머니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역사는 우연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질도 우연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원인이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도 우연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성경책이 그냥 우연히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만든 사람이 있으니까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주를 보십시오.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를 보십시오. 들의 핀 꽃을 보십시오. 그것이 어떻게 우연히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 모든 것이 진화된 것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를 보십시오.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이토록 신비스런 존재가 동물입니까? 짐승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절망에 빠집니다. 혼돈에 빠집니다. 무의미해집니다. 출구도 통로도 없는 무의미하고 살아야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짐승 같은 존재로 마귀 같은 존재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믿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그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존재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인간은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기에 인간의 존재 기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기에 질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믿으십시오. 이것밖에 해답이 없습니다. 만약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과학이 하나님보다 높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논쟁할 수도 있고 증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요 인간의 과학을 초월하신 분이기에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과학적인 지식을 가진 현대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창세기 1장 1절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 하나만 믿으면 믿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열리는 믿음의 세계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선택해야 할 것은 이성으로 살 것이냐 믿음으로 살 것이냐 입니다. 배운 대로, 이성으로 사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고집하게 되면 결국 그 안에 갇히게 됩니다. 우리는 역사를 탈출해야 합니다. 이성을 넘어서야 합니다. 기독교는 상식 이하에 머무르지 않고 상식을 초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높은 가치와 영원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실제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믿음의 세계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귀신이 떠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주가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이 보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미래가 보입니다. 자기 인생이 보입니다. 자기 가야할 길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해야 할 말을 압니다. 불러야 할 노래를 압니다. 선포해야 할 것을 압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그 길을 계속해서 갑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분들에게 그 길을 가라고 합니다.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어 과학의 세계를 뛰어넘어 상식의 세계를 뛰어넘어 우리의 경험의 세계를 뛰어넘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 안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동일한 기적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산이 움직이고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이 열리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운명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갈 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인정하십시오. 믿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돌이켜보십시오. 그럴 때 놀라운 축복의 세계가 여러분 안에 전개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믿음의 세계를 열어주셔서
주여 닫힌 그들의 맘이 열리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하시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이 있을지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주님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안에 거룩한 생각을 품게 하시고
우리안에 거룩한 야망을 품게 하시고
거룩한 꿈을 주셔서
주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삶이 살아지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좋은 말씀 > 하용조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0) | 2018.02.06 |
---|---|
믿음의 영웅들 (0) | 2018.02.05 |
믿음대로 될지어다 (0) | 2018.01.31 |
큰 믿음과 작은 믿음 (0) | 2018.01.29 |
새 술은 새 부대에 (0) | 2018.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