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거듭난 새 생명입니다.
사랑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날마다 세상을 이기는 체험을 하십시오.
요한일서가 기록된 목적은 바로 알되,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를 알고, 자신이 아는 바를 확실히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요한일서가 기록되었습니다. 요한일서에는 ‘안다’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안다’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은 우리가 더 깊은 확신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확신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죽고 나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말씀은 확신에 속한 것입니다.
요한일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확신입니다. 요한일서 5장에는 세 가지 확신을 차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승리의 확신, 두 번째는 구원의 확신, 세 번째는 기도응답의 확신입니다. 이밖에 사죄의 확신, 인도하심의 확신도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하나님에게서 다시 태어나는 체험
오늘 본문은 승리의 확신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긴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4~5절).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해야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정한 교리에 동의하는 정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교리에 동의하고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귀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압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머리로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리에 동의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입니까.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말씀이 하나 더 첨부되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입니다”(1절).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4절).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 하나님께서 나으신 사람,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체험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먼저인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 먼저인지를 두고 신학자들이 열띤 논쟁을 합니다. 우리가 믿기로 결심함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택하셔서 태어나게 하셨는지를 두고 논쟁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DNA를 보면 두 개의 선이 나선형구조로 되어 있어 서로 하나를 이뤄가는 것처럼 인간의 믿음과 성령의 역사는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1절에 ‘믿는다’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동사는 현재시제입니다. 1절 중반부에는 ‘낳다’라는 시제가 나오는데 이것은 완료시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면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내 안에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게 한 새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게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는 요청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그 말씀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믿음가운데 나아오도록 요청할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을 얻는 믿음을 주시고, 거듭나는 역사를 행하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롬 10:17).
세상에 속한 인생에서 새 생명으로 거듭남
여러분,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실하게 증거될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거듭났다고 말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게 하셨으므로 믿게 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를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선교하고 전도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까. 왜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거듭나는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요 1:12~13).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는 이 세상에 속한 인생이었습니다. 누구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인생으로 태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배고픔의 욕구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눈을 가졌기에 보는 것에 이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귀를 가졌기에 들리는 것에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적인 출생을 통해 이 세상에 속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대 역사 속에 파묻혀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인생을 삽니다. 새로운 생명을 삽니다. 세상을 이기는 삶의 출발은 하나님에게서 나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거듭남의 체험이 있는지, 우리가 새 생명 안에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영적인 새 생명이 있는지, 거듭남을 체험하는 것이 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출발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체험입니다. 확실한 것입니다. 새 생명의 역사를 간절히 원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먼저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절히 원했지만 한참 후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오래 한 이후에 도달하는 지점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태어나듯이 우리 안에 영적인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새 생명의 역사가 시작 됩니다.
하나님의 DNA ‘사랑, 순종, 승리’
존스토트 목사는 알파벳 ‘ABCD’를 통해서 그리스도인 됨을 설명했습니다.
A는 ‘Admit’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B는 ‘Believe’입니다. 믿는 것입니다. C는 ‘consider’입니다. 위탁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D는 ‘do’입니다.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영혼들에게 나타난 영적 체험입니다.
세상에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지체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하나님의 DNA를 갖고 태어납니다. 그 DNA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 이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을 압니다”(2절).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자녀로 난 사람은 사랑이라는 본성을 갖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왜 사랑합니까. 자기가 낳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합니다. 하나님에게 이끌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8절).
두 번째는 순종입니다.
사랑에서 순종으로 넘어갑니다. 이것은 매우 논리적인 순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부담스런 것이 아닙니다”(3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감정적인 체험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순종을 낳습니다. 사랑하면 순종은 부담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사랑은 어떤 수고와 헌신도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 또한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요 14:21).
세 번째는 승리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4절).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힘이 강해져서 세상의 질서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주관적 믿음을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고,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심과 같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4절의 시제를 보면 과거시제이고 5절은 현재 시제입니다. 왜 시제를 구분했을까요. ‘세상을 이김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4절과 5절을 연결시키면 과거에 예수께서 이루신 승리가 현재 우리의 삶속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속된 승리, 세상을 이기는 승리
“내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미 이겼다”(요 16:33).
예수님이 승리를 선언하셨습니다. 십자가위에서 힘없이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 자체로는 세상에 패배한 것처럼 보였지만 죽음가운데 다시 부활하시는 승리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이겼습니다. 세상을 이긴 것은 우리의 승리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고지에 오른다고 해서 그것을 승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승리한 모습일 뿐입니다. 승리일수도 있고 승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예수님이 이루신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속된 승리입니다. 이 승리를 얼마나 체험하느냐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날마다 고백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의탁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믿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도록 내어드리는 믿음으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도요한은 승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두 가지를 먼저 말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계명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승리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할 때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과 순종 없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랑과 순종과 승리는 영적인 논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세상에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서 내 안에 있는 모든 세상적인 요소들을 내려놓는 것이 바로 믿음이고, 승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내려놓는 것이 승리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내 안에 있는 세상적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깨뜨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세상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습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영웅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6~38).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이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어떠한 유혹과 순교할 지라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조금도 희생하지 않으려 합니다. 믿음을 너무나 쉽게 포기함으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이 세상의 풍속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속에 휩쓸리고 유행에 따라 살고 시대의 관습에 노예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연예인이 “그리스도인인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려지는 것을 꺼려한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왜 그럴까요?”라고 질문했더니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알려지면 인기가 떨어질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매우 작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를 무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양심 앞에서 거리낌 없이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세상을 이긴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거듭난 새 생명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그 믿음이 점점 자라야 합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내 안의 그리스도가 점점 온전히 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로써 뿐만 아니라 주님으로써 내 안에 온전히 사실 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날마다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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