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5)문화전쟁 시대에 할 일

새벽지기1 2016. 8. 25. 07:27

갈등의 시대, 화해자로 바로 서야

세상이 부추기는 이념 분쟁에 휩쓸리지 말아야


  
 ▲ 신국원 교수 

“닥치고 정치!” 요즘 종교계 일각의 분위기가 딱 그렇습니다. 정치적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천주교 사제들에 이어 불교 승려들도 동조와 반대로 편까지 갈라져 목소리를 높이는 중입니다. 급기야 현실참여에 소극적이던 복음적인 목회자들까지 길거리로 나서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민주사회와 문화전쟁

사회학자 제임스 헌터는 오늘날 모든 사회가 보수와 진보의 문화적 대립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것을 ‘문화전쟁’이라고 불렀습니다. 말이 ‘문화’ 전쟁이지 정치적 주도권과 경제적 이해를 놓고 벌이는 격렬한 전면전입니다. 국가의 역할을 축소되고 시민사회의 역할이 증대될수록 문화전쟁은 증폭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화 이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양상이 격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엔 종교나 이념의 차이가 주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엔 과거사의 앙금과 지역적 반목, 세대간 갈등에 빈부, 노사, 남북 관계 같은 첨예한 갈등의 소지가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얽혀 있어 그 중 어느 것이 터지건 나머지도 따라서 폭발하게 마련입니다. 사회가 온통 싸움터요 평안한 날이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우면 갈등은 더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가 보수와 진보의 팽팽한 씨름이었기에 지금의 난국은 예상된 후유증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미덕은 선출된 정권에 대해 계속 비판과 견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민주국가로 존속하고 번영하느냐는 어떻게 이런 갈등을 조율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교분리와 현실참여

교회는 이토록 어려운 현실과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과 삶, 교리와 윤리는 본래 뗄 수 없는 것이니까요. 신앙과 일상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자세야말로 정치의 세속화가 일어나는 온상입니다. 문제는 무엇이 바른 현실참여 방식이냐입니다. 지난 반세기처럼 불의한 독재정치가 사회 전체를 좌우하던 때에 편의를 따라 정교분리를 주장한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위상의 실추는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매사에 지나친 관심을 표명하는 것 또한 바른 것은 아닙니다.


정치는 삶의 모든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모든 것은 아님’에 분명합니다.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요 수상이었던 카이퍼는 정부, 가정, 학교, 기업과 교회가 각기 하나님에게 받은 고유한 영역주권이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삶을 정치로 축소시키는 일이나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하려는 것은 성경적 원리가 아니라 했습니다. 교회도 정치 집단처럼 행동해서는 안 될 것은 당연합니다.

이념과 세계관의 차이가 사회 전 영역에 걸쳐있는 우리 사회의 긴장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입니다. 문화전쟁은 정치뿐 아니라 교육과 노동문제는 물론 예술계와 심지어는 교회 안까지 파고들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좌우 또는 상하의 대립과 긴장이 일어나곤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젠 과거처럼 집단시위를 통해서 정권을 바꾸면 세상이 변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삶의 전 영역을 기독교적 진리로 이끌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샬롬의 비전

다른 일은 차치하고 갈등의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이 할 일 하나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자가 되는 일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방식은 세상이 말하는 평화주의는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드는 더욱 아닙니다. 불의에 대항해 선지자적 메시지를 선포함에 용감해야 하지만 분쟁을 일으키는 일에 앞서서는 안 됩니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한과 갈등의 골이 깊은 곳일수록 정의와 화평을 동시에 실현하는 샬롬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곳곳에 있는 유능하고 바른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화해자가 된다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원주의 민주사회에 있어 신앙과 세계관이 다른 이들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부추기는 이념 분쟁에 휘말려서는 안 됩니다. 특히 지금처럼 복잡한 현실에선 보수와 진보의 지형이 수시로 변하곤 하기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무조건 보수나 진보임을 자처하기보다 사안마다 꼼꼼히 따져 판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화해자의 역할을 하려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고민하며, 좌우로 치우침 없이 행동해야만 합니다.

화해자와 샬롬의 일꾼이 되려면 소신이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는 진리를 말뿐 아니라 삶을 통해서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필요하면 분명히 표현도 해야 합니다. 확신이 무례함일 이유는 없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는 지경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를 ‘온유’하게 말하는 지혜는 어떤 상황에서나 소중합니다. (벧전 3:15) 성경과 기독교 역사는 다니엘이나 칼빈처럼 신념을 탁월한 삶으로 보여줄 경우 소수라도 세상과 역사를 이끌 수 있었음을 증거합니다. 그것이 성경적 문화변혁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과는 다른 방식의 정치적 행동입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