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10)

새벽지기1 2016. 9. 2. 07:48


주 되심의 영성<하나님 형상>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고도로 발전한 산업사회에서는 최첨단적인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주류 문화가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가령, 젊은 세대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의 가치, 관심, 음악, 옷 및 관습에 젖어 들고 있다.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자신들과 아주 다른 문화에 속하는 환경에서 공부하고 일을 한다. 따라서 그들의 말과 행동 방식 및 관습 등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이러한 문화의 다양성은 가치의 상대화에 이를 수 있다. 어떤 행동이 한 문화에서는 선한 것이지만 모든 문화에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상대성은 위험성이 크다.
만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다른 것이 정당하고 유력하다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치의 상대주의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같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거부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의 다원성을 신학적 상대주의와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의 문화가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어떤 문화를 실천하든지 그것이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문화의 다양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어떤 특정한 문화가 기독교 신앙을 실제화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런 믿음은 대개 안정을 추구하거나 살아갈 때 편안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신학적으로 볼 때, 참된 안전이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를 전적으로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만 그것을 줄 수 있다.


문화의 다양성에 접근하는 다른 방식은 우리가 속한 문화의 전망을 반성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다양한 언어나 사회 환경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으면 삶에 대한 본능적인 태도나 편견을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잘 알 수 있다. 또한 다른 문화를 경험해본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반드시 전문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특수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한 사람들과 더불어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배운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배우는 기회를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어떤 문화가 갖고 있는 특수성을 보편성과 혼동하는 잘못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가 다른 문화를 두려워하거나 그것을 비판 없이 경탄하는 낭만적인 경향으로부터 벗어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그것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주의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게 한다. 결국 그것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다. 우리의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갖는 관계를 통해 결정되는가 아니면 특정한 문화와 갖는 관계를 통해 결정되는가? 이 물음은 분명하게 답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 갖는 관계는 어떤 특정한 때와 곳 및 환경 안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따라서 그것 자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피조물과 갖는 관계의 특수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통 곧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해진 방식은 그 메시지가 무엇이고 우리가 그것을 다른 세대에게 전통의 이름으로 전해주는 방식을 알게 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의 안전이 점점 더 확보되는 것은 오직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과 갖는 관계가 깊어질 때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거부 반응을 보이기보다 개방적이고 매우 감수성이 강한 방식으로 직면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논의할 때 피할 수 없는 것은 죄가 사람의 문화에 엄청날 정도로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계속>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