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7)거룩한 크리스마스

새벽지기1 2016. 8. 27. 08:00


성탄 참 의미 보여줄 문화 만들어야

내용은 잃고 축제만 남은 왜곡된 성탄절에 소망의 복음을

 

  
 ▲ 신국원 교수 

크리스마스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였습니다. 청교도의 본고장인 뉴잉글랜드에서 온 똑똑한 여학생이었는데 자기 교회는 성탄절이 이교적 요소가 강하다는 이유 때문에 지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했지만 상업화로 변질된 성탄절의 요즘 모습을 돌아볼 때 저도 생각이 많아집니다.



크리스마스 폐지론

청교도들은 실제로 미국 초창기 1659년에 크리스마스 행사를 전면 금지했었다고 합니다. 그들 외에도 성탄절을 없애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인본주의자 어거스트 꽁트는 가톨릭 성인 축일을 모두 위인 기념일로 바꾼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요새도 크리스마스를 ‘겨울밤빛축제’로, 크리스마스트리를 홀리데이(holiday)트리로 바꾸려는 운동이 꾸준히 제기되곤 합니다. 청교도와 의도는 다르나 성탄절이 본래 의미를 잃은 결과일 겁니다.


만일 정말 크리스마스를 없애려 한다면 누가 가장 반대를 할까요? 교회가 아니라 백화점과 상점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가장 먼저 크리스마스 준비에 나서는 것도 상인들입니다. ‘소비’가 문화의 중심이 되어버린 오늘날 모든 축제가 상업화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가 교회와 성도들에게까지 파고 들어왔습니다.

세상이 어떻던 성도들만이라도 크리스마스를 의미 깊은 축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역자들이나 직분자들도 연말 연시 준비로 바쁘다 보면 성탄절이 단 하루의 축제로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결산 회의 같은 일로 성탄절 축하가 소홀해져서는 안 됩니다.


성탄은 메시야 오심과 기다림의 축제

어릴 때 성탄절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한달전부터 찬양예배 준비에 들어가면서 성탄절은 시작되었습니다. 성탄절 이브에 축하찬양 예배를 드리고 모여 놀다 새벽송을 돌던 일이 그립습니다. 크리스마스라고 들떠 밤새 길거리를 헤매던 믿지 않던 친구들도 교회 분위기를 부러워하곤 했었습니다. 성탄절 날 친구 따라 교회에 왔다 믿게 된 아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변변한 문화가 없어 그랬다 해도 정말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축제는 문화와 그것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법입니다. 월드컵과 ‘붉은 악마’처럼 공동체는 축제가 끝난 후에도 계속 남아 있습니다. 상업화된 크리스마스를 비판하기보다 성탄의 참된 의미를 보여줄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행사를 어떻게 하던 성경이 보여주는 성탄의 의미가 제대로 담겨야 할 것은 물론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물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구세주가 오심입니다. 천사들이 이 소식을 가장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전했습니다.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죄의 짐으로 시달리던 우리도 그 소식을 인해 기뻐합니다.


복음 전파의 계절

  
 ▲ 일러스트=강인춘 

청교도들이 왜 성탄절 폐지론을 폈을지 생각해봅니다. 복음의 내용은 잃고 축제만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맛을 잃은 소금이 버려져 발에 밟히듯 상업성에 의해 왜곡된 성탄절은 불신 운동가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탄절 폐지론의 본질입니다. 자칫하면 반대는 크리스마스에서 그치지 않고 기독교 전체로 번질 수도 있는 위험한 것입니다.


성탄절 축하에 위로와 소망의 복음 전파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온 세상을 위한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특별히 복음을 세상에 외쳐야 할 시기입니다. 최초의 크리스마스에 천사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만의 축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날이어야 합니다.

천사들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그 당시 가장 소외된 계층인 목자들에게 처음 전했다는 사실은 의미 심장합니다. 그런 대단한 소식이 왕궁에 가장 먼저 전해진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 행사는 정말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 기독교의 메시지가 꼭 필요한 이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소망을 줄 수 있는 분이 오셨다’는 복된 소식을 전해주는 방편이 되어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