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영은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살아있는 영입니다.
참된 영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모든 시대의 교회들이 직면하는 중요한 과제는 거짓된 영을 분별하는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그 어떤 압력이나 핍박도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핍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교회는 더 거룩하고, 정결해졌습니다. 더 강해지고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부에 들어온 거짓된 영의 사람들에 의해 분열되고, 무너지고, 어지러웠습니다. 그만큼 거짓된 영의 영향력이 큽니다. 거짓된 영에 속한 사람들의 가르침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혼란스러웠습니다. 잘못된 영에 속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벗어나기 참 어렵습니다.
교회의 혼란과 위기는 이단이나 사이비 등 거짓된 영에 속한 사람에 의해 생깁니다. CS 루이스가 사탄의 입장에서 교회를 무너뜨릴 전략을 편지 형식으로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이 그것을 잘 설명해줍니다.
거짓된 영 분별하기
사도요한 시대의 교회들도 거짓된 영을 분별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당시 교회에도 거짓 예언자들이 들어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이라고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1절).
영을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분별이라는 단어는 연금술사가 금속에서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원하는 금속만 가려내듯이 진정한 하나님의 영을 분별하고, 가려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가짜가 참 많습니다. 가짜가 많다는 것은 진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가짜가 없으면 명품이 아니라는 세상적인 논리가 성립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거짓된 영이 많이 활동한다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끄는 힘이 있다고 모두 진짜가 아닙니다. 강력하게 이끄는 힘이 있는 가짜도 있습니다. “영이라고 다 믿지를 말라”는 말씀이 주어질 때는 오순절 이후 불과 57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그 시대에도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할 정도로 거짓된 영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면 2천년이 지난 오늘 이 시대는 얼마나 많은 거짓된 영들이 있겠습니까. 가짜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진짜를 경험하면 가짜를 분별할 수 있다
여러분, 교회라고 간판 붙였다고 다 믿지 마십시오. 목사라고 다 믿지 마십시오. 목사가 강대상에서 전하는 말씀은 어떤 내용이든지 아멘 해야 한다는 섬뜩한 내용을 설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짜일 가능성이 100%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지, 진리인지, 분별해서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인지를 점검하고 믿어야 합니다.
성령님이 내조하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영적인 분별력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곳곳에서 그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어 주신 것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므로 아무도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어 주신 것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가르침은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여러분을 가르치신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십시오”(요일 2:27).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에게 영적인 분별력을 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어떤 말씀을 듣던지, 어떤 기도를 하든지 거짓과 진짜를 분별하게 해줍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님이 주시는 분별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세상에 있는 모든 사이비와 이단 백과사전을 연구하고, 공부하면 분별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진짜를 경험해 보면 생깁니다. 모조품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진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짜의 종류를 다 안다고 해서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분별력이 흐려집니다. 진짜를 경험하면 가짜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성령 안에 거하면 가짜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거짓의 영이 성도들을 속이는 단계
성령의 은사 중에 영분별의 은사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이 어떤 영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은사가 나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능력을 성령의 은사로 주셨을까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별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영분별의 능력을 은사로 주셨습니다.
여러분, 거짓의 영은 처음부터 죄를 짓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가만히 있습니다. 진리를 전하는 것처럼 하면서 혼합합니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처음부터 선악과를 먹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고 했습니다. 언뜻 들으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에는 반감과 의심이 들어 있습니다. ‘참으로’라는 단어가 의식화의 출발입니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너 진짜 행복해?”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네가 다니는 회사 사장이 얼마나 잘 사는지 알아? 그런데도 너는 진짜 행복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동안 행복했던 것들이 사라집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꿉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는 먹되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데, “참으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면서 교묘하게 말을 바꾸었습니다. 90% 맞는 말에 10% 거짓을 섞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입니다.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이단(異端)이라는 말은 한자로 ‘다를 이’와 ‘끝 단’자를 씁니다. 맞는 것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에 끝이 다릅니다. 사이비들은 겉으로는 정통 교리를 말하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를 이용합니다. 한국교회에 이단이나 사이비로 인한 피해가 참 많습니다. 우리 교회도 피해가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 교리를 이용합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한국사회에 이단과 사이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시펜 루이스가 쓴 <영을 분별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을 보면 거짓의 영은 두 단계로 성도들을 속인다고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임재를 위조하고 모방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우리 마음에 기쁨, 평안, 따뜻함, 충만함이 임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비슷하게 느낄 수 있도록 위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육체적인 감각이나 분위기로 느끼려는 성도들은 쉽게 넘어갈 위험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반대로 성령 충만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성적인 판단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성령 충만을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부분을 많이 보았기 때문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지성, 감성, 의지가 분별력 있게 됩니다. 예리하게 판단하게 됩니다. 감성적으로도 풍부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체험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영적으로 충만하게 체험하는 중에도 생각과 지적인 능력 모두 날카로웠습니다. 밧모 섬에 있던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계시를 받는 순간에 이성적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것을 기록할 수 있었겠습니까. 감성적으로 몰입해서 지적인 판단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이 잘못된 체험입니다. 거짓의 영의 가르침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위격까지도 위조하는 단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 분만 강조하거나 관계를 깨뜨리거나 종속관계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혼란하게 함으로써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
오늘 본문은 거짓의 영인지 하나님의 영인지를 분별하는 방법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령을 알아보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세상에 이미 와 있습니다”(2~3절).
당시에는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왜 그들이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했겠습니까. 그런 능력과 기적과 표적을 보인 분이 어떻게 사람일 수 있냐는 논리 때문입니다. 거기에 영지주의 철학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적인 철학 에 사람들이 편승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될 수 있냐고 의심했습니다. 당시 헬라 사람들은 몸은 ‘소마’, 무덤은 ‘세마’라고 했습니다.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철학에서 나온 것입니다. 몸을 악하게 규정했기 때문에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는 어떻게 사람이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냐고 공격합니다. 주후 57년에는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사람일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예수님은 신성이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단과 사이비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당시로 돌아가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당연히 믿어야 합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탄은 예수님이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이 없고, 기록에 의존하게 되니까 기록이 잘못되었다거나 조작되었다면서 미혹했습니다. 이래서 역사기록이 중요합니다. 역사를 잘못 기록해 놓으면 후대는 잘못된 역사를 보고 믿게 됩니다. 그 기록을 뒤집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역사적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우리는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났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 예수의 이론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던 당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영이 거짓 영이었다면 오늘 이 시대는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영이 거짓 영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이 무너지거나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것이 무너지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무너집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무너뜨리면 성경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역사적으로 고백해왔던 모든 공교회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로부터 출발합니다.
거짓된 영과 참된 영은 열매로 알 수 있다
초대교회 이후 수백 년 간 기도와 토의를 통해서 예수님이 참 하나님 되심과 참 사람이심을 받아들이도록 공표했지만 사탄은 끊임없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예수님의 사람 되심 둘 중 하나를 무너뜨림으로 교회를 공격해 왔습니다. 만약 이것이 무너지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결국 교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며 세상은 또한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5절).
입술로는 정통교리 같지만 속으로는 세상에 속한 것이 가득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가득합니다. 세상이 그 안에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 받으심이 아니라 세상이 그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짓예언자들의 분별하는 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을 삼가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다가오지만 속은 사나운 늑대다. 그 열매를 보면 너희가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겠느냐?”(마 7:15~18).
거짓된 영과 참된 영은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적적인 능력 그 자체는 참된 영이 될 수 없습니다. 기적적인 영적체험이나 신비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참된 영의 증거가 아닙니다. 초월적 현상을 절대 따라가지 마십시오. 초월적인 현상 그 자체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뿐입니다. 표적을 경험한 주인공의 태도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삼층천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천국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천국을 봤다는 것을 언제 이야기 합니까. 10년이 지난 후에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천국을 경험했다고 설명함으로써 잃어버리는 영적유익이 많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실패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본 것 그대로 설명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열광하니까 과장해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진짜 천국을 보고도 천국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많은 이단과 사이비들도 한때 영적인 체험을 하고 은사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체험과 은사는 독이 되었습니다.
신비한 체험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한 체험을 어떤 태도로 받아 들이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득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매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세상적인 욕심과 탐욕, 갈등과 분열이 생기고, 결국 자기를 높이는 열매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매가 아닙니다.
참된 성령의 역사는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시인하는 영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낮아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이 되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 스스로 낮아져 낮은 곳으로 오신 분입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살아있는 영
참된 성령의 역사는 성육신적 영성으로 나타납니다. 성육신적 영성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이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육신적인 영성은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분법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 몸에 임하십니다. 우리의 몸이 성령의 거처입니다. 정신적인 것만으로는 절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생활은 우리 육체 안에 숨겨진 죄의 습관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영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몸도 부활합니다. 우리의 몸을 훈련시키는 데까지 나가지 않으면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몸을 움직여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단과 사이비들은 틀림없이 일상을 붕괴시킵니다.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게 합니다. 가정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공교회와 단절시킵니다. 참된 영의 사람은 사람들을 가둬놓지 않습니다. 주변사람들과 단절시키고, 세상질서에 반하지 않습니다. 참된 영의 역사는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줍니다.
여러분, 참된 영은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살아있는 영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죽기까지 낮아지신 성육신의 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영에 순종할 때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낮은 곳, 더 낮은 곳에서 참된 성육신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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