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균형 (딤전 2:7c)

새벽지기1 2016. 9. 30. 08:51


기독교계 신문지상을 통해 지금은 꽤 이름 있는 목사인 것을 알게 되었지만 두 번 다시 만나본 적이 없는 그 사람과의 첫 대면은 내가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여름이었다. 겨우 한낮의 더위가 물러나 마음을 추슬러 책을 잡았을 때 열린 창문을 넘어 어디선가 솔솔 들려오는 찬송소리에 이끌려 발이 닿은 곳은 동네 교회였다. 사십 세가 훨씬 안된 듯한 설교자는 말끝마다 자신이 정통교회의 목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까, 믿습니까"를 연속적으로 수없이 반복하였다. 물론 청중이 중년의 설교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이 터져라 아멘을 외쳐댔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한 시간도 넘게 그 자리에 앉아서 귀를 기울였지만 소란스러운 설교와 아멘 소리에 속만 울렁거릴 뿐 아무 진리도 얻지 못하였다. 그 날 나는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앞으로 다시는 이런 무의미한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얼마나 자주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를 꾸중하셨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옮길 수 있다고 주님께서는 가르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주님께 간구했던 것이다. 주님의 생각은 사도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이 믿음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의 앞부분을 조금만 읽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딤전 1:2)이라고 부르면서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 (딤전 1:4) 대신 변론을 일으키는 잘못된 교훈을 피할 것을 권면하고 "거짓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 (딤전 1:5)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믿음은 절대로 홀로 서서는 안된다. 믿음은 반드시 진리와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은 매우 위험한 것이 된다. 진리 없는 믿음은 우신(愚信)이며 맹신이며 광신이다. 이것은 의심과 소신 (小信)과 불신만큼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고전 13:2) 사도 바울의 말은 진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꾸어 써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믿음을 바른 믿음으로 잡아주는 것은 진리이다. 진리는 믿음의 지팡이이며 신앙의 길잡이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딤전 2:7c)고 말했던 것이다. 틀림없이 자신들의 종교에 심취해있던 이방인들에게 믿음을 충동하는 것은 쉽지만 진리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쉽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믿음만을 충동하지 않고 어렵기는 하지만 지성적으로 진리를 설명했다. 믿음과 진리는 항상 같이 가야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를 써내려
갈수록 진리에 관하여 중요한 언급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 (딤전 2:4),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것 (딤전 3:15), 성도는 믿음과 진리에 균형 잡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딤전 4:3).

오늘날 적지 않은 경우에 우리에게는 믿음만 있고 진리가 없다. 입버릇처럼 목사는 설교 중에 "믿습니까"를 연발하고 성도는 기도 중에 "믿습니다"를 반복하지만 진리는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히 우리는 설교에서든지 기도에서든지 기독교적인 것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주절거리며 뇌까리고 있는데 그 가운데 진리는 없다. 어쭙잖은 시사실력을 뽐내며 길거리 약장수처럼 이야기를 늘어놓는 목사 그리고 우스개 소리에 만족하고 희학을 즐기는 성도가 즐비한 것이 우리의 현실 기독교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위험한 발언인 줄 알지만 (!)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정통교회라는 곳에는 진리추구가 없고 이단집회라는 곳에는 (물론 잘못된 것이지만) 진리추구가 있다. 우리는 지금 균형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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