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로이드 존스 / 이안 머리

새벽지기1 2016. 8. 27. 09:13


로이드 존스를 이런 사람으로 만든 것은 탁월한 그의 자연적 은사가 아니라 두드러진 은혜에 있었다. 제임스 뷰케넌이 토머스 찰머스에 대해 한 말은 여기서도 그대로 진실이다. 뷰케넌은 찰머스의 설교자로서의 능력의 비결이 “천재로서의 그의 자연적 은사보다는 회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깊은 확신과 진심어린 경험에 훨씬 더 두어져 있다”는 사실이 종종 오해되었다고 말했다. “견실하고 영속적인 사역은 그의 은사가 무엇이든 간에, 쓰임 받는 도구의 경건과 영성이 있는 곳에서 기대할 수 있다”고 언젠가 토머스 찰스가 한 말은 보편적 원리를 가리킨다.

 

로이드 존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로이드 존스가 자기들에게 최초의 그리고 가장 깊은 인상은 기독교적 경험의 실재에 대한 생생한 증인으로서의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로이드 존스의 생애는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각인시킨 성격을 갖고 있었다. 에드먼드 켈러머는 동료 청교도를 “그 삶과 대화가 자체로 계속되는 설교였던” 사람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당연히 로이드 존스에게도 사실이었다. 그것은 로이드 존스가 항상 “종교적으로”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이드 존스 안에 말보다 더 깊은 곳에 들어 있는 것들에 대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 증거가 없었다면 그의 말은 아무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선교사 잭 월키의 말, “로이드 존스 박사의 경건한 삶을 계속 상기합니다.” 1968년에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은퇴할 때 감사의 편지를 쓴 CMF의 실행위원회의 증언, “박사님의 인간적인 본보기를 가장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그대로 기독교 사역의 중요성과 존엄성을 독보적으로 강조하신 것이었습니다.”

 

로이드 존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징을 더 깊이 분석해 보면 첫 번째 특징으로 삼아야 할 것은 그의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기 백성을 다루신다는 사실과 시간과 영원 속에서 그들의 최고의 특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과의 이런 교제를 갈망했고, 그의 삶의 우선 순위에서 다른 모든 것은 이차로 밀려났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 위해 매일 홀로 시간을 가졌는데, 그것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근본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가정 기도는 하루의 삶을 끝냈다는 표지였다. 로이드 존스 사후에 베단 로이드 존스의 상실을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가정 기도를 드릴 때였다고 말했다.

 

로이드 존스에게 기도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의 수단이었다. 그는 기도를 원하는 “결과”를 얻는 수단으로 보는 태도를 싫어했다. 우리는 감동을 받지 않으면 진실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 존 플라벨의 말을 들어 보자. “기도는 악한 시대에 거룩한 용기와 너그러움을 낳고 유지시킨다. 여러분 주변의 모든 일이 실망스러울 때 기도는 여러분을 예수님과 함께 있도록 만들어 여러분을 담대하게 만든다(행4:13). 크신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사용하는 자는 결코 두려움 없이 사람들과 같은 작은 것들을 결코 두려움 없이 바라볼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신학은 그의 개인 생활의 중심의 신학이었다. 만일 칼빈주의가 하나님이 사건들의 선봉에 있다는 사실을 즐겁게 확신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로이드 존스는 모든 면에서 칼빈주의자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시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 죄가 마땅히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식, 감사, 거룩한 일을 가볍게 여기고 경솔하게 대하는 모든 것에 대한 미움, 진지함, 오류의 주모자들을 반대하는 담대함- 이 모든 로이드 존스의 특징과 그 외의 특징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데서 흘러나온 것들이다.

 

로이드 존스가 두드러지게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외로움과 반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었다. 깊은 감정을 갖고 로이드 존스는 1960년대에 한번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만약 사람들의 격려에 의존했더라면 나는 오래전에 사장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은 항상 사랑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 로이드 존스가 두드러지게 중점을 두고 산 삶의 요소는 사랑이었다. 사랑이 그의 사역의 주도적 충동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교회를 사랑했고, 교인들을 사랑했고,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진실로 로이드 존스의 견해에 따르면, 비그리스도인에 대한 설교의 궁극적 목적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도록 그들을 설복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에 대한 설교의 궁극적 목적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되는 계명을 더 잘 실천하고 누리도록 그들을 이끄는 데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최대의 목표와 노력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진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거룩한 사랑으로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 로이드 존스의 신념이었는데, 거기에 크게 미치지 못해 괴로워했다. 때때로 로이드 존스는 강단에 등장할 때 “거룩한 불의 폭포”가 떨어졌다. 이 사랑은 로이드 존스의 정신의 보편성과 로이드 존스의 증언이 기독교 교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호소력을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존 프레스턴은 “사랑은 뜨거운 것, 불처럼 뜨거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이드 존스는 윌리엄 윌리엄스의 말을 인용해서 “사랑은 종교 속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성도들의 가장 위대한 특성은 항상 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에 있었다.”

 

- 이안 머리, 『로이드 존스 평전 3』, pp 569-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