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도는 우리 주님 일생의 최대의 기도요 동시에 최후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일생이 십자가의 생활이였으나 그 중에 3대 고통이 있었습니다.
①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 당하시던 고통이 그 첫째이요
②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면서 드린 기도의 고통이 그 둘째이며
③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고통이 그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이 3대 고통 중에도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광야 40일의 시험 고통을 이기신 것도 주님의 기도 이었고,
앞에 있을 십자가의 사고(死苦) 대성공도 기도로 하셨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의 고통은 십자가 전의 십자가였습니다.
이 기도는 피땀의 고개를 넘기는 기도였습니다. 일 중에 큰 일이요, 난사(難事)중에 난사였습니다.
이 기도는 일대 전쟁이었습니다.
사실로 육이 죽느냐 영이 죽느냐의 전쟁이요, 악마가 이기느냐 그리스도가 이기느냐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기도의 2대지(大旨)는 「만일 합당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입니다.
1.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모든 시험은 기도하지 않는 기회를 타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주님이 잡히심과 돌아가심은 여간 큰 일이 아니요, 따라서 시험 중에 최대의 시험인 것입니다. 이런 시헙을 이기는 방법은 기도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기도에 실패하면 만사에 실패합니다. 악마는 기도 밖에 겁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기도하지 않는 틈을 타서 들어옵니다. 제자들이 주를 버리게 된 것도 이때 기도를 안한 까닭이었습니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
(2)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 뜻은 육체적 의지를 강하게 하여 마음의 원을 이루게 하라시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육신의 괴로움을 이기게 합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성질을 죽이는 데는 기도 뿐입니다. 기도는 세상 모든 생각을 물리치게 합니다. 가나안 7족속을 쫓아내고 이스라엘 선민이 들어가게 하듯 합니다. 기도는 마귀를 정복합니다. 결사적으로 하지 않고는 패배하기 쉽습니다.
이 뜻은 다시 마음은 강하나 육신이 약하다는 것도 됩니다. 마음에 원하는 것이라면 될 수 있으나 이것의 됫받침이 될 육신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 수도 있으나 이것을 핑계로 삼는 수도 있으니 우리는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기도는 최대한 강력한 기도가 되어야 이런 모든 시험을 극복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신적인 모든 생각을 버리고 육체를 이기고 악마를 호령하는 듯한 위엄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2. 천사의 조력(눅 23:43)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힘쓰고 애쓰는 자의 뒤를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신만큼의 힘대로 요구하십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자기의 힘을 다해서 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한냥중 준 자에게는 한냥중 만큼 요구하실 것입니다. 주께서도 피땀 흘리시며 하시는 기도이기 때문에 사자가 와서 도와서 일을 이루시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최후의 위안이 되는 법입니다. 처음에는 고민하시고 하시였습니다. 그러나 사자의 조력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세번씩이나 같은 기도를 하신 것은 과연 그 문제가 중대 문제요 동시에 적극적으로 싸우신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이기고 육의 세력을 극복하고 마귀를 정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기도한다고 해서 혼자 이긴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 앞에서 주와 함에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는 바로 주님의 슬하요 주님의 품속인 줄 알고 따라서 기도의 보좌에는 안심이 있고 기쁨이 넘칩니다.
3. 세 제자를 기도에 동참케 하심(35, 37)
주님의 기도에 동참 한 자는 누구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3인이었습니다. 이 3제자는 변화산 상에 동참케 하신 제자들이었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동참케 하신 주님은 또한 이 고배(苦杯)를 받으시는 데도 동참케 하십니다. 문자 그대로 동고동락입니다.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정리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영광자리에 앉기를 원하거든 주님의 고배의 자리에도 동참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주님의 영광 자리는 탐하면서도, 주님과 함께 고난 받기는 싫어하는 이가 있습니다.
'나와 함에 깨어 있으라' 하시었는데 그 뜻은 주님이 얼마나 어떻게 하시는 것을 보게 하시려는 뜻도 있습니다. 과연 기도라는 것은 저렇게 하는 것이로구나, 기도란 저렇게 힘이드는 것이로구나, 힘쓰고 애써야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보이려 하심도 있습니다. 어떤이는 기도를 5분 혹 10분에 끝마치려는 이가 있는데 참 이상합니다. 내경험에도 어떤 때는 한 시간 두 시간 해도 기도가 안 되어 애를 쓰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터져 나오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행하신 일은 다만 대신 행하심만이 아닙니다. 모범도 되십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과 행하심, 대신과 모범,중생과 가르침,은혜와 인내하게 함과(他力) 해야함(自力), 예정과 자유:.. 이렇게 양면을 보여 주셨는데 여기에서 세 제자들을 깨우신 것은 대신하시는 기도를 제자들도 모범하게 하심이었습니다. 즉, 제자들의 의무를 실행하게 하심이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런 기도에 동참해서 주님의 뒤를 따르자.
4. 우리 애양원 동산이 겟세마네의 기도 동산이 되게 합시다.
지금은 꼭 겟세마네 기도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때입니다. 만사 다 떨치고 기도 동산에 모입시다.
「겟세마네」라는 뜻은 「감람 기름을 짜는 틀」이란 뜻입니다. 과연 기도는 인간의 진액을 짜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드는 일이냐. 눈물이 흐르고 땀이 내리고 피를 쏟으면서 짜는 것이니,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얼마나 주님의 진액을 짜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진액으로 우리 자신과 나라를 살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 애양원은 기도의 동산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짜낸 감람유는 그 용도가 많습니다. 식용(食用)약품, 향료, 화장용등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기도도 이렇게 다방면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결 론
우리 동산은 유명무실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즈음 새벽 기도나 낮 기도(애양원에서는 정오에도 기도를 한다:‥편자 주)보니 유명무실 될까 두렵습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이적이 따릅니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건강상 새벽 기도는 해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모르는 소리입니다. 기름짜는 것 보니 그 자체가 깨져야 기름이 나오더라. 몸을 아끼면 아낄수록 더 쇠약해집니다. 내 경험으로 보아 신경쇠약이 나은 것도 기도에서 였습니다. 죽기 각오하고 기도하니 병까지 낫더라. 기름이 타야 빛이 발해지고, 소금이 녹아야 맛을 내듯이 희생적 기도가 있으면 놀라운 기적이 따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에 사는 길이 생깁니다. 기도의 이적을 맛보자. 기적적 기도를 하자. 주님께서는 일생 동안 기도하셨고, 최후 승리도 기도로 거두셨습니다. 40일 금식 후 승리도 기도로 거두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승리도 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거두셨습니다. 우리 애양원 동산의 승리도 주님을 본받는 기도 이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출처: 사이버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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