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36) 지속가능성 문화

새벽지기1 2016. 10. 13. 07:12

창조질서의 축복을 지켜가세요


  
 ▲ 신국원 교수 

어느 식당이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음식값은 이미 당신의 할아버지가 냈으니 마음껏 공짜로 드세요.” 한 손님이 실컷 먹고 문을 나서는데 주인이 부르더랍니다. “돈을 내고 가셔야지요.” “할아버지가 냈다면서요?” “물론입니다! 이제 손님이 손자를 위해 돈을 내실 차례입니다.”


자연과 지속가능성

이 이야기는 오늘날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한 우화입니다. 문명은 자원을 계속 조달해야 유지·발전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구의 자원이 인류문명을 얼마나 더 지지해줄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식량혁명으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된다 하더라도, 우선 물과 같은 필수적 자원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미래에 대한 우려가 심각히 반영된 말입니다. 자연을 착취해 피폐하게 만들어온 그간의 잘못된 삶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 깃들여져 있습니다. 물신주의 세계관의 끝없는 탐욕과 무절제를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습니다. 이 세상은 인간이 영원토록 거할 집입니다. 하나님은 잠시 있다 없어질 것으로 만드시지 않습니다. 적어도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까지는 지속가능한 문화를 영위하는 것이 인간의 책임입니다.


1987년의 브룬트란트 보고서(Brundtland Report)는 지속가능성을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제약하는바 없이, 현 세대의 필요와 미래 세대의 필요가 조우하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다음 세대 역시 좋은 환경과 풍요로운 삶을 누릴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진지하게 반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속불가능성

성경은 타락 이후 만물도 탄식하며 고통 한다고 말합니다(롬 8:22). 인간이 사는 방식은 자연을 병들게 했습니다. 아메리카대륙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에도 최소 2000만 명이 넘는 인디언들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태고의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비쳤답니다. 지난 500년간 일어난 변화를 생각해보면 현대문명의 파괴적 성격이 한 눈에 보입니다. 인류 문명은 우주 역사에 비해 순간이라 할 수 있지만 환경에 미친 영향은 엄청납니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의 탐욕은 후손들이 누려야 할 자원도 마구 낭비했습니다.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연료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그 결과 에너지와 자원 고갈뿐 아니라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같은 생존 위협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음식낭비와 전기 에너지와 물 낭비는 자주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인구의 증가와 함께 산업화, 산림파괴, 도시화 그리고 무차별한 개발은 지속이 불가능한 문화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번영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타락한 문화의 특징입니다. 죽음의 문화는 결코 지속가능한 문화가 아닙니다. 요즘은 이윤창출을 제일로 여기는 기업들조차도 단기간 수익보다 지속가능한 발전계획에 주목합니다. 소위 ‘먹튀’는 어디서나 용납될 수 없습니다. 폭력적 지배와 착취를 일삼는 탐욕과 낭비의 문화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문화

이런 깨달음은 생태환경파괴뿐 아니라 불공정무역 같은 경제 불의나 문화 다양성 말살도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했습니다. 지속가능성은 단지 자원과 환경문제만이 아닙니다. 정치사회적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지속가능성은 삶의 전체적 태도 변화 여부에 달렸습니다. 생태, 경제, 정치, 사회, 문화뿐 아니라 영적 지속가능성도 살펴야 합니다.


지속가능성은 환경론자들의 논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실제로 받아들여 힘써야 할 사안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 창조의 축복이 다시 주어졌습니다. 한 기독교철학자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창 1:26~28)는 말씀이 문화건설 ‘명령’보다는 ‘축복’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단 ‘돌봄’의 조건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샬롬은 하나님과 인간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자연 사이의 온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문화의 지속가능성은 창조질서에 대한 인간의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요즘 큰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내고 있습니다. 사업이익에 대한 회계보고만 아니라 환경보호, 사회적 기여, 인류애 실천 같은 내용을 담은 종합발전 가능성 보고서입니다. 그런 면들이 수익만큼이나 기업 이미지 평가에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OECD나 UNESCO 같은 국제기구들도 지속가능성 연구와 교육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윤실이나 컴패션과 같은 시민단체도 이에 가담했습니다. 목회도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전도와 교회 성장에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