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37) 휴가와 안식

새벽지기1 2016. 10. 16. 07:18


창조질서의 리듬을 따르세요 
  

  

더위와 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쉴 수 있는 휴가철이 왔습니다. 휴가 계획은 세우셨는지요? 어떤 이들은 휴가철이면 도리어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합니다. 평소 직장에 매여 있던 가장들은 가족들을 위해 무엇인가 이벤트로 봉사해야만 한다는 부담에 눌립니다. 요즘처럼 경제적 여유가 없는 때엔 선택의 여지가 좁아지니 스트레스가 훨씬 심할 수 있습니다. 휴가마저 일이 된다면 정말 슬픈 일입니다.


일과 휴식

<여가(leisure)가 문화의 기초>라는 책을 쓴 조셉 피이퍼는 여가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는 여유라고 했습니다. 여가는 삶을 틀어쥐고 좌지우지하기 위해 애쓰는 자세로는 불가능합니다. 휴식만으로도 진정한 쉼을 누리지 못합니다. 꼭 숙면에 빠진 것처럼 모든 짐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가에는 영혼의 안식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바 돈은 <안식>이라는 책에서 피이퍼에 화답하며 안식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원죄적 성향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태어나 처음 한 일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의 히브리어 ‘사밧’은 ‘중단’이란 뜻입니다. 삶의 안정을 추구하는 생산과 성취 노력의 중지입니다.


유대인들은 해가 뜰 때가 아니라 질 때를 하루의 시작으로 여깁니다. 일하고 쉬는 것이 아니라 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주의 시작은 월요일이 아닙니다.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가 주시는 안식의 복을 누리는 주일이 첫 날입니다. 안식은 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그것을 직면할 수 있는 은혜를 받는 기회입니다. 안식은 필요, 압박, 염려와 긴장을 넘어설 초월적인 힘과의 접촉을 통해 힘을 얻는 것입니다.


나태와 분주함

창조주가 세워놓은 일과 쉼의 리듬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삶이 병들고 맙니다. 피이퍼는 현대문화가 삶의 진면목을 알게 해줄 기초인 여가를 상실했다고 했습니다. 노동자, 사무직, 전문직 할 것 없이 모두 일에 빠져 ‘전적 노동’의 문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전이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야만 쉴 수 있는 문화에선 여가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삶이 찌들고 문화는 파괴된다고 경고합니다.


인간은 억지로 짐을 지는 말이나 소와 달리 대개 스스로 짐을 지기에 불평도 못합니다. 잘난 사람일수록 명예, 권세, 책임감, 체면이라는 짐을 더 많이 집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지나친 수고입니다. 많은 이들이 알베르트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 나오는 영웅처럼 행동합니다. 꼭대기에 올리면 바로 굴러 떨어지는 돌을 다시 굴려 올리는 고역을 인간승리로 착각하는 탓입니다.


오늘날 게으름을 뜻하는 ‘나태’(acedia)는 본래 창조주께서 뜻하신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었답니다. 그래서 나태는 안식 없음이며 ‘절망의 자매’라고 했습니다. 일에 빠져 안식을 저버리는 것도 일종의 ‘나태’입니다. 악인이 부지런하기까지 하면 가장 큰 재앙이라고 합니다. 나태의 반대는 부지런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본연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평안이요 안식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본연을 지킬 때 비로소 여유로울 수 있습니다.


참된 안식

진정한 안식은 창조주께서 정하신 일과 쉼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되면 노동자 신분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쉬고 잘 때에도 하나님께서 삶을 붙들고 계심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성경적 안식은 선택이 아니라 축복이고 명령이며 초대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이들에게 내게 와 쉬라 했습니다. 그의 멍에는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짐보다 가볍고 쉽다고도 했습니다.(마 11:28~30) 사마리아 여인은 영원의 갈증을 복음의 생수로 풀었습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서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안식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는가에 전적으로 달렸습니다. 삶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할 때 안식과 평안이 찾아옵니다.


오락으로 안식을 대신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쉬는 날만 기다리다 야외로 나가 노는 것도 오히려 일과 안식의 리듬을 교란시킵니다. 창조질서의 리듬을 따라 일과 쉼 모두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안식입니다. 인생에는 일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평안 속에 안식을 누리는 것이 그 중 제일입니다. 금번 여름 휴가는 그런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기회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신국원 교수  webmaster@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