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손양원목사

군대 마귀 정신에서 회복하라 -악마의 세력과 복음의 능력-(막5:1~20)

새벽지기1 2016. 11. 2. 06:40


막5: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 인의 지방에 이르러

막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막5: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막5: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막5: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막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막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막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막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막5:10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막5: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막5:12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막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막5: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막5: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막5: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막5:17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막5: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막5:19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막5: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본문 이야기) 오늘날 우리의 죄악 성질 즉 악마의 세력은 자기의 힘으로나 다른 어느 인간의 지혜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로 꼭 이 본문에 있는 마귀 들린 사람 같다.

 

   1. 군대 마귀 들린 자의 상태

   이것은 꼭 악마의 세력을 표시하는 형편이다.

   

(1)이 병자의 거처하는 땅은 이방 '거라사'였다.

   이 죄악은 하나님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로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는 이는 하나님을 피해서 행한다.

   하나님이 계신 줄 믿는 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이는 그렇게 못한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불한당 만난 이야기)

   

(2)이 귀신 병자의 거처하는 곳은 죽음의 굴 누추한 땅(死陋地)이었다.

   인간의 정상적인 생활을 떠나서 악마와 함께 하는 죽음의 골짜기 멸망의 거리였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간의 거룩함을 볼 수 없는 부패한 생활을 의미한다.

  

 (3) 이 병자는 옷을 벗었으되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일체 행동을 잘 하는 것인 줄 안다.

   인간의 근본 정신을 잃고 깨닫지 못하는 상태와 같다.

   빌3:19에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한대로 도리어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는 사람의 상태이다.

   사람을 구타 잘 한다는 힘센 자랑, 남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교만의 자랑, 권세 지위 자랑, 남도 범죄하게 하고

   자기도 멸망하는 자리에 자진 들어가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참는 사람을 보고는 병신같이 보고, 자복 회개하는 이를 보고는 패배자로 보는 사람이 이런 종류의 사람이다.

   

(4)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한다

   이 말씀의 원어의 뜻은 고문(拷問)을 의미한다. 피의 값을 증거 하는 말이다. 마귀도 인간의 몸을 상하도록 만든다.

   술과 담배로 몸을 상하고, 음탕한 생활로 몸을 상하고, 분을 내고 싸움을 걸어 남을 치고 내가 맞는 짓을 한다.

   이 역시 자기 몸을 상하게 한다. 결국은 모두가 제 몸을 상하게 하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물질로도 손해요 정신적으로는 멸망이나 이를 깨닫지 못한다.

   

(5)그는 말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했다

   사실로 악마와 죄악은 하나님과 절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빛과 어둠이 관계가 없는 것이요 선과 악이 상관이 없는 법이다.

   거리가 너무 멀고 사귈 수도 없다. 그것은 마귀는 하나님과 사람을 분리시키고 절교하게 하는 일을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였다.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 선신(善神)도 악신(惡神)도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어느 신을 환영할 것이냐. 이 환영 여하에 따라서 좌우된다.

   야고보서 4:7, 8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정결케 하라' 하였는데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필연적으로

   마귀는 피하게 된다. 인심에는 선신 악신의 거주소가 되고 이 육체는 선신 악신의 기계(機械)가 되는 것이니

   이를 삼가야 한다. 네 마음속에는 어떤 신이 있으며 네 육체는 누구의 기계노릇을 하는가 살펴 보라

 

   2. 악마의 죄악 성질을 이길 자 누구냐!

   

(1) 5:4 끝에 보면'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했다

 우주간에는 착한 신과 악한 신이 있는데, 인간은 악마의 죄악 된 성질을 이기기 어렵고, 악마는 하나님을 이기기 어렵다. 그런고로 성신의 능력 받지 않고는 절대로 죄악을 이기지 못한다. 지상의 인간은 공중의 마귀 권세 아래에 굴복 당하고 있고, 공중의 마귀는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대권 아래에 지배를 당하고 있으니, 너도 이런 성신을 받아서 이 육체의 죄악성을 제거하라, 그렇지 않으면 제어 할 힘이 없는 법이다.

 

 (2) 같은 4절에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었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했다. 이는 고랑도 깨어지고 사슬도 끊어지는 죄악의 세력을 말한다. 이런 죄악의 세력을 이길 자 누구냐, 자기도 상하며 남도 상하게 하는 이 악독한 성질을 보라. 자기의 결심도 깨어지고 의지도 수양도 다 끊어지는 세력이다. 부모의 교훈도 깨어지고 선생님의 훈계도 끊어진다. 친구의 권면도 국가의 국법도 세상의 도덕도 어떻게 할 수 없이 파괴된다. 심지어 엄격한 율법이나 계명까지도 이란 죄악에는 무력해 진다. 실로 마음속에 일어나는 죄악의 세력은 고랑도 깨어지고 쇠사슬도 끊어지는 법이다. 세상에는 산 속에 있는 도적을 격퇴하는 용사는 많고, 백만 대병을 파하는 용장은 많아도, 자기 내심의 죄악 된 성질을 이기는 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아니고는 이를 이길 자는 없는 것이다. 숯(炭)은 아무리 씻어도 희어지지를 않는다. 오직 불속에 넣을 때에 타는데서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여기에 있는 이 귀신도 주님을 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고 절도 하고 또 멸할수 있는 주님이신 것을 알았다. 이는 그 귀신도 하나성의 크신 능력과 주님의 오신 목적을 아는 까닭이었다. 이런 마귀를 이기는데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주님의 십자가 이외에는 없다.

  

 (3) 5:15에 보니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했다

   이는 새 정신이 회복된 것이다 새로 옷을 입고 앉았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자기를 자기가 제어 할 수 있는 힘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게된 것이다. 즉 인생 본연(本然)의 지위로 회복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은 이 목적을 위하심이다. 범죄 전 아담의 상태이다. 이렇게 되면 내주(內住)하신 주님의 주장대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4) 5:19에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구에게 고하라'하였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사랑을 우리가 체험한대로 친구에게 간증 할 의무가 있다. 이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전하는데 가장 큰 실례(實例)가 되는 까닭이요, 동시에 이렇게 해서 또 다른 생명을 구원해 내게 되는 까닭이다.

 

결 론

   

이 사건은 악마의 세력과 복음의 능력을 비교해서 나타내는 좋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악마에게 사로 잡혔던 병자가 다시 주님에게 사로 잡히게된 좋은 증거이다. 인간은 이 두 세력중의 하나에 사로 잡혀 살도록 되는 것인데, 주님에게 사로잡히지 않으면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이다.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우리는 어느 편에 사로잡혀야 하는냐가 중대한 문제이다.

   갈라디아 5:19-21과 22-23을 비교해보면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가 어떤 것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4:19-20을 보면 변화된 베드로의 대담한 태도를 볼 수 있다.

   마태복음 11:28과 30을 비교해 보면 수고의 무거운 짐과 주님의 가벼운 멍에가 어떤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천양(天壤)의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이상 말씀 중에서 어느 편에 서서 있으며, 어떤 태도를 취하며 누구와 함께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이것은 물론 주님의 큰 권능과 큰사랑의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