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기대한 성과를 보지 못해 흔들리는 교리 회복사역자들에 대해 / 로이드 존스

새벽지기1 2016. 8. 19. 14:04


영국 전역에는 기독교 사역자로서 자신의 소명과 헌신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로이드 존스의 가르침과 본보기에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았다. 이들은 오랫동안 쇠퇴와 게으름 속에 있던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는데, 현재 상태에 대해 종종 예루살렘에서 느혜미야를 돕던 사람들이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다”고 말한 것과 똑같이 느꼈다. 금방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없고 대중적인 견해와는 양립하지 않는 대책을 취하는 것은 결코 작은 결단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성경적 가르침에 입각한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의 숫자가 어느 지역에서는 무척 적었다. 그리고 1950년대 말과 1960년 초에 교리의 회복을 위해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교회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보지 못하자 크게 흔들렸다.

 

끊임없이 새로운 관념들을 큰 복으로 주장하는 시대에 휫필드나 스펄전의 전기를 읽는 것과 옛 원리들을 충실하게 고수하는 것은 전연 별개의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들의 첫 번째 사명을 결코 회복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모든 참된 영적 번영의 근본으로 삼는 교회를 재건하려고 힘들고 많은 시간을 요하지만 열심히 사역에 진력했다. 의심할 것 없이 이 새로운 세대의 젊은 목사들은 종종 실패와 경솔함에 대해 자책했으나 로이드 존스처럼 그들도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로이드 존스를 바람직한 설교자의 모델로 소개하는 그린 슬레이드와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로이드 존스를 “따르는 자들”을 비난했다.

 

제임스 패커는 1985년 이렇게 썼다. “되돌아보면, 15년에 걸친 분리주의자의 요란한 선전은 한때 그것에 큰 가치를 둔 잉글랜드 복음주의자의 삶 속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초토화되어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그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보았다. 그때 많은 교회에서 새로운 시작이 있었다. 곧 많은 사람들의 핵심적인 노력이 지역 교회의 재건에 집중되어 있던 시기였다.

 

로이드 존스는 이런 식으로 사역하고 있던 목사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끝없이 보여 주었고, 수많은 교회와 목사관을 방문해서 새로운 소망을 주었으며, 결코 잊을 수 없는 격려를 아끼자 않았다. 로이드 존스가 그들의 강단에서 말씀을 전함으로써 준 것보다 아마 밤늦도록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그에게 들을 수 있어서 얻은 장기적인 힘이 그들에게는 훨씬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방문을 통해 로이드 존스가 단순히 감상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친 문제는 전혀 없었다.

 

로이드 존스는 자신과 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분명한 확신을 심어 주었고, 자기 연민이나 불신앙에 대해서는 추호도 관용이나 동정을 보여 주지 않았다. 한 번은 웨스트민스터 친목회 모임에서 “왜 우리는 더 큰 복을 경험하지 못하는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할 때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우리에게는 자동적인 복에 대한 약속은 없습니다. 1662년에 복을 받은 사람들의 고난을 주목합시다! ‘내가 이것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다’라는 관념은 제거하십시오. 하나님은 복 주실 때와 주시지 않을 때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신뢰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항상 로이드 존스가 목사들에게 개인적으로 주었던 핵심 조언은 어떻게든 신령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에는 강조점이 약간 바뀌었다. 그때는 10년 전과 달리 참된 설교는 반드시 교리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로이드 존스는 단지 지식으로만 어떤 진리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여전히 경고하면서, 동시에 진리 자체는 결코 죽지 않고, 진리를 강하게 고수할 때에만 위대한 설교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빈주의를 더 강력하게 고수할수록 여러분은 참된 부흥과 각성을 그만큼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참된 부흥과 각성은 당연히 교리를 따라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 저는 ‘죽은 칼빈주의’라는 말을 논리적으로 모순된 말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죽은 칼빈주의는 불가능하고, 만약 여러분이 칼빈주의가 죽은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칼빈주의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때 큰 교회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교회가 크게 약화된 것에 대해 말하면서 로이드 존스는 그 원인을 강단에서 교리적 설교가 약화된 것에서 찾았다. 로이드 존스는 베너 오브 트루스트러스트 출판사가 재출간한 번스의 <부흥 설교>에 대해서도 교리적 내용이 부실하다고 비판했다.

 

로이드 존스가 이처럼 교리에 강조점을 두게 된 것은 자신과 절친한 목사들까지도 진지한 독서를 경시하는 경향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독서를 통해 신선하고 적절한 목회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 목사들이 독서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로이드 존스의 독서의 폭은 놀랄 만큼 넓었고, 소설가들을 빼고 현대 저술가들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로이드 존스는 젊은 목사들은 양식을 위해 독서를 해야 하지만 자기는 식욕을 돋우기 위해 더 많은 독서를 한다고 종종 말했다. 책은 강장제가 되어 그 효과가 항상 성경 자체에 대한 독서를 더 강화시켜야 한다.

 

1976년 발라 콘퍼런스에서 로이드 존스는 말했다. “읽은 것에 전념하라”는 바울의 말로 권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대부분은 위대한 독서가였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책을 읽지만 독서 형태는 변했습니다. 젊었을 때 여러분이 설교에 대한 쳬계를 잡기 위해 신학 책을 읽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시대를 따라가고 또한 거짓 가르침을 배웁니다”

 

로이드 존스는 지식과 묵상을 위해서는 녹음된 설교나 강연보다 책이 훨씬 더 유용하다고 보았다. “저는 은퇴하면 독서를 더 많이 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로이드 존스는 시온 칼리지 도서관을 이전보다 더 자주 찾았다. 제임스 패커는 1960년대 말에 한번은 “프렌드의 방대한 책인 <도나투스파 교회>를 들고 시온 칼리지 도서관을 나오는” 로이드 존스를 만난 적이 있었다.

 

- 이안 머리, 『로이드 존스 평전 3』, pp 479-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