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3)스포츠 열풍과 영적 갈등

새벽지기1 2016. 8. 21. 23:24

광기에 덩달아 춤춰서는 안된다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는 열풍에 선지자적 안목 가져야


  
 ▲ 신국원 교수 

언젠가 귀가 길 버스에서 내렸을 때 일입니다. 사람들이 하나 같이 뛰는 것이었습니다. 하이힐을 신은 젊은 여성도 나를 앞질러 달려 가더군요.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는 순간 아파트 단지가 들썩일 정도의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때서야 외국팀과의 축구경기가 중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저 역시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놀이에 목마른 군중

올 겨울엔 동계 올림픽, 내년 여름엔 월드컵이 우리를 들뜨게 할 것입니다. 스포츠의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대중매체가 상업적 목적으로 열풍을 조작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 분명히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붉은 셔츠를 입고 광장 가득히 모여 밤새 목이 터져라 소리 높여 응원하게 하는 것은 결코 인위적 동원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스포츠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은 놀이에 목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놀이는 일과 더불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사람은 생계를 위해 필요한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쉬기도 하고 때로는 자유롭게 창조적인 활동하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데 꼭 필요합니다. 일을 놀이처럼 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라 하겠습니다. 일이 즐거운 사람은 따로 놀 필요가 절실하지 않은 법이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 형편은 그렇질 못합니다. 기계적 노동이나 뻔한 일상이 반복되는 사무직은 일의 성취와 즐거움을 앗아갑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할 뿐 일 속에서 즐거움을 맛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이 끝나면 놀기에 몰두합니다. 아니 놀기 위해 일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행여 노동시간은 줄고 여가가 늘어나더라도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일과 놀이의 균형과 리듬이 깨어진 삶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가와 스포츠, 하나님의 선물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어느 때 보다 많은 여가를 누리며 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인에겐 상업적 대중오락과 유흥업소 외에는 여가를 메울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여가를 바로 누리질 못하면 삶은 오히려 권태로워집니다. 자연히 그것을 극복해주는 스포츠가 각광을 받을 수 밖에 없지요.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엔 가슴 졸이는 긴장과 승리의 흥분이 있습니다. 더욱이 수많은 관중들과 함께 응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일상과 권태, 그리고 소외에 대한 그만큼 효과적인 약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스포츠는 물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을 통해 신체가 단련되고 타인과의 협력도 배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의 스포츠 대부분이 관람용이라는 것입니다. 운동은 선수들이 직업적으로 하고 우리는 관람할 뿐입니다. 관람용 스포츠는 진정한 놀이가 아닙니다. 이런 스포츠는 연예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유의 오락은 힘들게 얻은 여유를 재미와 사소한 흥분을 미끼로 착취해 가는 왜곡된 형태의 놀이일 뿐입니다.


놀이는 인간이 본능이나 삶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움을 구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입니다. 예술이나 취미는 먹고 사는 것과 직결되지 않지만 인간다운 삶의 본질입니다. 인간의 특징은 일이 아니라 창조적 놀이에 있습니다. 하지만 오락적이고 수동적인 관람에 길들여진 구경꾼은 인간성을 상실할 위험에 처합니다. 판단력은 물론이고 개성도 없고 자유도 반납한 채 선동에 휩쓸리는 군중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빵과 서커스의 독재

‘서커스’가 옛날부터 ‘빵’과 함께 군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독재자들일수록 군중을 배불리 먹이고 약간의 즐거움을 주면 마음대로 이끌 수 있다는 비인간적인 정치적 사상을 믿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것이 더러 효과를 본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 프로 야구나 축구가 국민의 의식을 잠재우고 정치적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한 방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지요.


사회 전체가 스포츠 열풍에 들뜨는 때에라도 그리스도인과 교회만큼은 영적 분별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적이며 세계적인 축제에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광기에 가까운 열풍에 덩달아서 춤을 추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선지자적인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월드컵 같은 거대 프로 스포츠 행사들이 스포츠 본연에서 벗어나 돈벌이와 정치의 도구화되는 것에 대한 분명한 비판의식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 없지만 ‘서커스’만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재미 추구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약과 같이 점차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되어 있지요. 그 흥분과 자극의 추구는 결코 끝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놀이에 목말라하지만 결국 그 갈증은 결코 놀이로 채울 수 없는 영적 갈급함 임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