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34) 정의로운 문화를 위하여

새벽지기1 2016. 10. 10. 07:45

‘패거리’ 극복할 화해자 역할해야


  
 ▲ 신국원 교수 

갑자기 “의리”가 대세입니다. 한 음료회사의 기발한 광고가 대박을 터트렸기 때문인데 그만큼 신뢰가 아쉽고 그리운 탓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의리나 신뢰는 인간 관계에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이기적이며 배타적인 패거리 문화로 왜곡될 경우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데 있습니다. 월드컵 16강이 좌절된 후 터진 “의리축구” 논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의리와 파벌

경기야 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안일, 무책임, 무능일 경우 이야기가 다릅니다. 더욱이 “의리축구”나 “파벌”이 패인으로 거론되면서 “협회가 말아먹었다” 같은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난 몇 개월간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터져서 축구라도 위로가 되길 바랬는데 그마저 뜻대로 되질 않아 더 화가 났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겐가 터트려야 할 분노가 축구대표팀을 향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것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장 열심히 뛴 선수들이 경기 끝에 허탈해 하는 모습은 정말 안쓰러웠습니다. 밤샘 응원으로 지친 채 출근길에 나선 시민들 표정은 더욱 안돼 보였고요. 축구공 하나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스포츠의 힘이고 인생의 진면목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포츠는 예술과 함께 사심 없이 즐기는 놀이여야 합니다. 돈, 명예, 심지어 국위선양도 부차적인 것입니다. 월드컵이 사회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승패 때문만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상업성이 스포츠를 망쳐놓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학연과 지연 같은 파벌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축구연맹의 파벌 싸움과 그에 대한 우려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를 바로 잡지 못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동계올림픽 후에도 대통령까지 나서서 체육계의 파벌을 청산해야 한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지금 한번이 아니고 빙상과 축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패거리 문화의 해악

<패거리문화의 해악>이라는 책을 쓴 원로 언론인 김상훈은 패거리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습니다. “끼리끼리 뭉치고 봐주는” “원시부족시대의 부정적 의식구조”인 패거리가 “무소불위로 날뛰는 통에 혼란, 무질서, 불안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한탄합니다. 패거리문화의 가장 큰 해악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입장벽을 높이는 폐쇄성과 배타성입니다.

패거리문화는 양날 달린 검으로 작용합니다. 수혜자가 될 때는 좋지만 상황이 뒤집히면 불이익도 당하게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국위선양에 봉사한 훌륭한 선수요 감독이 패거리문화에 휘말려 몰락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 패거리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릅니다. 또 파벌이 모두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본래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기적 배타성을 띄게 되면 예외 없이 부패되기 시작합니다. 뻔히 잘못된 일도 서로 정당화하며 상호 강화작용을 통해 뻔뻔해지기까지 합니다. 패거리 안에선 획일성이 강요되고 대화 대신 명령과 복종체계가 되어 다양성과 창조성을 말살시킵니다. 패거리문화가 가장 자유롭고 순수해야 할 놀이요, 페어플레이의 모델이 되어야 할 스포츠까지 지배한다면 심각하게 병든 사회임에 틀림없습니다.


패거리와 파벌을 넘어서

패거리 문화의 해법은 “정의사회구현”입니다. 정의론을 정초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각기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이 정의라 했습니다. 일한 만큼 벌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정의라는 말입니다. 성경적 정의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요구합니다. 이방인과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그들에게 정의로울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돌봄으로 정의를 확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파벌과 패거리 문화로 망가지고 있다면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성도(聖徒)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본받지 않고 그것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자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 하기에 앞서 빈부 차별과 지연, 혈연, 학연 같은 파벌의 문제가 교회 내에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쳐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비정상을 정상화”하려 해도 잘 바뀌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패거리와 파벌이 판치는 문화 속일수록 복음으로 모든 벽을 넘어서는 화해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들부터 매사에 공정해서 패거리문화를 극복하는 일에 앞서는 샬롬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신문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