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살자? 당연한 얘기에 왜 물음표를 던지느냐고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사실 물음표를 던져야만 하기 때문에 던지는 것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고유하고 위대하며 값진 것은 삶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산다는 건 위대한 기회이자 축복이다. 비록 세상이 온전치 못하고 삶이 뒤틀려 있다 해도, 그래서 삶이 비루하기 그지없고 고통과 시련으로 뒤범벅이라 해도, 그래도 이 땅의 삶은 위대한 은총이자 축복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모든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단지 그 성실이 어떤 성실이냐가 문제다.
여기서 내가 말하려고 하는 성실은 ‘삶에의 성실’이다. 그리고 ‘삶에의 성실’은 흔히 생각하는 ‘노동에의 성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노동에의 성실은 ‘근면 성실’로 대표되는 노예적 노동윤리 - 즉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과 잇닿아 있고, 근대 산업을 일으킨 자본주의적 노동윤리와도 잇닿아 있으며, 자본주의적 노동윤리의 뿌리가 된 청교도적 덕목과도 잇닿아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소유 욕망과 성공 욕망을 구현하는 도구적 덕목으로도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사실이다. 사람은 그동안 ‘노동에의 성실’을 체제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확대재생산하는데 이용해왔으며, 욕망 성취의 방편으로 장려해왔다.
그렇다고 ‘노동에의 성실’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거나 비판할 것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 ‘노동에의 성실’은 단지 중세나 근대의 덕목이 아니라 영원히 권장해야 마땅한 아름다운 덕목임에 틀림없다. 노동 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보아도 노동에의 성실함은 앞으로도 인류사회에 필요한 덕목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노동에의 성실’을 노래하고 싶지 않다. ‘노동에의 성실’이 아니라 ‘삶에의 성실’을 노래하고 싶다. 왜냐? 지나온 역사에서처럼 사람은 앞으로도 노동에의 성실함이 사악한 인간에 의해 이용될 것이 뻔하고, 또 많은 이들이 ‘노동에의 성실’이라는 덕목에 충실하려다가 정작 더 소중한 삶을 소외시키고 놓치는 우를 범할 것이니까 말이다.
정말이다. ‘노동에의 성실’과 ‘일중독’은 백짓장 한 장 차이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실함의 극치이지만, 그 성실함이 뿌리칠 수 없는 인간의 욕망과 만나는 순간 일중독이 되고, 결국은 자기를 착취하고 삶을 갉아먹게 된다는 걸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오늘 우리네 삶이 피로와 신경증으로 가득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노동에의 성실함이 경쟁적 욕망과 맞물리면서 과잉되었기 때문에 우리네 삶이 피로와 신경증으로 가득한 것이다.
하여, 나는 감히 ‘노동에의 성실함’을 지양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 모두가 ‘노동에의 성실함’에서 ‘삶에의 성실함’으로 거대한 모드 전환을 할 것을 희망한다. 일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많이 놀고 즐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윤 지향적인 노동을 넘어서 삶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다. 온통 노동으로 채워진 삶이 아니라 일과 휴식, 일과 놀이, 일과 예술이 교차하고 공존하는 삶을 살자는 이야기다. 생산과 소비로만 채워진 삶이 아니라 음미와 향유와 감사가 어우러진 삶을 살자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엄히 명하신 것도 노동에의 성실함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노동에의 성실함을 넘어서야만 삶이 살아나고 꽃핀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로 그렇다. 지나친 노동은 삶을 공격하고 해치며, 삶을 공격하고 해치는 노동은 창조적인 노동이 아니라 소외된 노동에 불과하다. 노동에 성실한 자들을 보라. 대부분이 노동하는 시간 외에는 가벼운 오락과 즐거움을 소비하는 것으로, 아니면 먹고 마시는 것으로, 아니면 잠을 자는 것으로 소외된 노동의 피로와 신경증을 씻어내기를 반복하고 있다. ‘노동에의 성실함’이라는 덕목으로 서로를 속이고 속아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고유하고 위대하며 값진 삶을 소외된 노동과 소외된 노동의 피로를 씻어내는데 탕진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노동에의 성실함’이라는 덕목으로 서로를 유혹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노동에의 성실함’이라는 깃발을 내려놓고 ‘삶에의 성실함’이라는 새로운 깃발을 들었으면 좋겠다. 노동은 삶의 양기를 북돋아주고, 삶은 노동을 더욱 창조적으로 열어주는 진정한 살림살이를 하기 위해서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삶은 세상에서 가장 고유하고 위대하며 값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사는 것보다 더한 은총과 축복은 없다. 때문에 사람은 이 삶에 성실해야 한다. 세상을 보고, 세상과 대화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것으로서의 삶을 사는 일에 성실해야 한다.
삶을 낭비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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