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33) 먹든지 마시든지

새벽지기1 2016. 10. 7. 07:42


음식낭비는 곧 생명의 낭비입니다


  
 ▲ 신국원 교수 

학창 시절 가난해 바짝 말랐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몸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더욱이 사랑 받는 목회자가 된 후로 교우들의 식사 초대를 받을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살찌는 것이 염려되어서가 아닙니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는 것이 목회자로서 덕을 끼치는 길인지를 항상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서랍니다.


창조질서와 식생활

먹고 마시는 일은 문화활동 중 가장 원초적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아담에게 땅에 충만하여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하신 것이나 에덴동산을 지키고 돌보며 경작하라는 말씀(창 2:15)은 식생활과 연관됩니다.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통해서도 먹고 사는 일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을 대표하는 영적 차원이 깃들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음식물은 단지 식욕을 채우는 자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징표’이며 생명과 활동에너지를 공급하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신 8:3, 마 4:4)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성경은 이처럼 먹고 사는 문제를 신앙의 중심적 내용으로 다룹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구별된 식생활에 관한 말씀들이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인간의 식생활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영양 섭취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동식물과 달리 인간의 식욕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날개 달린 것은 비행기만 빼고, 다리 달린 것은 책상을 제외하고 다 먹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요리법 또한 무궁무진합니다. 우리가 먹는 일에는 식물이건 동물이건 생명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식생활에 대한 윤리적 반성과 영적 분별이 꼭 필요합니다.


타락한 식생활

인간의 타락이 먹는 일로 인해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을 거슬렸고 노아도 포도주로 실수했습니다. 식인관습은 인간의 식생활이 창조주의 뜻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바나나와 커피 같은 농작물에 집단재배체계방식을 사용하고, 불공정무역을 통해 가난한 나라 농민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미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는 우리가 1000원이면 어디서나 쉽게 뽑아 마시는 코코아 맛을 모른다고 합니다. 평생 초콜릿도 먹어보지 못하고요. 마르크스는 이를 ‘소외’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단지 자신의 수고의 열매를 먹지 못하는 소외가 아닙니다.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보는 그의 눈에는 인간성 자체를 송두리째 말살하는 불의입니다.


세계 각처에서 농경지 확대를 위해 삼림을 파괴하는 일이 계속되면서 무수한 동식물은 서식지를 잃고 멸종하고 있습니다. 수익중심으로 기업화된 농업으로 생태계 리듬의 교란도 심각합니다. 모든 것이 하우스에서 재배되다시피 하는 지금, 제철 과일이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딸기며 수박을 겨울이나 봄에 출하하면 비싸게 팔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고 그로 인해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바른 식생활의 회복

  
 ▲ 일러스트=강인춘 

“사람은 먹는 그대로 된다”(We are what we eat)라는 말이 다이어트 교육에 흔히 등장합니다. 포이어바흐라는 유물론 철학자의 말이지만 일리가 있습니다. 피자나 햄버거처럼 둥근 음식을 좋아하면 얼굴이 보름달처럼 되니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마시는가는 우리 몸만 아니라 인격형성과 관계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의 환경도 만든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창조주의 축복이었고 타락의 계기였으며 회복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첫 이적을 음식을 통해 보이신 예수님은 수시로 먹고 마시는 일을 통해서 구속의 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내 살과 피는 영생을 주는 양식이라”하신 성찬의 메시지가 한 예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의 복된 삶도 생명수 강가에 아름다운 실과들이 풍성한 새예루살렘의 풍경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바울의 말씀은 글자 그대로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단지 식생활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화려하고 풍성한 식탁이 동식물과 가난한 농부가 희생한 대가 일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니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는 필수적입니다. 음식 낭비는 생명의 낭비입니다. “빵이 없는 이에게 빵을 주시옵고 빵을 가진 우리를 공의로 굶주리게 하소서”라는 기도에 담긴 뜻이 무엇이었는지도 항상 새겨보아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