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니라 생각하면 별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카이스트 대학교 학생 네 명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충격은 가족들과 대학을 넘어 국민들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았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학업 스트레스에 비탄까지 더해져 어찌할 바 모르는 수재들 앞에서 개그맨
김제동은 말했습니다.
“별것 아니라 생각하면 별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없으면 죽을 것 같고, 그것만 있으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득히 있어 잡을 수가 없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는 성적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하는 ‘별것’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그것이 정말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까?
어쩌면 ‘별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별것'이 아닙니다.
김제동의 말도 제 말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이 말씀은, 사람들이 얻으려고 애쓰는 모든 것,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그것이 사실은 ‘별것’
아니라는 뜻입니다.
들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도, 하늘을 폴폴 나는 새 한 마리도 돌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하늘 아버지께서는 알아서 훨씬 더 잘 돌보십니다.
그러니 ‘별것’ 아닌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진짜 별것’을 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들꽃이나 새는 진짜 별것을 볼 필요가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반드시 진짜 별것을 찾고 보아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얻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지금 우리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 앞에 있습니다.
자, 지난날들을 되돌아 봅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십사,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이루어지는 것보다 안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의 약속이 틀린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나 앞서 가는 신앙의 선배들이 조언을 합니다.
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기도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라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정성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헌금을 바치며 기도했습니다.
금식기도, 방언기도 등등 특별 기도 방법이 제시됩니다.
그래도 잘 안 이루어집니다.
그러다가 중요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아, 그랬구나! 욕심을 따라 구했구나.”
그래서 내 소원을 하나님의 것처럼 보이도록 포장 합니다.
“이 사업이 잘돼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수익을 남기면 반드시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가 중요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아, 그랬구나! 감사함으로 아뢰지 않았구나.”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애를 쓰며 기도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중에 기도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응답받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하나님 은혜의 깊고도 자유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매우 드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업가인 고등학교 동창생이 그만 부도를 내고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면회를 갔습니다.
그 친구는 감옥에서도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전도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숨 가쁘게 살았다고 하나님께서 쉬라 하시는 게야.
그런데 기도, 전도 열심히 하면 부도도 막아주시고 빨리 감옥에서 빼내주시리라는 생각은 버리게.”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열심히, 때로는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주문처럼, 성경 구절을 부적처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가 빠진 기도는 효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금식기도보다는 사십 일 금식기도가 효력이 많다고 믿습니다.
주의 종의 기도가 더 영험하다거나, 응답을 잘 받는 특별한 장소(기도원 등)가 있다거나,
방언기도가 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새벽기도를 빼먹었더니 나쁜 일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류의 가르침과 사고들이 얼마나 교회 내에 만연해 있는지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바로 이런 류의 생각이 바로 기도를 주문처럼 사용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우리가 찾고 보아야 하는 ‘진짜 별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세요?”
“한 번도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길을 갈 수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성경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겠구나 생각하며
그대로 살려고 했지요.”
“혹시 방언으로 기도하세요?”
“극심한 고통에 있을 때도 ‘나를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방언이나 예언, 병 고치는 능력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런 기도도 할 만하잖아요?”
“구하지 않아도 이미 다 해 주신다고 나와 있더라고요, 구해도 잘못 구하면 안 된다면서.”
“그래도 살다 보면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잖습니까?”
“아니지요, 그것은 기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시킨 거지요.”
“그러면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실천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목사님은 기도를 하기는 하십니까?”
“아, 회개기도와 감사기도는 날마다 해요. 하루도 빼먹지 않아요. 회개와 감사만이 내 몫이에요.”
‘배 부르리라’의 저자 이태형 씨가 ‘시골교회’ 임락경 목사와 나눈 대화입니다.
기도의 본질을 드러낸 귀한 대화이기에 길게 인용하였습니다.
임 목사님은 강원도 화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버려진 장애인들과 함께 현재까지 살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최고의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무공해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예수님께서 구하라고 하시는 ‘진짜 별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진짜 별것’을 찾기 보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말씀만을 따로 놓고 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 말씀만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떼쟁이'가 되어 버립니다.
자녀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쉬지 않고 졸라대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할 일은 하지 않고 부모님 돈만 타낼 생각만 요리조리 하고 있다면,
그 부모는 설사 천하를 얻었어도 깊은 절망감에 빠져버립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인들은 떼쟁이가 되어 사회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계별로 여러 말씀들을 길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선포하신 산상수훈 전체의 내용이 내 삶에서 실현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은,
억압당하는 사람들과 저주 아래 있는 자포자기한 모든 사람들을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내가 처해있는 현실의 개선이나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용감히 출발하는 용기와 아무리 어려워도 헤치고 나갈 지혜와
한결같은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분노하는 것은 곧 살인이며, 음욕을 목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곧 간음이라는 가르침을
듣고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바라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복수는 하나님의 소관, 모든 억울함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히려 원수마저 사랑하고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 등 종교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체험케
해달라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깊은 뜻을 점점 더 깊이 깨닫고 어떤 난관과 비판이 있어도
그 뜻에 따라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신나게, 어떤 경우에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남을 살리는 일에, 하나님 나라 건설에 즐거이
헌신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남을 정죄하느라 생명을 낭비하지 않기를, 언제나 자신의 죄를 먼저 직시하기를, 나아가서
하나님의 신선한 영감을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는 언제나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저주와 근심과 안일과 이기심의 어두운 방에서 나를 끄집어내어 하나님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신음하는 내 영혼은 하나님의 기운을 얻고, 희미하던 하나님의 형상은 내게서 더욱 또렷해집니다.
그럴수록 삶은 형통과 평강을 구가합니다.
엔서니 데스테파노의 책 ‘즉답기도’에서,
하나님이 항상 ‘예스’라고 응답하시는 기도 목록이 나옵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1. 하나님,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십시오.
2. 하나님, 저를 도구로 써주십시오.
3. 하나님, 제 마음을 넓혀주십시오.
4. 하나님, 이 고난을 통과하게 해 주십시오,
5.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6. 하나님, 제게 평안을 주십시오.
7. 하나님, 제게 용기를 주십시오,
8. 하나님, 제게 지혜를 주십시오.
9. 하나님, 이 위기가 전화위복이 되게 해 주십시오.
10. 하나님, 저의 영적 운명을 발견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들이 하는 기도와의 다른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즉답기도’라는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샀다가 크게 실망하였다는 서평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왜 실망했을까요?
그가 구하는 것은 그저 건강과 돈과 만사형통인데,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가 정말 중요한 기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에는 즉각 응답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 1:2)
그저 범사에 잘 되고 몸이 건강해지는 만사형통과 무병장수만을 기도한다면,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은 어쩌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이고 오히려 해가 되는
뱀일지도 모릅니다.
생명의 떡과 영혼의 생선을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거절하십니다.
건강한 영혼이 모든 삶의 기초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그 말씀이 삶이 되게 하십시오.
어떤 처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예’가 됩니다.
내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답고 풍성한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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