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영봉목사

"얼숨으로 산다" (요한복음 20:22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새벽지기1 2017. 1. 19. 07:26

 

1.

 

오늘은 간단한 퀴즈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상품을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재미 삼아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열거하는 열세 가지 치료 효과를 들으시고, 어떤 치료법 혹은 어떤 약에 관한 것인지 추측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면, 혹은 무엇을 고치면, 혹은 무엇을 먹으면 다음과 같은 다양한 치료 효과를 얻겠습니까?

1. 심폐기능이 강화된다. 2. 소화흡수기능이 촉진된다. 3. 배설기능이 활발해진다. 4. 혈액순환이 활발해진다. 5. 손발의 냉증이 해소된다. 6. 뇌빈혈이 해소된다. 7. 태아에게 혈액 공급이 원활해진다. 8. 자율신경이 개선되어 불안, 초조가 제거된다. 9. 백혈구의 증가로 저항력이 높아진다. 10. 기억력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11. 체내 독소가 잘 배출되어 피부 미용에 좋다. 12. 집중력이 좋아지고 정신력이 강해진다. 13. 혈압을 정상으로 조절해 준다.

 

어떻습니까? 거의 만병통치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이 모든 치료 효과를 얻게 하는 치료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산삼이나 로열 젤리같이 천연의 희귀 약재를 생각하십니까? 틀렸습니다. 걷기나 달리기 같은 운동을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하긴, 이것을 운동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 무슨 운동을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숨쉬기 운동만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정답은 ‘바른 호흡’입니다.

"호흡, 숨 쉬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기에 그런 치료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숨 쉬는 거야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해 온 것인데, 거기에 무슨 비법이 있단 말인가?"라고 질문하고 싶은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으로 쉬는 숨 즉 호흡이야말로 육신적인 생명의 기초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해 온 것이지만, 그래서 또한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명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므로, 이것이 잘 못 되었을 때, 가장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냅니다. 호흡이 생명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므로 잘못된 것을 고칠 때 위와 같은 많은 치료 효과를 얻게 됩니다.

굳이 수련원에 가서 단전호흡이니 복식호흡이니 하는 것을 배우라는 뜻은 아닙니다. 평소에 숨을 깊고 고르게 하는 습관만 익혀도 큰 차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조용히 물러 앉아 심호흡을 10분 이상 하고 나도, 위에서 말한 효과의 절반 정도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니, 상쾌한 바람이 부는 밖에 나가서 크게 숨을 몇 번만 쉬어도 좋습니다. 효과가 대단하지 않다고 느끼기에 무시해서 그렇지, 하루를 살아가면서 자주 자신의 숨쉬기를 점검하고, 종종 조용히 서서 혹은 앉아서 깊은 숨을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 그리고 그것을 일주일, 한 달 혹은 일 년 지속하게 되면, 어떤 약으로도 얻을 수 없는 대단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생명을 키워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영적 호흡입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을 보고 많이들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얼숨(spiritual breathing)으로 산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얼쑤’라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얼숨’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사전에도 없는 말입니다. 이 말은 20세기 한국인 가운데 우리말을 가장 깊이 이해했다고 평가되고 있는 다석 유영모 선생이 만든 말입니다. ‘목숨’이라 할 때의 ‘숨’과 영혼을 가리키는 우리 말 ‘얼’을 합친 말입니다. 영혼으로 쉬는 숨 즉 ‘얼숨’은 바로 기도를 가리킵니다. 그 제자인 함석헌 선생도 이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기도는 영적 호흡이다"라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얼숨이란 바로 영적 호흡을 가리킵니다. 목을 통해 공기를 들이마셔 체내에 산소를 공급하고 날숨으로 이산화탄소를 몸 밖으로 배출해 내는 것처럼, 영혼을 통해 성령을 들이마심으로 영적 산소를 속사람에게 공급하고 날숨으로 영혼 안에 있는 더러운 독소를 배출해 내는 것이 얼숨 즉 기도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호흡이 가장 기본이 되듯, 영적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도 영적 호흡 즉 기도가 가장 기본이 됩니다.

목숨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인 반면, 얼숨은 성령을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인데 어떻게 들이마십니까? 그분과 인격적인 사귐을 나누는 것이 바로 성령을 마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저는 "누가 성령을 두려워하는가?"라는 설교를 통해 우리 내면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에워싸고 계시는 성령의 임재에 우리 자신을 활짝 열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관계에 이르려면, 필히 성령의 만지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 중에 영적 실체로서 활동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살아가며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려면 성령의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성령이 우리 존재 안에 항상 가득 채워져 있고, 우리가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살아가려면, 얼숨을 통해 성령을 호흡해야 합니다. 성령을 호흡한다는 말은 성령과의 사귄다는 뜻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읽은 요한복음 20장 22절 말씀은 기도를 얼숨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일임을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2003년에 만들어진 영화 <The Gospel of John>에 보면, 예수님이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시자, 두려움에 질려 어두운 표정으로 모여 있던 제자들이 몸 전체에 뭔가 새로운 기운이 들어차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면서 밝은 표정으로 변화합니다. 아마, 그러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쉰 숨은 그분의 목숨이 아니라 얼숨, 즉 영혼의 숨, 즉 성령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내쉰 숨을 코로 들이마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의 마음에는 새로운 활력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3.

 

호흡에 대해 사람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여 늘 할딱거리는 짧은 숨과 그로 인해 자주 한숨을 몰아쉬면서 간신히 연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숨인 기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데, 자신이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 기도는 그냥 내 마음에 끌리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마음에 끌리는 대로 기도하다 보면, 갑자기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하는 것 정도에 그칩니다. 거기서 조금 더 나가 보아야, 하루 세끼 식사 기도를 하는 것 정도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기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행히 거기서 약간 더 나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기도 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항상 기도하기 위해 힘쓰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시는 분들도 자신의 기도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구에서 나오는 대로 자신의 요구 사항을 나열하는 것으로 기도의 시간을 다 채웁니다. 이들은 대부분 "기도는 구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따라 기도를 합니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좋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의 응답이란 자신이 구하는 것을 손에 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 저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저희 집 벽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말씀 즉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희 아이 중 하나가 그 액자를 골똘히 들여다보더니 제게 묻습니다. "아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무슨 뜻이야?" 저는, "네 생각에는 무슨 뜻인 것 같니?"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기도하다가 중간에 멈추지 말라는 뜻이야?"

그 아이는 나름대로 추리를 한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 그동안 자신이 배운 대로라면, 그것이 하루 종일 기도만 하라는 뜻은 아님이 분명해 보였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루 종일 눈 감고 기도만 하고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의 생각에도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명령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입니다. 기도를 한 번 시작했으면 마칠 때까지 중단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참 똑똑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 추측은 빗나갔습니다. 그 아이가 기도에 대해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도가 눈을 감고 하나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실현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그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만일 그렇게 한다면 정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얼마 동안 기간을 정해 놓고 모든 일을 멈추고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늘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빗나간 믿음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그 아이의 추측대로 "한 번 기도를 시작하면 마칠 때까지 딴전 팔지 말라"는 뜻으로 밖에는 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은 기도의 한 요소일 뿐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사귀는 것입니다. 얼숨을 통해 하나님의 영을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쉬지 않고 목숨을 쉬듯이, 우리의 영혼이 살아 있으려면 쉬지 말고 얼숨을 쉬어야 합니다. 자신의 요구를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는, 호흡에 비유하자면, 가슴으로 쉬는 헐떡이는 숨이요, 그 숨을 보충하기 위해 자주 몰아쉬는 한숨과 같습니다. 기도 즉 얼숨에도 아랫배로 쉬는 깊은 숨이 있고, 가슴으로 쉬는 얕은 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요구를 아뢰고 그것을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부르짖는 기도는 얕은 얼숨입니다. 그런 숨으로는 성령의 산소를 우리의 영적 사람에게 충분히 공급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종종 한숨을 몰아쉬어야 합니다. 때때로 밤을 새워서라도 기도하고 싶은 갈증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평소에 우리의 얼숨이 할딱거리는 얕은 숨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성령을 들이마시는 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생깁니다.

기도는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을 만나 사귀는 일입니다. 그렇게 사귐을 가지는 것이 성령을 들이마시는 일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깊은 얼숨에 해당합니다. 기도의 복식 호흡인 셈입니다. 기도의 심호흡인 셈입니다. 이렇게 깊은 얼숨을 통해 성령을 마시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성령의 다스림 아래에 있게 됩니다. 마치 잘 단련된 호흡법으로 인해 맑은 정신과 활력 있는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처럼, 깊은 얼숨을 쉬는 사람 즉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사귐을 나누는 사람은 늘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4.

 

기도에 대한 우화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여러 가지 기도 방법에 대해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What can I do to attain God?) 그러자 스승이 제자에게 묻습니다. "태양이 떠오르게 하기 위해 자네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What can you do to make the sun rise?) 그러자 제자가 스승에게 화를 냅니다. "그렇다면 스승께서는 왜 이 모든 기도 방법을 저희에게 가르치셨습니까?"(Then why are you giving us all these methods of prayer?) 그러자 스승이 대답합니다. "태양이 비추고 있을 때 자네가 깨어 있게 하기 위함이지"(To make sure you’re awake when the sun rises).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낼 목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물론, 그것도 기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기도의 핵심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통해 성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귐을 나누며 그 사귐 안에서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마치 태양이 빛나고 있는 대낮에 그 햇빛에 자신을 활짝 열고 깨어서 활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나를 깨워서 그 태양빛을 보고 그 빛 아래에서 활동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언제나 우리를 비추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에 충분히 깨어있지 못한 데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현존에 대해 깨어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귐을 나누는 것이 영적 호흡이요, 얼숨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없고 자신의 필요를 구하기만 하는 사람은, 비유하자면, 밝은 대낮에 집안에 틀어박혀 잠을 자다가 캄캄한 밤이 되면 깨어 일어나서 "제게 빛을 좀 비춰 주십시오."라고 구하는 사람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끔 달빛과 별빛을 보면서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감사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늘 "왜 이렇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가? 왜 이렇게 어둡기만 한가?"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그렇게 불평하다가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 되면 다시 잠에 곯아떨어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활개를 치며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땅거미가 깃들 때 즈음하여 다시 일어나 어둠 속에서 빛을 찾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위에 떠올라 비추는 태양빛과 같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하나님]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눅 1:78-79).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태양으로서 우리 위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깨워 그 태양빛 아래로 나아가 그 빛을 즐기며 빛 가운데서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기도가 이런 것이라면, 우리는 늘, 항상,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면 그 모든 것이 기도가 됩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일들은, 심지어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일까지, 모두 기도가 된다. 단,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단순히 행하고 자신의 뜻대로 더하거나 감하지 않는다면!(All that a Christian does, even eating and sleeping is prayer, when it is done in simplicity, according to the order of God, without either adding to or diminishing from it by his own choice.) 옳습니다. 기도가 있고, 기도가 아닌 것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태양빛 아래에서 깨어 행하는 일은 모두 기도입니다.

 

5.

 

믿는 사람들은 얼숨으로 살아갑니다. 목숨으로 육신의 생명이 살아가듯, 얼숨으로 속사람 즉 영적 생명이 살아갑니다.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영적 사람으로 거듭 나서 영적 사람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의 만지심을 받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며 성령의 드러나심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얼숨을 쉬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을 끊임없이 마셔야 합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끊임없이 사귀어야 합니다.

목숨과 얼숨이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목숨은 저절로 쉬어지지만 얼 숨은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호흡을 참아서 목숨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 제 힘으로 호흡을 정지하여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장사는 인류 역사 이래 한 사람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헤라클레스의 힘으로도 안 되고, 삼손의 힘으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시간이 되어 숨이 저절로 멈춰질 때까지 목숨은 제 스스로 쉬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고르고 깊은 숨을 쉬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얼숨은 저절로 쉬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얼숨에 익숙해지면, 목숨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얼숨을 쉬지 않고는 갈급하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얼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셨으니, 이제 그 얼숨을 들이마시는 일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한번 마시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마셔야 합니다. 성령을 호흡하는 데 참된 생명이 있음을 믿고 그렇게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과 사귄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도 자꾸만 시도하여 터득해 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저의 책 <사귐의 기도>를 읽었다는 독자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인데, 제 책을 읽고 동감되는 바가 많아서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사귐의 기도’를 시도해 보았다고 합니다. 며칠 해 보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 도움을 달라고 제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사귐을 나누려고 잠시 앉아 있으면 3분도 안되어 온갖 잡생각에 시달려 포기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며칠 하다가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지금까지 몸에 밴 기도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도 방식에 익숙해지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걸리므로 좀 더 길게 잡으라고 권고해 주었습니다. 3분 정도 시도해 보다가 되지 않아서 포기했다는 말에서 그 학생의 실패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사귀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매일 30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흙탕물이 들어있는 병을 한껏 흔들었다가 가만히 놓아 보십시오. 물속에서 소용돌이치던 불순물들이 가라앉는 데만도 적어도 1분 가까이 걸립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 안에 가득히 떠돌던 잡념들이 가라앉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넉넉한 시간을 투자하여 얼숨 연습을 해야 합니다. 복식 호흡을 연습하듯, 하나님 앞에 머물러 앉아 그분과 영적으로 교감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6.

 

앞에서 우리는 호흡법 하나만 고쳐도 적어도 열세 가지의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호흡이 육신의 건강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잡힐 때, 그 파급 효과는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반면, 기초에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의 악한 파급 효과 역시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얼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통해 사업의 성공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사업에 성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응답은 사업 하나에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 사귐을 나누고, 성령을 깊이 그리고 충분히 호흡하여 성령의 충만함에 이르면, 그 파급 효과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호흡을 바로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치료 효과 열세 가지 보다 더 많은, 더 유익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면 이렇습니다.

1. 마음에 평안을 얻습니다. 2. 숨겨진 상처와 아픔까지 치료 받습니다. 3. 삶에 질서가 잡힙니다. 4. 깨어졌던 관계들이 회복됩니다. 5. 삶의 우선순위가 제 자리를 찾습니다. 6. 육신적으로 건강해집니다. 7. 정신적으로 건강해집니다. 8. 불필요한 일에 끌려 허둥대지 않습니다. 9. 직장에서 예배드리듯 일하게 됩니다. 10. 사람을 대할 때 주님처럼 대하게 됩니다. 11. 교회에서 섬기는 일들에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12.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13. 하나님의 심정을 품고 이웃을 돌보게 됩니다. 14.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것에 헌신하게 됩니다. 15.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16. 자신의 소유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고 거룩한 일을 위해 드립니다. 17.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 좋아, 얼숨을 모르고 영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나눕니다.

어떻습니까? 믿기 어려우십니까? 진실입니다. 아주 부족하지만, 감히 자랑할 정도는 전혀 아니지만, 저는 저의 경험으로 증언할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말해 줄 수 있는 증인들이 우리 중에 적지 않습니다. 얼숨으로 사는 것은 이와 같이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켜 주는 명약 중에도 명약입니다.

얼숨으로 삽시다. 기도로 삽시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다. 참된 생명의 근원이며, 진리 그 자체이시며, 진실한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 그분과 늘 함께 살아가십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것이 성령을 호흡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가 얼숨으로 살아 영적 존재로 온전히 회복되어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 생령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된다면, 그리하여 인생이 아니라 영생이 된다면, 그리고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우리의 인생이 사용된다면,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이 같은 은총과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존재 위에 떠올라
태양처럼 빛나시는 주님,
저희를 깨워 주셔서
주님의 빛 가운데 거하게 하소서.
저희의 기도가
영혼의 호흡이 되게 하셔서
기도로써
저희가 성령 충만에 이르게 하소서.
성령에 사로잡혀
참되고 거룩하며 아름다운 생을 살게 하소서.
그렇게 살아 영생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