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12)

새벽지기1 2016. 9. 5. 08:56


주 되심의 영성<하나님 형상>

문화에는 이러한 분석에 비추어 살필 수 있는 국면이 많다. 특히 예술이 그러하다. 회화와 조각과 같은 예술은 기독교 전통에서 달갑게 여지기 않는가 하면 열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가령, 초기 교회 교부들은 회화와 조각이 우상 숭배와 십계명의 두 번째를 어기는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청교도는 이러한 전통을 따랐다.


이와는 달리 그러한 예술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적극 활용될 수 있다고 보는 전통이 있다. 그리스 정교회는 성상(聖像)을 나타낼 때 이차원적 예술을 허용했고, 로마 가톨릭은 조상(彫像)도 허용했다. 문화의 경향이 기독교 신앙과 상호 작용을 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문화에 반하는 그리스도’ 혹은 ‘문화의 그리스도’가 적합한지 아닌지의 문제는 특정한 문화 상황을 살펴보아야 판단할 수 있다. 적절한 예로 건축을 들 수 있다. 교회당 건물은 특이하게 보여야 하는가 아니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기독교 신앙에 호의적이지 않은 이슬람 문화에서는 기독교 전통의 모형을 닮은 건물은 대조에 강조점을 둔다. 하지만 덜 두드러진 형태가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 문화적 형태를 어떠한 범위에서 채택해야 하는가? 기독교 전통에서 드라마와 음악에 대한 이해는 미술처럼 숱한 변화가 있었다. 가령, 연기는 그리스-로마의 신들의 신화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제 3세기 교회에서 연기자가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지 않으면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중세 시대에 드라마 예술을 보존하고 발전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교회였다. 그것이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신앙을 가르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최근 2세기까지 교회에서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음악이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고 부르는 찬양의 가사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허용될 수 있는 음악도 시대마다 장소에 따라 달랐다.
오늘날 록이나 헤비메탈 음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유형의 음악이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고 있으나 이전에는 금지되었다. 이것은 모두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아프리카 미국인 가수나 트럼펫 연주자는 재즈나 블루스와 같은 ‘사탄’의 음악과 복음 성가를 선택해야 했다. 이것은 음악의 두 유형이 부분적으로 겹치지 않는다고 여기는 두 개의 삶의 유형을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문화의 영역 안에서 살아가는 사회적이고 환경적 국면과 연루된 문제를 예증하는 특별한 경우로 결혼, 언어 및 유머를 들 수 있다. 결혼은 태어남, 사춘기 및 죽음과 같은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전환점 가운데 하나다. 언어는 사람의 문화의 기초를 이룬다. 언어를 통해 사람은 남과 소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곰곰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머는 사람의 언어가 갖고 있는 많은 문화적 뉘앙스를 나타낸다.


먼저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살핀다. 결혼에 대한 개념의 중심은 친족과 가족 관계다. 성경에는 결혼에 대한 자세한 지침이 없다. 그리고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결혼에 대한 다양한 관습이 있다. 그렇다면 사실상 남녀관계의 혼인이 잘못된 방식인가 아니면 적법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는가? 또한,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에서 결혼은 사랑에 빠져 있는 두 사람의 주도권적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때로 그들은 가족의 허락도 받지 않거나 가족이 알지 못한 채 결혼한다. 


하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결혼을 관계된 가족이 결정한다. 이러한 결혼 관습이 개인의 삶을 조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에 의해 주도되는 결혼이 높은 실패율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볼 때 결혼이란 두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형태라고 받아들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