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바로미터

새벽지기1 2017. 4. 12. 08:31


새해가 밝았다.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행복이 누구나의 현실이면 좋겠다.

하여, 더 묻게 된다. 행복은 왜 대부분 현실 너머에서 아른거리는 걸까?

왜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한 걸까?

왜 언제는 행복하고 언제는 불행한 걸까?

누구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누구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서일까?

언제는 일이 잘 풀리고 언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일까?

삶의 조건이나 환경이 언제는 마음에 들고 언제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행복과 불행은 첫째로 어린 시절의 성장환경과 부모와의 관계경험에 기인하며,

둘째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객관적인 환경과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지금 불행한 것은 가난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이고,

외모가 예쁘지 않아서이고, 능력이 부족해서이고,

몸에 장애가 있어서이고, 사랑으로 돌봄을 받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저 사람이 행복한 것은 훌륭한 부모의 돌봄을 받아서이고,

외모가 아름다워서이고, 능력이 탁월해서이고,

행복의 모든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만일 그렇다면 고아로 자란 사람,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사람, 외모가 못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은 예외 없이 불행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심한 장애를 가졌음에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이 있고,

건강한 몸을 가졌음에도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불행의 온갖 조건을 다 가졌음에도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나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이 있고,

객관적인 행복의 조건을 다 갖췄음에도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다.

 

옳다. 사람이란 참 오묘한 존재다.

행복과 불행이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성공의 크고 작음에 비례하지 않을 만큼,

과거의 경험이나 객관적인 환경에 지배되지 않을 만큼 오묘한 존재다.

똑같은 아픔을 경험했어도 사람마다 대응하는 방식이 다를 만큼 자유로운 인격적 존재다.

물론 사람은 순간의 바다를 떠도는 고독한 섬이 아니다.

과거를 통과해 오늘을 살고, 객관적인 환경에 의지해 생명을 살아가는 시공간적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은

행복과 불행이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성공의 크고 작음에 비례하지 않을 만큼,

과거의 경험이나 객관적인 환경에 지배되지 않을 만큼 오묘한 존재다.

과거나 객관적인 환경과 무관할 수는 없으나 자유할 수는 있는 참으로 놀라운 존재다.

아니,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이 자유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 존재,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 존재라는데 인간의 영광스러움이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

과거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 능력,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 능력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자유의 능력을 쓰레기장에 묻은 채 산다.

과거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 능력,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 능력에 행복의 비밀이 숨어 있는데도

습관처럼 과거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며 산다.

자기 스스로를 비루하고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며 과거의 노예로 살고 환경의 노예로 산다.

사실 모든 불행은 여기서 비롯된다.

과거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는 무의식적 태도와 관점에서 모든 불행이 비롯된다.

현재의 나를 과거의 원인에서 찾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적 인간 이해,

현재의 행복과 불행이 외부 환경에 기인한다는 소극적 인간 이해가 모든 불행의 씨앗이다.

결국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바로미터는 자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인간의 영광스러움에 눈뜨고

그 영광스러움에 감사하며 능동적으로 그 영광스러움을 사용하며 사느냐,

그 영광스러움에 눈뜨지 못한 채 과거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비루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거짓에 사로잡혀 사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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