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성령세례에 대한 간증들(역사적 고찰) / 로이드 존스

새벽지기1 2016. 9. 4. 07:05


요한이서,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한다.


영적인 증거와 간증을 다룰 때에 거짓된 체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17,18,19세기의 탁월한 신앙인들의 남긴 저작물에 기록된 간증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체험에 대해 생소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무시되고 망각되어 왔다. 오늘날 교회들에서 나타나는 상태의 원인은 이 교리를 무시한 데 있고, ‘그것을 믿음으로 취하라’는 거짓된 교회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중생할 때 성령의 세례를 받으며 비체험적이라고 한다.

 

1. 17세기 스코틀렌드의 존 낙스의 후계자 로버트 부르스의 전기인 <로버트 부르스의 생애>라는 책의 기록이다. “그리스도의 부요한 보화들이 내게 열렸다. 그의 영이 참된 기쁨과 영적이고 고상한 빛으로 뿐만 아니라 내 속에서 공공연하게 음성으로 내게 증거하셨다. 그 음성이 어찌나 분명하게 들렸는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의 죄됨을 깨우쳐 줌으로써 곤고한 나에게 그러한 은혜로운 말씀을 부어주시는 방식에 감탄하게 되었다. 같은 달 둘째날 나는 분명하게 또 다른 성령의 지지를 얻었는데 성령께서 어찌나 강하게 내 영에 증거하시는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엄위하신 그 분이 어쩌면 그렇게 작은 일을 그렇게 크게 보시고 그렇게 작은 섬김을 그처럼 많이 보시는가 하는 데 감탄할 뿐이다.”

 

2. 존 프레스톤의 경우, 그는 위대한 지성을 지니고 있던 사람이었으며 석학이었다. 그의 에베소서 1:13의 인침을 이렇게 설명했다. “성령의 인침이나 증거가 무엇이냐?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내 사랑하는 이여,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시키는, 말로 할 수 없는 확신이요 하나님의 빛에 대한 나타냄이시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셨으며, 죄를 사해 주셨다는 확실하고 은밀한 확증이다. 받는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장) 그와 함께 거하시겠다는 것이다.”

 

“계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는 그러한 사랑과 화평의 표현을 가지게 되어서 평화와 기쁨, 그 사람 밖에는 알 수 없는 그러한 것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증거다. 이 영은 물과 피로 씻음을 받은 뒤, 신자가 되어 정결케 한 뒤에 오는 것이다. 앞서 오는 것이 없다면 (아무리 크고 화려한 체험을 했을지라도)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먼저 문을 열면 들어가겠다!’이다.”

 

“주께서 자기의 순전한 말씀을 믿고 의탁하는 것을 보실 때 주님은 그 사람과 더불어 한 단계 나아가서 약속의 성령으로 같은 일을 그에게 인친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인간의 영혼을 향해서 ‘나는 너의 구원이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표현할 지 알 수 없는 성령이 인간 영혼을 향하여 하시는 확실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감추인 만나’로 불리우기도 하며 ‘흰 돌’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3. 청교도인 토마스 홀튼의 경우, 1674년에 그는 로서 8장에 대한 46편의 설교를 출판한 적이 있다. “그 증거가 실상으로 충만하게 나타나고 그것이 영혼에 머물러 있는 한 모든 유혹은 침묵하게 되며, 아무리 어떠한 의심과 회의가 있더라도 그 모든 것을 제거하며, 우리의 심령을 완벽한 안식상태에 고정시켜 준다. 그것은 은밀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확고하고 틀림없는 것이다.”

 

4. 17세기 설교자 윌리암 구드리의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관심>에서, “나는 성경에 따라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에게 때때로 허용되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다면 그것은 아들됨의 증거를 훨씬 초월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딘지 그것보다는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확신이요,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을 들리는 소리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빛과 생명과 사랑과 자유이신 하나님으로 우리 영혼을 채우는 영광의 광선이요 그것은 저 들리는 소리인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단9:23)는 말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기업의 보증 또는 첫 열매라고 불려질 수 있는 정도의 영광의 빛이니이다’(엡1:14).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적이고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느낌이고 발견이며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에 나타난 확증 이외에 모든 것이 잊어질 정도로 그 충만한 것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 성령의 확증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여기서 믿음은 임재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간다. 이것은 느껴질 수 있는 임재라는 칭호를 받기에 가장 훌륭한 것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요4:18)라는 말씀이 해당된다.”

 

5. 경건한 청교도인 리차드 십스, 그는 ‘하늘나라 십스 박사’라 불리웠다. 매우 지성적인 그는 <인봉된 샘>이라는 저작에서, “우리의 영이 성화되었다 하더라도 교묘하게 밀려오는 시험을 버릴 수가 없을 때가 있다. 곧 범죄에 대한 가책이 흔히 보혈의 증거를 넘어설 때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령의 즉각적인 증거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특별히 우리에게 ‘나는 네 구원이로다’(시35:3)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고 말씀하심으로 증거하시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그 말씀이 증거가 되어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으로 마음이 격동되고 위안을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영과 양심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가 되어 은혜 안에 있는 우리의 지위, 곧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력하게 증거하신다. 성령은 물과 피로 행하신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적용되는데 그러나 이러한 증거들로 증거하시는 외에 성령께서 영혼을 크게 하시는 방법을 통한 직관적인 증거를 행사하신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께서 영혼을 해방시킨 것을 아는 기쁨이다. 그래서 ‘말로 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기쁨’ 일어나게 되고(벧전4:7)‘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이 오게 되는 것이다(빌4:7).”

 

6. 17세기에 뛰어난 신학자 에드워드 엘톤은 1623년 로마서 8장에 대한 일련의 설교들을 묶어서 책을 냈다. “성령의 증거는 세밀하고 말로 할 수 없는 성령의 영감이라고 간주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면적으로 은밀하게 말로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임을 깨닫고 확신케 하시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달콤한 의식과 느낌을 준다.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특별한 아버지 하나님으로서의 사랑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감흥과 느낌을 부어주신다고(롬5:5) 진술한 바 있다.”

 

7. 17세기의 경건한 청교도인 토마스 구드윈은 에베소서 13:8을 강해하면서 말했다. “인간의 영혼에 와서 부어지며, 그로 하여금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며, 그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은 영원토록 그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케 하는 빛이 있다. 그것은 평범한 신앙이라는 빛을 초월하는 빛이다. 곧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이다. 여러분이 저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그보다 더한 것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평범한 수준이상으로 끌려 올려지고 고양된 신앙이다. 그것은 영혼에게 밝혀진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이다.”

 

8. 18세기의 조지 휫필드, 그의 일기에서 “그 전에는 정말 탄식의 나날들이었다. 버려짐과 유혹이라는 긴 밤을 지난 후 전에 멀리서 보였던 별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이제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영혼을 사로 잡았고, 내가 겸손히 희망하듯이 구속의 날까지 나를 인치셨다.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얻었고, 내 마음으로 양자의 영을 받았으며, 나에 관해서 그렇게 많을 것을 알고 있었던 내 친구들은 내가 그처럼 활기차게 행동하고 그렇게 보이는 것을 보고 모두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나의 기쁨은 점점 더 정착하게 되었고 그 기쁨은 내 영혼 속에거 거하면서 점점 더 증가하였다.” 1740년 11월5일에 일어난 일, “나의 집회에서 길버트 테넬씨가 설교하였고 내가 그 다음에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약 6분 가량이 지났을 때 어떤 사람이 ‘성령이 오셨다! 성령이 말하신다!’고 소리쳤다. 그는 자기 영혼에 대한 예수님의 확증을 제어할 수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기뻐서 어찌나 소리를 지르는지 내 기도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고통과 번민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스도를 받는 그 사람은 계속해서 그 찬양을 하였고 밤중이 되기까지 그에 관해서 말했다. 나 자신의 영혼이 어찌나 충만했던지 나는 자신의 비열함과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주권과 위대함을 깊이 의식하며 주님 앞에 엎드려 울어버렸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도와 찬양으로 그 밤을 보냈다. 그 밤은 결코 잊지 못할 엄청난 밤이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내 영혼을 어찌 충만케 했는지 나는 그 앞에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9. 조나단 에드워즈의 간증, “1737년 어느 날, 건강을 위해 나는 말을 타고 숲 속으로 들어가 호젓한 곳에 내렸습니다. 경건한 묵상과 기도하며 걷는 것이 흔히 하는 나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내게는 특이한 한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신 성자의 영광과 그의 놀랍고, 크며, 충만하고 순결하며, 감미로운 은혜와 사랑 그리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낮아지심이었습니다. 그토록 고요하고 감미롭게 나타난 이 은혜는 하늘보다 높게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형언할 수 없이 탁월하여 모든 사상과 개념을 삼켜 버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광경은 내가 판단하기로는 거의 한 시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소리쳐 울게 되었습니다. 나는 영혼의 열심이 텅 비어 사라져 버리는 느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티끌 속에 앉아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충만해지고 싶고, 거룩하고 순순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싶고, 그리스도를 의뢰하고 싶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고 싶고, 그리스도를 섬기며 따르고 싶었습니다. 또한 내 영혼이 완전히 성화되고 신적이고 천상적인 순결로 깨끗해진 것 같이 느꼈다. 나는 이 외에도 몇 차례 이와 아주 유사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들도 역시 동일한 효과를 내게 미쳤습니다. 나는 여러 차례 성삼위 되시는 성령의 영광을 감지했고, 거룩하게 하시는 그의 직무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의 거룩하신 역사를 통해서, 영혼에 하나님의 빛과 생명을 전달하시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교통하심을 통해서, 신적 영광과 상쾌함의 무한한 샘으로 나타나셨고, 충만하시며, 내 영혼을 채우고 만족하게 하시기에 충분하신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은밀한 교통을 통해서 자신을 부어 주셨고, 영광의 광채로 빛나는 태양처럼, 생명과 빛을 달콤하고 즐겁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이며, 생명의 빛이며, 달콤하고 탁월하며 생명을 주는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의 탁월함을 감지했습니다. 그때는 말씀을 간절히 갈망하는 마음이 생겼고, 말씀이 내 마음 속에 풍성하게 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도 뒤따랐습니다.”

 

10. 조나단 에드워즈 부인이 1742년에 그녀에게 일어났던 것에 대해서 말한 것을 들어보자.

“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얼마나 확실하게 나타나는지 산과 봉우리들이 그 앞에서는 작은 그림자들에 불과하였다. 나의 인정함과 행복함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의 영원한 기쁨은 하나님 자신처럼 불변하고 영구한 것처럼 보였다. 이 확신의 뜨거움에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소리내어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나 가깝고 현실적으로 느껴진 나머지 나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의식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밤에 내 영혼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표현할 수 없이 순수하고 깊은 사랑으로 충만해 있는 것 같았고 나로 하여금 기꺼이 하나님의 종들의 가장 밑바닥에 내려가서 나를 다루시는 그의 영광스러운 대접을 선포하고, 내 사랑과 감사와 찬양을 그들 앞에서 드리게 하는 위안과 위로로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 밤새도록 나는 그리스도의 탁월하고 뛰어난 사랑에 대한 느낌과 그가 내게 가까이 계시고 내가 그 안에 완전히 안식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혼의 달콤한 평온을 가지고, 그에게 내가 가까이 있다는 하늘에 속한 느낌을 생생하게 가질 수 있었다. 내 영혼은 하늘나라의 낙원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런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매 분마다 느껴지는 것이 내가 내 생애 전체를 통해서 누렸던 외부의 위안과 즐거움보다 더 가치 있었다고 생각한다.”

 

11. 감리교도인 위대한 존 웨슬리, “우리가 미리 기쁨과 평화와 사랑에 대하여 맛보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기만적인 속임수가 아니고 진정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 속에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예수의 피로 구속받았고 죄사함을 받을 것을 증거하기 오래 전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12. 18세기 말엽과 19세기 초를 살펴 보자. 초기 감리교는 하나님의 허락 아래 휴 보온이라는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대형 집회를 열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고 크게 복을 받았다. 그는 성경을 명상하고 연구하려고 조용한 시간을 가졌을 때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이 위압적인 능력으로 그에게 나타났다’고 고백하였다.

 

13. 19세기 초의 침례교의 위대한 설교자 크리스마스 에반스의 체험.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떤날 돌게리에서 메킨레쓰로 가고 있었다. 나는 내게 기도할 기회가 주어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이 아무리 굳어있고 또한 내 영이 아무리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찼어도 나는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말하자면 마음의 착고가 풀리는 것을 느꼈고 마음의 곧은 것이 녹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슬과 눈으로 덮힌 산들이 내 안에서 용해되고 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내 영혼 속에 성령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내 마음 전체가 어떤 큰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느꼈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하나님이 은혜롭게 찾아오심에 대해서 너무 감격해 소리 내어 울 수 밖에 없었다. 내 영혼에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신 은혜에 대한 감격이었다.”

 

14. 19세기 초의 미국 장로교회의 목사, 에드워드 페이슨의 전기, 그가 임종하기 전 “목사님은 평안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참, 그 질문은 너무 냉랭한 질문이요. 난 즐겁소, 이 행복은 하나님이 계시는 동안 계속될 것이요! 나는 내 행복을 표현할 말을 모르겠소. 나는 나를 큰 섬으로 이끌어가는 즐거움의 강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느낌이오.”

 

15. 멜레드 아우비그니는 스위스 사람으로서 <종교개혁사>라는 유명한 책을 쓴 사람이다.

“에베소서 3장 마지막 두 구절, 곧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한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는 이에게’를 읽을 때, 그 말씀이 내 영혼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한 계시로 임하였다. ‘그는 능히 하신다. 그는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시다.’ 내 가난한 심령 안에 이루어지는 일을 그리스도께서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내 영혼 속에 넘쳤다. 우리는 다 같이 무릎을 굻고 기도하였다. 내가 일어날 때 나는 마치 내 날개가 독수리의 날개처럼 새로와진 것 같이 느꼈다. 내 모든 의문들은 사라지고, 내 고뇌는 진정되었고, 주님께서 평화를 강처럼 쏟아 부으셨다. 그래서 나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16. 존 멕켄지의 경우, 1840~1849 복음 잡지의 편집장, 에베소서 1:13-14에 관한 설교에서 말한다.

“심령을 인치는 직관적인 행동과 특이한 느낌들에 대해서, 그것들은 말로나 관념들로써 전달될 수 있기 보다 그런 행복한 체험에 의해서 더 잘 알려지고 이해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 부요한 축복을 주실 때 어떤 특별한 방편에만 국한하시는 것이 아니다. 설교를 할 때, 말씀을 읽을 때, 또는 전혀 그런 일이 없을 때도 그런 축복을 주실 수 있다. 그것은 성령이 정하신 때에 시온에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따라(빌2:13) 역사하시는 것이다. 본문에서 인침은 하늘 기업의 보증이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없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요 계약금이다. 그것은 성령에 의해서 마음에 인쳐지거나 생겨지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서약이다. 또한 성령께서 이 복된 인으로 심령을 찍으실 때, 그는 그 마음에 내려 오셔서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기름을 바르신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부요한 긍휼을 거기에 쏟아 부으신다. 그리고 예수의 생명과 사랑과 피와 죽음을 심령에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은 용해되고 압도 당하고 영혼은 사랑과 긍휼과 은혜와 영광과 복락으로 녹아지며 사랑과 기쁨으로 눈물이 넘쳐 나게 될 것이다. 그에 대한 사랑으로 그 마음이 터지기까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그 마음에 사랑스러워진다. 이 느낌은 특이한 천상적이고 거룩한 기쁨과 복락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에 너무 강력하고 만져질 정도가 되어서 결국 불멸의 영광의 보증이 되고 구속된 자들의 영혼이 영원토록 누릴 영광의 계약금으로 즐겨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용서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동반하고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거기에서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는 하늘의 일부가 자기 영혼에 내려온 것을 느낀다. 말로 할 수 없고 특별하고 행복한 사랑의 감정과 감사와 겸손과 통회가 그 마음에 섞여 충만케 된다! 그는 죄나 죄책이나 진노나 무서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다 물러간다. 그 마음에 행복한 평온과 고요함이 안주한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그와 함께 거처를 삼으신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니’라는 말씀이 그 속에서 나타난다. 이 인침은 마음을 크게 하고 눈을 밝게 하고 이해를 도우며, 온유한 마음을 주신다.”

 

17. 무디의 경우, “전에 없이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갈증은 더해 갔고 나는 실로 사역을 위해서 능력을 받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나는 언제나 내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나를 충만케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묘사해 낼 수 없는 너무나 경외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바울도 14년 동안 결코 말하지 않았던 한 체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다만 하나님께서 내게 자신을 계시하셨노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러한 그의 사랑의 체험을 어찌나 강하게 한 나머지 나는 그에게 하나님의 손을 그만 멈추어 달라고 간구해야 할 정도였다.”

 

나는 히브리서 기자처럼 “다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니”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여러 세기들, 여러 곳 매우 다른 유형과 기질의 사람들의 다양한 경우들 중에서 몇 가지만 인용하였다. 이들은 비상한 재능과 학식을 가진 자들이거나 자기들의 감정을 엄격히 통제를 해오던 사람들이며, 흥분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다른 이들은 평범하였다. 그러나 성령께서 자기들의 영과 더불어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실 때 그들에게 있었던 일에 대하여 간증하는 것을 보면 한결같이 일치하고 있다.

 

- 로이드 존스, 『성령론』(홍정식편역), 11장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