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35) 웰빙과 힐링

새벽지기1 2016. 10. 11. 14:52

예수 그리스도 복음으로만 힐링


  
 ▲ 신국원 교수 

배고픔을 넘어 죽도록 즐기기에 나섰던 문화가 한 단계 더 진화했습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바람이 그것입니다. 이 문화의 대표격인 ‘로하스’(LOHAS) 운동은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건강한 삶(Lif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을 지향합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도 삶이 여전히 어려워서 인지, 아니면 잘 먹고 잘 살아도 권태로운 탓인지 웰빙과 함께 힐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운동인 웰빙과 힐링은 둘 다 크게 성공적인 것 같지 않습니다.



웰빙문화

세계보건기구(WHO)는 1986년 오타와 헌장에서 ‘웰빙’은 질병이 없는 소극적 건강을 넘어서 신체와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온전한 상태라고 규정했습니다. 정체성, 소속감, 친밀감, 성취감, 유대의식, 심리적 안정도 필수적입니다. 이른바 전인적 건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웰빙 하면 건강하고 편안하게 오래 사는 것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나 싶습니다. 고기보다 생선이나 유기농 채식을 하고 화학조미료 같은 인공식품과 탄산음료를 배격하는 식생활 말입니다. 웰빙의 바람 때문에 맥도날드와 롯데리아 같은 패스트푸드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대중의 인식 속에선 웰빙의 초점이 몸에 맞추어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웰빙 개념에는 개인적 차원의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인 생활여건 향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소시오 웰빙’은 환경개선이나 불우이웃돕기 같은 사회복지 확장을 통해 공동체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서울의 한 구청이 담배 없는 거리를 만드는 조치를 하며 ‘웰빙 행정’을 홍보하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업화된 웰빙

한편 웰빙 바람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몰고 왔습니다.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안 그래도 음식점 천지라 ‘가든 공화국’이라 불리는 나라에 온갖 ‘맛집’들이 성업 중입니다. 건강식품과 운동기구, 스파, 마사지 같은 이른바 웰빙 상품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등산과 캠핑, 낚시 등 레저 붐이 일면서 전국 산하가 수난시대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운동이나 레저활동을 하다 몸을 크게 다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웰빙에 대한 관심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보양식이나 건강보조식품을 둘러싸고 허황된 미신과 과장광고가 판칩니다. 헬라어로 ‘바르게 먹기’라는 뜻의 ‘오르토렉시아(orthorexia)’라는 강박증까지 등장했습니다. 자신만의 커피나 술을 만들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고급화 경향 같이 나만 잘 먹고 잘 사는데 ‘올인’하는 모양새입니다. 웰빙은 온전한 전인건강을 지향하지만 그것도 욕망의 한 형태로 왜곡될 수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렇듯 대세처럼 보이는 웰빙도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지 못함이 분명합니다. 웰빙 열풍 속에서 우리나라는 올해도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차지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힐링이 유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적인 심리치료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치료 음악치료 독서치료에 철학치료까지 등장해 성업 중입니다. 웰빙과 함께 힐링이 ‘뜨는 것’은 역설적인 일입니다.


진정한 웰빙과 힐링

인생의 목적은 잘 먹고 건강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웰빙은 삶의 모든 굴곡 속에서 만사를 감사함으로 누리는 샬롬에서 옵니다. 샬롬은 만사가 편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품은 인간은 결코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창조주가 마음에 좌정하시기까지는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힐링도 마찬가지 입니다. 온갖 욕망의 추구로 지친 삶을 요가와 명상으로 달래려 하지만, 그것들이 온전한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상담과 치유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주와 평안한 관계가 깨져 안식이 사라진 개인의 삶과 사회-문화 속에서, 힐링은 결코 무엇을 사서 소비함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찍이 장로교 선조들은 웰빙의 비결을 ‘창조주를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 함’(소요리문답 1번)이라 했습니다. 또 힐링은 이런 삶이 깨어졌을 때 중심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창조주를 경외하면서 그의 말씀으로 주신 창조질서에 대한 존중이 무너진 삶과 문화가 웰빙일 수 없습니다. 깨어진 삶과 문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힐링될 수 있습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